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하지 않고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성실하단 단어가 싫었다. 나는 재능충(벌레충 맞음)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객기를 부리자면 어떤 일이든 시작을 남들보다 박차고 나가고 적응을 잘한다는 장점이 있기도 했다. 겉보기에는 말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나는 열심히를 열심히 하는 사람이었다. 열심히 하지 못했던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내 인생이 망한 것은 아니지만 이 꼴이 되거나 안 좋은 꼴을 보게 된 가장 큰 원인은 내 마음속의 한마디이다.
"이거 그렇게까지 해야 해?"
세상에는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 일들이 대부분이었다. 어릴 때 어른들이 업신여기던 단순 노동도 익숙해지고 전문가가 되어 돈을 제대로 받는 수준에 이르기까지는 모두들 근무 시간 외에도 노력하고 공부를 해야만 했다. 그런데 몸이 쉬워 대부분 학생들이 택하는 공부, 4년제 대학, 괜찮은 기업으로의 취직준비는 오죽할까. 머리 좀 쓰거나 열심히 좀 한다는 녀석들이 다 몰리는 구간인데 말이다.
물론 어릴 때야 수업시간에 졸면서도 수학같이 어려운 시험에서 1등을 하는 친구가 재미없단 뒷담을 들으면서도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영어 단어를 외우는 친구보다 매력적이긴 하다. 둘 다 해본 입장에서는 당연히 전자(재능 있지만 게으른 사람)가 짜릿했다. 공부를 열심히 한다는 이유로 중학교 입학하자마자 1년 동안 따돌림을 당했기에 더 남들 보기에 집착했다. 열심히 하지 않지만 잘하는 사람 말이다.
사회에 나오니 열심히 하는 멍청이가 되지 말고 잘하라는 비난과 비꼼을 들어왔다.
그래서 그 정도로 하지 않으면 당연히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나올 때도 있지만 랜덤으로 좋게 나오곤 했으니 내가 그 흐름을 잡긴 힘들었다.) 열심히 했지만 결과가 나오지 않는 경우는 두 가지이다. 너무 급한 마음에 방향을 잘 못 설정했는데 달려 나가기만 하거나 열심히 했다고 착각하는 경우. 아마 내 경력에서는 나만큼 못했을 리더들이니(괜히 경력이 10,20년 차이 나는 게 아니다) 그냥 그들은 나잇값을 못하고 신입을 괴롭힌 찌질이들이었을 것이었다. 아닌척해도 그 찌질한 말들에 상처를 받고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첫 사회생활이었으니까.
영어 시험공부를 했다. 기간은 길지 않다 며칠? 그런데 시험을 쳤는데 목표 점수가 바로 나왔다. 그 시험에서 바라던 점수보다 몇 단계나 높았다. 그 기간, 열심히 했다. 그냥 열심히가 아니라 전략도 열심히 짰다. 전략 설정을 하고 그 전략이 맞다는 가정을 내리고 남은 시간에는 몰두했다. 학원을 다녔으면 1등급이 나왔을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지금에서 1,2등급이 큰 차이는 없어서 잠시 멈췄다. 이젠 그 영어점수로 아르바이트와 취직 지원서를 넣어야 할 때니까 말이다.
그래, 나는 30년이 다 되어가서야 나의 귀찮은 단계를 넘는 열심히를 처음 해 본 것이었다. "그렇게까지"를 한번 해 본 것이었다.
삶에 미련 없이 구는 게 멋있어 보였다. 우리 가정은 안에서는 곯아갔고 학대와 방치가 난무했지만 밖에서는 문제가 없었기에. 나는 어떤 만화 주인공의 대적 빌런마냥 "겉으로는 이미 충분하지만 안에 상처가 있는 " 캐릭이 되고 싶었나 보다. 실제로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내가 내 생활에 책임을 지고 건강에도 신경 써야 하는 위기가 최근에야 왔으니 말이다. 어떤 의미로는 경제적으로는 편하게 살아온 셈이다.
겉멋을 내려놓은 최근. 나는 나를 위해 인턴이나 아르바이트를 시작할 것이고 뻔뻔하게 생활비를 벌면서도 좋은 일자리를 위해 열심히 앉아서 또 이력서를 고치겠지. 너무 열심히 살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가 도는 한국이지만 베짱이는 그래도 제대로 할 때는 해야만 한 사람 몫을 할 수 있다. 이제라도 알았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할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