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배려없는 행동을 하는 중/고등학교때의 친구 이야기를 했다. (그 이야기를 하던 나와 친구도 중/고등학교 친구다) 그러면서 '우리 이제 15살 아니고 20대 후반인데, 왜 그러냐 서로'라며 한탄하다가 깨달았다. 그러니까 내가 지금 20대 후반이라는 거지? 이런 젠장 나는 아직 비눗방울 보면 뛰어놀고 따라가고 싶은데. 물론 나는 소독차를 따라가던 세대지만 말이다.
그래서 이 매거진을 만들었다. 예전의 내 기록들, 20대 초중반의 나를 보면서 편지를 써주는 매거진을 말이다.
그 당시 내게는 좋은 어른들이 거의 없었다. 20대 후반부터 부모님부터 시작해서 괜찮은 어른들이 생기기 시작했지만 동시에 어른이라고 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괴롭힘도 당했다. 그래서 나는 나를 위한 어른이 되어주기로 했다. 지금 방황해도, 몇년 뒤의 내가 이때의 나를 보고 편지와 비판과 위로 모두 해 주기로 믿으면서. 그러니까 나는 몇년 뒤에도 살아있어야한다. 지금의 나를 위해서.
오늘 글은 본격적으로 편지 쓰기 전에, 주저리 쓰는 회상.
요즘, 내 인생의 중요한 시기라는 생각이 든다. 생각같이 논리적인게 아니라 굉장히 직감적으로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다. 우울증으로 당장 죽을 수 있었던 20대 초반, 취업 준비 기간이 길고 인턴도 전환 안 되어 자존감이 바닥치던 20대 중반을 거쳐 직장인이 된 20대 후반인 지금. 지금이 가장 위험한 시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외적인 상황 탓을 하기 바빴던 어렸을때와 달리, 지금은 왠만한 것들은 나에게 달려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내가 어떤 삶을 살지도, 내 과거에서 어떻게 벗어나서 새로운 도전을 할 지도, 장점도 강점도 약점도 단점도 모두 나에게 달려있다는 것이 실감이 되었다. 하지만 동시에 나의 노력과 상관없이 외적 상황이나 사람들로 결정되는 것들도 있었다. 그러나 어떤 삶으로 일상으로 만들지는 결국 나만이 결정할 수 있었다.
물론 나는 또래에 비해 늦게 안 편이긴 하다. 우리집은 어렸을때 꽤 안정적이었고, 나는 알바도 많이 하지 않고 말 그대로 공부만 한 범생이었기때문에 사회생활에 빠르게 뛰어든 친구들보다는 사회적인 눈치나 배려가 없었다. 에티튜드가 없었다. 공부나 열심히 해서 사람들과 안 마주치는 연구원이나 되고 싶었다. 그러나 전공 살린 엔지니어 인턴에서 길이라고 믿었던 기계설계에 재능이 없음을 알았고, 우연히 들어간 프리랜서 플랫폼 운영자가 되며 사람들과 소통하며 기획을 좋아함을 알았다.
지금 들어간 곳에서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얽힌 회사에서 나와 남이 내는 시너지, 삐걱거림 모두 경험하고 있다. 또 새로운 결정을 해야하는 입장에 돌아왔다. 그 입장은 정확하게는 내 탓보다는 바깥 상황에 의함이 크긴 했지만, 결정을 하기로 나는 결정했다. 결국 변화구를 일으키는 것은 나였다. 내 삶이었기 때문이다.
그 결정을 하면서, 이 결정을 하도록 나를 내몬 모두를 원망했다. 그래서 깨달았다. 빌어먹게도 나는, 결정을 미뤄왔다. 누가 그냥 결정해줬으면 했다. 시험성적에 맞춰서 무언가를 가길 바랬고, 적당히 누가 나를 적당한 수준의 어딘가로 결정해줬으면 했다. 내가 어떻게 해야하는지, 결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결정했다. 그 결정을 위해서는 몇개는 포기하고 몇개는 마음이 아프지만 신경을 끄기로 하고, 몇개는 몸이 힘들지만 해내야했다. 아직 하고 있다. 그 결정을 한 후에, 결과가 나와도 또 거기서 방황하게 됨을 알고 있다. 아직도 방황하는 내가 한심했다. 다들 자리 잡아가는데 말이야. 하지만 조금 더 돌아보면 다들 다양한 삶을 살고 있더라.
나도, 나를 위해서 나아가기로 했다. 이제 다시 할 일 하러 돌아가야지.
그리고 지나가던 모두에게 하고 싶은 말.
야 아무래도, 이럴 때인가 보다.
이 매거진은 최대한 꾸준히 쓰길 바라면서.
+참, 요즘 인스타툰이고 그림이고 거의 안 그리고 있는데 너무 괴롭다. 사람이 피폐해지니까 많은 것을 놓치고 있더라. 내일 중요한 일이 있어서 끝내고 자기 전 1시간이라도 그림 그려서 올려야지. 벌써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