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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ul Sep 09. 2024

한 때 겹쳐졌던 이야기들

모든 이야기들로부터 나는 시작한다.


스터디에서 이근후 작가의 책 \<백 살까지 유쾌하게 나이 드는 법\>을 읽었다. 거기서는 작가가 자신의 손자들과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새로운 화법과 단어 사용을 보며 놀라기도 하는 장면이 나온다. '헬조선'이란 단어에 기함을 금치 못하고 당황스러워하는 작가를 보며 낄낄거리다가 문득, 이 장면이 묘하게 그려지는 이유가 궁금했다.


'오늘 친구와 싸워서 힘들었겠구나. 하지만 할아버지는 00이가 아무리 속상해도 친구에게 예쁜 말을 썼으면 한단다.'


어렵지 않았다.


'이번 추석에는 할머니가 00이가 좋아하는 김부각을 많이 준비해놓았다.'


나도 20년 전에 할아버지와 이메일을 주고받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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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수납, 수집욕이 적다. 아무데나 옷이나 새로 산 물건을 두고 잃어버리기 일쑤다. 하지만 몇년간 다니는 이사마다 꼭 싸들고 다니는 박스가 있다. 지금까지 누군가와 주고받은 편지들이다. 신기하게 이젠 나와 연락하지 않거나, 연락할 수 없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그런 이들의 편지와 이야기로 인해서 눈 앞에 나를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에게 받은 상처가 치유되는 건 참 아이러니하다.


집에 와서 이메일을 샅샅히 살펴보았다. 할아버지와 주고받았던 이메일은 분명히 남아있으리라. 하지만 문제는, 그 이메일이 아마 지금은 없어진 플랫폼일 확률이 컸다. 기록따위는 없어져버린 것이다. 싸이월드마냥 그 곳이 부활하지 않는 한. 문제는 그 곳이 어딘지조차 알 수 없었다.


네이버, 다음(당시엔 한메일), 네이트, 본인인증을 몇번씩 해가며 20년전의 연도부터 이메일을 살펴보았다. 그렇게 나는 나를 구성해온 이들과 주고받았던 대화들을 마주했다.

'00(내 이름)아, 오늘 첫 모의고사를 쳤구나. 힘들었을텐데 끝나고 자기소개서도 쓰다니 너무 멋지다. 읽어보니 정말 잘 썼는데? 다만 나는 이 학과를 위해서 뭘 얼마나 좋아하는지 구체적으로 썼던 기억이 있어. 얼른 서울 와서 언니랑 밥 같이 먹으면 좋겠다. 늘 응원해.'

이 언니는 아마 이 이메일을 쓸 때 나이가 고작 21살이었을 것이다. 이젠 결혼을 하여 3번째 이직을 했다던 언니, 나는 아마 지금도 저렇게 예쁜 말을 쓰진 못하겠지. 참 어른스러운 사람이다.


'노래 모음.zip'

아실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지만 latte는 스트리밍 서비스따윈 없었다. 일본 락밴드를 좋아하던 시기에는 모든 노래를 mp3파일로 다운받았다. 내가 좋아하던 노래와 영화 파일을 가지고 있던 친구는 하루 걸러 하루 매번 내게 노래를 보냈다. 이제 그 노래들은 아이리버 전자사전에 있고 켜지지 않아서 들어볼 수는 없다.


'생일 파티에 초대해줘서 너어무무 기 뻐 어 !'

누가봐도 초딩이 쓴 어떤 쪽지. 이름을 들어도 누군지 기억하지 못하게 되었다.


'00학생은 잘 될 겁니다. 이젠 기다림을 배우는 시기라고 생각합시다.'

대학 졸업 후 교양 교수님께 받은 메일.

그 외에 집에 프린터기가 고장났다는 이유로 아빠 회사 메일로 내가 좋아하는 그림과 피아노 악보를 미친듯이 보낸 메일이 있었다. 회사를 다녀보니 딸이 뽑아달라했다는 이유로 회사 메일로 받은 이상한 일러스트들을 회사 프린터기로 뽑아댔던 강부장이 상상되어 식은땀이 났다. 이젠 아빠가 집안 가계부를 정리하는 엑셀파일이 보관이 힘들다고 내 구글 드라이브에 차곡차곡 쌓이고 있으니 나름 쌤쌤...으로 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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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어쨌든,

할아버지 메일은 찾을 수 없었다. 다만, 제법 많은 활동을 한 탓에 할아버지의 예전 직장 이메일주소를 찾을 수 있었다. 그래, 할아버지는 여러 활동을 하며 종종 인터넷 신문에서 인터뷰를 하곤 했으니까. 이젠 그 메일로 보내도 아무도 답할 수 없다. 내가 본 모든 메일 주소 중 80%는 이제 내게 답을 하지 않을 것이다. 생사와 무관하게 나를 떠났고 내가 떠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의 메세지가 내게 쌓여있다. 나는 그들과 대화를 하며 울고 웃으며 여기까지 왔다. 나를 채우는 게 오로지 나 하나라는 생각이 착각임을 깨닫게 된 하루. 앞으로 나를 채울 누군가와 내가 채워줄 누군가의 이야기를 실감한다. 우린 그렇게 겹쳐져서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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