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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기가영 Mar 18. 2020

꽃신 민박

따뜻한 오두막과 쿨한 사장님이 있는, 남다른 민박

꽃신 민박은 막 지은 듯하면서도 따뜻하고 세심한 오두막이다. 겉보기엔 조금은 투박해 보이는 DIY 형태의 집?인데, 내부를 보면 가구들이 필요한 장소에 절묘하게 배치되어 있고, 때로는 기성품보다 편리하고 아이디어 넘치게 만들어져 있어서 놀랐다.


원래는 겨울이라 오두막이 추울까 봐 본채 방을 예약했었는데 사장님이 룸 업그레이드로 오두막도 빌려 주시고, 도착 전에 따뜻하게 방도 덥혀 놓으셔서 운 좋게 특별하고 귀한 오두막에 머물 수 있었다.


웃긴 이야기를 하나 하자면, 제주도에 올 때 너무 급하게 오다 보니 잠옷을 챙겨 오지 않는 실수를 했다. 찝찝하게 외출복을 입고 자려는데, 그러기에는 오두막이 너무 알맞게 어둑하고 아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잠옷을 가지고 있던 동생도 같이 옷을 훌렁훌렁 벗어 버리고, 우리는 따뜻한 전기장판에 맨살을 대고 누워 적당히 서늘한 바람을 들이마셨다.


손수 만든 나무 가구와 이국적인 패턴의 천으로 덧대어진 조명이 만들어 내는 운치에 취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다를 떨었다. 새벽녘이 되어서야 조명을 껐더니, 고요하고 새까만 오두막에 가로로 길게 나 있는 창문들로부터 들어온 희미한 빛들이 드리워졌다. 오두막이 큰 나무로 둘러싸여 있는 터라 잔가지의 그림자가 방 안쪽까지 나풀거렸다. 난생처음 본 아름다움에 나와 동생은 카메라를 찾아 포착하려 했지만 인간의 눈보다 미개한 카메라는 그 오묘한 빛을 담아내지 못했다.


과연 이런 풍경을 예상하고 만든 걸까?





다음 날, 장거리 연애를 하는 남자 친구와 통화도 해야 하고, 요가도 해야 하고, 아홉 시에 짐 옮기기 서비스를 신청해 두어서 8시에 반강제로 기상했다. 꽃신 민박의 아침 풍경은 평생 요가를 안 하던 사람도 요가를 해야 될 것만 같은 평화로운 모습이었지만, 요가매트가 없는 탓에 한참을 배겨 가며 요가하다가 사장님께서 숄을 빌려 주셔서 겨우 분위기를 낼 수 있었다.


사실 꽃신 민박은 작년 3월 제주도에 잠시 이주하여 살고 있는 친한 언니를 방문했을 때 같이 들렀던 곳이다. 그 언니의 친한 요리사 친구와 함께 방문했는데, 당시 민박을 관리하시던 분도 요리왕이셔서 두 요리왕의 대화를 우와~ 우와~하며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 꽃신 민박 관리하시던 분이 너무 맛있는 음식을 대접해주셔서 이번에도 엄청 기대를 하고 방문했는데, 알고 보니 그분은 1월까지만 근무하고 요리를 배우러 가셨고(역시 요리왕..), 지금은 사장님이 일하고 계셨다. 덕분에 조식은 여전히 건강했지만 좀 더 간단해졌고, 사장님의 쿨한 성격 덕에 대화는 더 쿨해졌다.


예쁘고 맛있었던 조식:)


자기는 이성이 아닌 감정만을 따라 살아왔다던 사장님. 전 세계를 여행하게 된 계기, 소유하지 않는 삶의 기쁨을 알게 된 이야기, 티베트에서 만난 야생인(?)과 인연이 되어 제주에 티벳풍경(게스트하우스)과 꽃신 민박을 차리게 된 이야기까지... 내가 이렇게 간추려도 될까 싶을 정도로 너무나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남들과는 다른 삶을 살아오신 분이라 그런지 그분의 관습에 얽매이지 않은 조언들이 나에겐 힐링이 되었다.



나는 감정을 따르며 살다 보니 여러 가지 경험을 많이 하게 됐어. 그럴 때마다 나는 왜 이럴까, 왜 이런 경험을 해야 할까 고통스럽기도 했지. 그래도 그래서 내가 남들보다 많이 경험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


나쁜 경험 해도 돼. 나중에 회복하면 되는 거야.


꽃신민박의 오두막 / 오두막에서 보이는 큰 나무



대화가 끝나고 원두막에 걸터앉아 멍 때리는 중에도 사장님이 하신 말씀이 조용히 떠올랐다. 50대 후반의 나이에도 직접 집과 마당을 관리하고 천연 염색과 요가를 배우는 사장님처럼 나도 나이와 상관없이 내 마음을 떨리게 하는 것들로 삶을 채워 나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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