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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진 Dec 02. 2020

미니멀리스트 되는 법

참고하지 마세요.

여기서도 미니멀, 저기서도 미니멀. 힙, 유행 과는 거리가 먼 내가 미니멀리즘이 뜨는구나 생각할 정도로 정말로 요즘은 미니멀리즘이 대세인 것 같다. 유튜브의 알고리즘이 손 이끄는 대로 쫓아가니 다양한 미니멀리스트들의 삶을 접하게 되었다. 그들의 삶은 정말 매력적이었다.  소비의 유혹에서 벗어난 모습. 붙잡는 족쇄들이 없으니 훌쩍 떠날 수 있는 삶. 물건 없이 넓고 여유로운 생활공간. 걸리적거리는 것 하나 없으니 청소하기도 좋겠다 라는 집요정 나름의 실용적 생각까지 스치고 지나가자 나도 미니멀리스트가 되고 싶어 졌다.


맥시멀리스트는 특별한 다짐이 없어도 쉽게 될 수 있다. 자본주의와 그 아들인 소비주의의 뒤를 졸졸 쫓아다니며 가끔 인스타그램 광고를 유심히 봐주면 충분하다. 이렇게 하다 보면 쇼핑을 열심히 하지도 않았다고 생각했건만 옷장에는 옷이 넘쳐나고 책상에는 귀여운 스누피 피겨들이 가득하다. 스누피 피규어를 보다 보니 미니멀리스트가 되고 싶은 나의 마음이 조금 옅어진다. 이렇게 귀여운 아기들을 어떻게 버려... 그래 설레는 물건은 남기랬어. 이 친구들은 남기자. 딴 길로 잘 새는 것도 맥시멀 리스트의 특징이다. 관심사가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이것저것 사모으는 것이다. 마치 의식의 흐름과 같이 소비를 하다 보면 어느새 맥시멀 리스트가 되어있다.


하지만 맥시멀리스트가 되는 것과는 다르게 미니멀리스트가 되기 위해서는 특별한 의식이 필요하다. 집안을 한번 발칵 뒤집어야 한다. 집안을 뒤집어 필요하지 않고 설레지 않는 물건들을 모조리 정리하는 것이다. 여기서 정리라고 에둘러 이야기한 것은 쓰레기통 행이라는 소리이다. 정확한 단어를 쓰는 것이 중요하다. 정리라고 하면 그 버림받은 물건들은 다 박스에 잘 '수납'되어 창고로 가게 될 가능성이 높다. 미니멀리스트가 되기 위해서는 정리가 아니라 버려야 한다. 여기서 첫 번째 장애물이 생긴다. 과연 애정으로 사 모은 이 물건들을 버릴 수 있는가


옷을 하나 집어 든다. 내가 오랫동안 좋아했던 옷이지만 일 년간은 옷장에 있었는지도 몰랐다. 과감히 쓰레기 봉지에 집어넣는다. 생각했던 것보다 애정은 별로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렇게 몇 벌을 쓰레기통으로 넣고 나니 속이 후련하다. 이게 바로 족쇄였구나.  하지만 곧이어 자괴감이 든다. 나는 환경주의자인데 이렇게 옷을 버리는 게 맞는 것인지. 환경주의자라는 어설픈 아이덴티티가 버린다는 행위 자체를 견디지 못하게 한다. 어쩐지 뜻밖의 다른 장애물이 툭하고 튀어나와 버렸다.


"이거 놔두면 언젠가 쓸 일 있을 거 같은데, 버렸다가 다시 사면 환경에 안 좋을 텐데..."


하지만 속아서는 안된다. 이건 환경주의자인 아이덴티티가 하는 말이 아니라 앞으로 미니멀리스트로 살지 못하고 소비주의의 품으로 다시 돌아갈 거라고 믿는 의심쟁이인 내가 하는 말이다. 이렇게 버린 물건들은 앞으로도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물건들이다. 그리워하지도 않을 것이고 버린 후면 바로 잊혀 그런 물건이 있었나 싶을 것이다. 이 물건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또 다시 사게 되는 일도 없을 것이다. '앞으로는 소비와 멀어질 거니까! 나를 믿자'하고 의심쟁이를 잘 토닥이며 이 장애물도 무사히 통과했다.


한참을 옷장을 정리하고 있는데 허기가 진다. 뭐라도 하나 먹을까. 부엌으로 향한다. 냉장고를 뒤지다 보니 미니멀리스트라면 요리 정도는 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인스턴트와 배달음식은 미니멀리스트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 계란을 꺼내고 파를 썰고 프라이팬을 꺼내 뚝딱뚝딱 요리를 한다. 요리를 하고 맛있게 먹고 휴대폰을 잠깐 한다. 유튜브를 틀자 예쁘고 귀여운 소품으로 가득한 집으로 알고리즘이 인도한다.

"어머 너무 예뻐...! 앗, 또 당했구나."


PS. 픽션입니다. 네. 정말입니다. 픽션이에요. 믿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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