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나를 못 믿는데 나를 어떻게 믿어주는 걸까
음료를 시키면, 사람들이 다 빠져나 갈 때쯤 내게 음료를 하나 더 주시는 카페 사장님이 계신다. 예전에 새로 만든 메뉴를 혼자 있던 내게 주셨는데, 내가 너무 맛있다고 하자 항상 하나 더 주신다. 가끔 간식도 주신다. 계속 받아먹기가 민망해서 이젠 한두 시간 일찍 나오거나, 에너지바 같은걸 챙겨간다.
한두 시간 일찍 나오면 왜 이리 일찍 가냐며 다음엔 더 있다 가라고 하신다. 보통은 내가 무슨 일을 할 때 말을 절대 거시지 않는다. 그냥 서비스 음료를 주실 때만 이건 콜드 브루예요, 헤이즐넛을 넣었어요, 하고 가신다. 에너지바를 드리면 정말 좋아하는 거라고 하시며, 내가 좀 챙겨줬다고 이렇게 주는 사람은 처음이라며, 마음이 예쁜 사람이라고 해주신다.
나는 너무 잘 받아먹어, 나는 줄 게 없는데.
엄마는 나를 믿는다. 언젠가 자신의 자리에 가서 독립을 잘할 것임을. 하지만 서류도 많이 탈락하는 나는 나를 믿는 엄마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엄마는 도대체 뭘 믿고 나를 믿어?
너잖아. 너는 그럴 애니까.
예전에, 두 번째 수능을 칠 때, 너무 불안해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별로 친하지도 않았었는데, 그 친구는 단번에 이렇게 얘기했다.
나는 너는 걱정 안 한다.
가끔은 너무나도 큰 인복에 숨이 막힐 듯 괴롭다. 아무것도 못 하고, 잘 되어가지도 않는 내게 이런 사람들이 주변에 있어도 되는 걸까. 실망시킬까 봐 두려운 건 아니다. 이미 몇 번을 실망시켰고, 이젠 실망시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다. 민망함 정도는 남아있지만.
나는 항상 주변 사람들의 말을 안 듣는다. 나중에 반성하면서 그걸 뼈저리게 깨닫는다. 자격증 준비해야 했는데, 인턴도 해야 했는데, 왜 나는 뭘 믿고 내가 대단한 사람이라 바로 정규직 취직이 될 줄 알았을까. 하지만 슬프게도 그건 내 최선이었기에, 나는 그렇게 1,2년 늦는 사람이 된다. 한국에서 특히 20대 중반 여성이 1,2년에게 매우 엄격하기에 나는 그렇게 ‘아무것도 안 한 사람’이 되어 버린다.
그럴 때마다 중얼거리는 말은,
반성이라도 했어, 이 사람들아.
학생은 잘 될 사람이에요.
전공 교수님도 아닌, 교양 교수님께 들은 말이었다. 어디서든 당신은 당신의 최선을 다 하고 있을 거라고. 그렇게 말씀해주셨다.
내가 이런 말을 들을 자격이 있는 걸까? 정말 억울하게도 난 정말 최선을 다 했어. 그런데 내 최선이 상대적으로 약했나 봐. 나는 이 차이를 넘어설 힘이 없어. 나는 그 누구도 생각해 줄 만한 정신이 없었고 정말 이기적으로 내 길만을 걸었을 뿐이고 지금은 넘어지고 있는데도 내 주변 사람들은 내게 잘 될 거라고, 괜찮다고 해준다.
그게 진심임을 알아서 나는 가끔 괴롭다.
나는 오늘도, 그들에게, 도대체 뭘 믿고 나를 믿는 거야?라고 묻는다. 그러면 항상 돌아오는 대답.
너니까.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이 말이 그렇게 답답하면서, 결국 나를 살려내는 말임을 안다.
내 인생인데 내가 할 수 있는 일 하나쯤은 있겠지. 그렇게 나를 믿는 내 사람들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