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리고 눈물 많던 10대, 20대 시절엔 무얼 보고 상상하던 눈가가 촉촉했다. 수업 시간에 시를 읽으며 우는 학생은 나밖에 없었고 아기 생쥐가 꼬리를 바퀴에 밟혀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고 시험을 치지 않았던 사람도 흔치 않았으리라. 그저 감수성이 풍부해서겠거니 넘겼다. 어렸기에 자신을 잘 몰랐다고 하기엔 핑계일까.
지나쳤다. 자신을 똑바로 볼 용기가 없어서 지나쳐버리고 말았다. 내가 느끼는 감정을 지긋이 바라보고 느껴보지도 못한 채 서른이 되었다. 누구에게나 주어진 똑같은 시간을 흥청망청 아끼지 않고 보내다 보니, 서른이라는 나이가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서른이라는 주제를 담은 드라마, 영화가 많다.
그 이유는 이십 대에서 삼십 대로 넘어가는 단계에서 오는 괴리감이 크기 때문이지 않을까. 내가 무언가 크게 성장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두려움, 미래를 생각하는 걱정, 무엇 하나라도 이루어내야만 할 것 같은, 막연함. 수많은 걱정거리를 사람들은 서른이라는 나이를 기준으로 두는 것 같다.
나 또한 그랬다. 눈물만 질질 짜던 어린이가 아닌 어른이 되어야만 한다는 압박을 받았다. 문제는 어린이였던 나를 제대로 직시하지 못한 채 어른이 되려니 그 방법을 알 수 없었다. 어른은 그냥 저절로 될 줄만 알았기에. 지나쳐왔던 상처와 과거를 돌아보고 왜 그때 내가 그런 선택을 해왔고 그럴 수 밖에 없었는지 이해하고 용서하는 과정에서 제대로 날 볼 수 있었다.
우리는 수많은 선택지에서 무엇을 선택할지 매일 고민하고 괴로워한다. 잘못된 선택을 하여 후회할까 걱정하며 스스로 믿지 못할 때도 많다. 과연 선택지에서 옳은 선택과 잘못된 선택은 명확하게 있는 걸까? 살아보니 무엇이 정확하게 옳은 선택인지 알 수 없다. 그저 나의 선택을 믿고 원하는 방향, 옳은 길로 갈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만이 옳다고 생각한다.
잘못된 길로 간다는 게 정말 잘못된 길로 가는 것이라 할 수 없고 옳은 길로 간다는 걸 꼭 옳은 길이라고 정확히 말하기엔 우린 모든 걸 알 수 없는 그저 보통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지금에서야 알 수 있다. 지나쳐 온 과거의 내가 선택해 온 모든 선택이 옳은 길로 가려던 노력이었으며 묵묵히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왔던 거라고.
우린 신이 아닌 보통의 존재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