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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루다 Dec 18. 2023

존재감

교실 안에서 멍하니 창밖만 주시하며 앉아있던 내 모습이 여전히 선명하다. 조용한 성격이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이 두려웠던 것 같다. 어디서든 큰 소리 내는 일이 없었고 말이 없었다.   

  

그런 내가 대학에 들어가면서 자연스럽게 존재감을 드러냈고 발표수업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다. 눈에 띈다는 게 그렇게 기분 좋은 일인지 처음 알게 되었다. 이때는 조증이 올라왔던 시기이기도 해서 성격이 바뀐 것처럼 보였다. 그로 인해 대학 생활은 힘들었던 기억도 많지만, 즐거운 기억도 가득하다.     


처음으로 내 존재가 나도 모르게 드러날 때의 기분은 황홀했다.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기분은 무대 위에서 모두 나만 바라봐주는 모습처럼 짜릿했다. 그런 경험이 누구나 있을 것이다. 사람들 사이에서 집중되었을 때 온몸의 털이 곤두서듯이 긴장되면서도 그 긴장이 마냥 두렵지만은 않은 들뜨는 기분.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다시 그러한 긴장과 흥분은 시작되었다. 한 글자 한 글자 써 내려간 글자는 문장이 되었고 글로 탄생했다. 여전히 부족함이 많은 글이지만 글을 발행할 땐 나의 책을 독자가 읽어주는 기분과 같은 기분이 든다. 처음부터 잘 쓰고 잘 읽히는 글을 쓰는 사람도 어딘가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모두가 그렇지 않다는 사실 또한 맞다. 우린 모두 조금씩 더 잘 쓰기 위해 오늘도 글을 쓰고 있다. 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의 글을 위해,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의 글을 위해. 그런 마음을 알고 있다면 타인의 글에 함부로 말할 수 없다. 남에게 피해를 주는 글이 아닌 이상 그 글은 존재만으로도 귀한 글이라고 생각한다.   

  

나만 보는 일기가 되었던 남에게 보이는 공개 글이 되었던 글은 존재한다. 글은 각기 다른 빛으로 다양하게 빛나고 있다. 하늘이 다채로운 색을 비출 때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본 적이 있는가? 글은 그러한 빛이 아닐까? 너무나 많은 색이 섞여 어떤 색인지 모르는 모양에서도 전체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아름다운 모습.     


우리의 존재도 글도 모두 그렇게 존재한다. 다채롭게 아름답게.



Image by Richard Wang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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