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가 될 지금에 치얼스

분명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거야.

by chul


거 참 이상하다. 내가 이렇게나 무력했나?

올 한 해는 정말 이상했다. 의문만 품었고, 이상하다, 이상하다, 왜 이렇게 안 되지, 만 반복하였다.

또다시 열심히 쓴 서류가 탈락했을 때, 나는 정말로 진지하게, 하늘을 향해 물었다.

내 인생이 이렇게 안 풀릴 리가 없는데.

지금까지 멋진 인생까진 아니어도 어떻게든 굴러가던 게 내 인생이었는데.

내가 이렇게나 무력했나? 취직은 나 혼자만 결정하고 잘해서 될 일은 아니긴 하다. 하지만,

하지만 내 인생에 있어서는 분명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거야. 내 인생이잖아.


이렇게 꼼짝도 못 할 것 같을 때, 더 이상의 변화는 없이 계속 지금처럼 한심하게만 살 것 같을 때, 그럴 때마다 자동적으로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2년 전의 볕이 들어오지도 않던 하숙집에서 죽은 듯이 누워만 있었던, 우울증이 가장 심했던, 자해도 주저않던 그때가 떠오른다.

여기까지 얘기하면, 내 상황이 정말 안 좋아 보이겠지만 그렇지 않다. 그때가 ‘그때’라고 회상할 수 있는 지금을 실감한다. 그때와 지금은 정말 반대다. 그때 상태는 최악이었고 상황은 최고였다. 대학생 초기, 아버지가 회사를 다녀서 경제적인 지원을 받는 게 당연했으며( 지금은 그만두셨다. 나는 노후 자금을 빼먹는 셈) 성적이 좋아서 장학금을 받았다. 언제든 무엇이든 시작할 수 있던 어린 나이, 21,22살. 나는 자살방지센터의 번호를 누르곤 무서워서 그만두었다.


하지만 23살 때, 나는 그조차 기억하지 못 한 사람이 되었다. ‘청산가리로 일어나는 사망 사건이 코난에 많지’라는 시답잖은 얘기를 친구와 하면서, 청산가리를 인터넷에 검색하였다. 그러자 자살방지 번호들이 떴다. 아마 청산가리 검색 -> 자살 시도라고 알고리즘이 설정된 모양이었다. 그런데 그중 하나의 색이 달랐다. 의아했다. 다들 파란색인데 혼자 회색이다. 한참 뒤에 떠올랐다. 내가 그 번호를 누른 적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이 떠오르기까지 시간이 걸릴 정도로 나는 변했음을. 그 시기가 과거가 되었음을 실감했다.

그렇기에 나에게 인생 최악의 시기였던, 2년 전은, 내가 어떤 상황에 있더라도 이를 과거로 결국 만들어냄을 알려준다. 그래서 나는 확신할 수 있다. 인생이 이렇게 안 풀리고, 나는 너무 한심하며, 1년을 날려버리고 모아놓은 돈도 날려버린 백수임에도, 또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을 거라고.

그때는 뭘 했더라? 기억나는 것은, 인생 최악의 시기였기에 생일이 너무 우울했다. 곧 또 나의 생일이다. 이번 생일도 우울하겠지. 그때는 눈이 왔다. 눈이 쌓였고, 장갑을 낀 내 손에는 생일선물로 받은 스타벅스 크리스마스 리미티드 어쩌고 텀블러가 있었다. 친구가 내게 주기 위해 오전 6시부터 줄을 서서 사 준 거였다. 또 한 손에는 다른 친구가 준 충전식 손난로가 있었다. 걷고 싶어 졌다. 그 텀블러에 커피를 타서, 도서관에서 눈을 보면서 책을 읽고 싶었다. 그래서 걸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게 내 구원의 시작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누워만 있던 나날들을 과거로 만들었다. 눕지 않고 걸었으니까.


물론, 지금은 그때와 달리 상황이 좋지 않다. 일단, 친구들과도 연락은 못 하고 지냈기에 그런 정성스러운 축하를 받을 수 있을지 의문스럽기도 하고, 예전처럼 생일이 기대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났다고 해결되지 않고, 오히려 악화되는 건 이번에 처음 겪는다. 취업 준비를 한 1년은 아무것도 안 했다고 다들 얘기하니까. 이런 경우는 정말 처음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있겠지. 하다 못해 돈을 조금 덜 쓰는 절약이라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일을 찾아봐야지. 알바라도 좋으니 나에게 필요한 건 일임을 1년 동안 알았다. 중간에 취직되면, 뭐, 그만두면 되니까. 이번엔 조금 다르게 일상을 꾸며보고 싶다. 물론, 취업 준비에 지장을 주지 않을 만큼으로!

아침마다 상상을 한다. 지금 이 시기를 회상하며 웃는 상상을. 그때는 지금과는 또 다른 힘듦을 겪으며, ‘아, 지금 이거에 비하면 그거 아무것도 아니었네’라며 또 다른 활력을 찾아가는 내 모습을 상상한다. 분명 그럴 것이다. 내겐 그럴 힘이 있고, 나는 그 힘을 쓸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