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 자체로 존중받아야 할 아이
아이와 최초로 맺은 인간관계인 부모의 역할
존속살해미수죄로 체포된 동현이
내가 형사과에 근무할 때였다. 당시 당직할 때는 관내에 발생한 모든 형사사건은
당직자가 맡았는데, 그때 동현이를 만났다
파출소 김순경이 현행범으로 데려온 동현이는 당시 26살이었다.
아버지를 살해하려다 미수에 그쳤다고 했다.
인계를 받고 조사를 시작했는데, 의아한 부분이 있었다.
보통 이와 유사한 경우는 패륜아이거나 술에 만취해 인사불성인데 동현이는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차분했다. 그런 동현이에게 사건의 동기를 묻자 "그냥 죽이고 싶었어요"라는 말만 반복했다
아무리 물어도 아버지를 죽이고 싶을 만한 이유는 없었다
경험상 이대로 조사가 끝나면 아이는 최소 7년 이상의 실형이 예상됐다
이에 가족을 상대로 참고인 조사를 했다.
어머니와 누나는 그날만 생각하면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며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그래도 사건의 전말을 알아야 했기에 네 차례 더 심문했고, 가족과 주변인 등 총 10여 명의
참고인을 조사했다. 심지어 다들 동현이 가족이 화목했다고 입 모아 말했다
심문을 통해 알게 된 것은 아버지는 가족들에게 존경받고, 지역에서도 인정받는 인물이었다
그에 반해 아이는 어릴 적부터 아버지의 기대와는 달리 소심하고, 내성적인 아이였다
그렇게 아이는 조사를 마치고, 검찰로 송치된 후, 구치소로 이동했다,
법원은 판결 전 6개월간 정신적인 장애 여부를 확인하는 과정을 거치는 치료감호 처분을 했고
동현이는 처분에 따라 공주 치료감호소로 이송됐다
그로부터 6개월이 흘러 동현이의 치료감호 기간이 끝났다는 연락을 받고 담당 형사였던 나는
공주 치료감호소로 아이를 다시 이송하러 갔다.
동현이는 나를 보고 반가운 듯 웃었다.
그 모습에 "그날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라는 궁금증이 다시 떠올랐다
가족의 무시가 만들어낸 비극
규정상 손목에는 수갑을 채우고, 두 팔은 포승으로 묶은 채 동현이가 타고 간 승용차에 태웠다
가는 도중에 휴게소에 들러 점심을 먹었는데, 식사를 하기 위해 잠시 호승을 풀어주고 다른 사람의
이목을 생각해 한쪽 수갑만 채우고 옷으로 가렸다
아이는 고마웠는지 미소를 짓고는 배가 고팠던 탓인지, 오랜만에 먹는 바깥 음식이 맛있었던
탓인지 시킨 음식을 허겁지겁 먹어치웠다
아무 말이 없던 아이는 배가 어느 정도 찼는지 자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앞에서 언급했듯 동현이는 실패를 두려워하고 소심했다. 모두 완벽한 아버지의 영향이었다
아이는 그런 자신을 아버지가 무시한다고 생각했고, 급기야 자존감이 바닥을 쳤다.
사소한 일도 금방 포기하고, 누군가에게 무슨 말만 들어도 충격을 받아서 풀이 죽었다
또 자구 재촉하지 않으면 나서서 뭘 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아버지에게 "그러면 안 된다"라는 말만 들어 "나는 아무것도 못하는 아이야"라고
낙담하며 점점 자신감을 잃어갔지만 그런 상태에 대해 단 한 번도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그런 아이가 장성해 전역한 뒤, 운전으로 취직을 하겠다며 면허시험을 볼 수 있도록 지원을 해달라고 했다
그런데 그때 아버지가 "군대까지 갔다 왔는데 학원비도 못 버냐?"라고 한말이 화근이 됐다
아버지가 아이에게 할 수 있는 평범한 한마디였지만, 그동안 아버지에게 무수히 상처를 받아온
아이가 처음으로 아버지를 죽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것이었다
아버지만 없으면 뭐든지 자신 있게 할 수 있다고 믿고, 동네 철물점에서 식칼과 망치를 구매한 다음
아버지를 죽일 날만 기다렸다
최고의 선물인 자존감
드디어 결전의 날이 왔다. 동현이는 늦은 밤 부모님 방으로 향했고, 자고 있는 아버지를 향해 미리 준비해둔
식칼과 망치로 마구 휘둘렀다. 인기척에 잠을 깬 아버지는 기겁을 하고 일어나 아이와 피 튀는 몸싸움을 시작했다. 난리통에 눈뜬 어머니는 온몸에 피를 흘리며 싸우고 있는 남편과 아들을 보자마자 기절했고, 동현이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에게 현장에서 체포됐다
동현이가 다시 집을 방문한 것은 현장 검증 날이었다.
자기 방 장롱 위에서 식칼과 망치를 꺼내 들고 부모님 방으로 향하는 모습을 재연하자, 지켜보던 가족은 오열했고
동네 사람들은 경악했다. 아이는 치료감호 결과 정신적으로는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단되어 예상데로 7년형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가족에게 받은 상처로 낮아진 자존감이 불러낸 비극이었다.
사건을 보면서 자존감은 아이가 인생을 살아가는데 최고의 선물이 되어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존감이 높고 낮음은 주변 사람의 태도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도 알았다.
그것이 아이가 최초로 맺는 인간관계인 부모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