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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L Sep 03. 2024

사물들

여름에 읽고 쓰고 둔다

1965 파리, 2024 서울 

『사물들』 /조르주 페렉 / 김명숙 옮김/ 펭귄클래식 코리아 / 2011     

  

  ‘체스터필드 소파’ 18세기 영국에서 개발된 이 가구를 가져다 놓으려면 그에 걸맞은 집이 있어야 한다.

이제 막 학생 신분을 벗어나 사회로 진출하는 젊은이가 훌륭한 서재와 편리한 주방을 가진 멋진 빌라와 커다란 자동차를 대놓고 말하기 부끄러울 때 럭셔리하고 빈티지한 이 소파를 동원한다. 이 소파가 얼마나 기능에 충실하고 어떤 인테리어에도 잘 어울리는지 강변한다. 소파와 카펫, 정돈되고 늘어진 채 나열하는 사물들 뒤로 어떤 의식이 흐른다. 

  

  부자가 되고 싶지만, 현재의 행복한 시간을 놓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

  안락한 가운데서도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살고 싶다는 꿈.

  친구들과 즐기는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 부자가 될 수 있을 것이고 

  그것은 처음부터 부자였던 것처럼 자연스러울 것이란 희망.     

  소유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그것이 진정 삶을 누리는 것이라고.


  ‘조르주 페렉’의 호기심 가득 찬 눈빛은 시대를 넘어 도시를 살아가는 현대의 젊은이의 모습을 보여준다. 

  워라밸을 외치며 찾아간 요가 교실에서 먼저 훑어보는 것은 다른 회원의 요가 매트. 몸은 뻣뻣해 동작이 힘든 여사님이 깔고 있는 명품 브랜드의 천연고무 매트를 바라보며 부자가 된 자신의 미래를 그린다. 요가 수업 후 브런치 카페에 몰려가 루꼴라 샐러드를 앞에 높고 펼치는 전시회 소식부터 여배우 스캔들까지 버라이어티 한 화제에 감탄. 인문적 소양과 생활의 테이스트가 확실한 사람들. 다시 아침이 오면 가장 트렌디한 일을 가장 우매한 방법으로 처리하는 회사로부터 한없이 벗어나고 싶다. 아침이면 관심 없는 날씨 이야기로 시작해 점심시간의 통일된 메뉴, 칼퇴를 위한 눈치 게임. 그런 것들       

  

  지치기 전에 탈출해야 한다. 

  처음에는 짤막한 여행. 그들의 취향을 보여주고 친구들과 함께하는 동안, 부자가 되기 위한 그들의 삶은 항상 임시 상태다. 풍요한 시대를 탓하고 예민한 경쟁에 분노하면서 무엇이 변했는지를 정확히 알지는 못한다. 보이지 않는 미래. 위험을 피하기 위해 빨리 떼돈을 벌어 떠나고 싶을 뿐. 부를 이룩한 사람들의 성공담을 수집하지만 실제로 그들을 만난다면 압도당할 뿐이다. 유능한 선배와 화려한 인플루언서의 삶은 그들의 무기력을 깨우지는 못한다. 눈으로 직접 확인한 아름다움과 안락함은 추억으로 기념할 뿐이다.     

  시간이 흐르고 그들도 체스터필드 소파 하나 정도는 살 수 있을 정도의 안정된 생활이 되었을 때 질문한다.

  “그래서 행복한가요? 당신은 행복했던 적이 있었나요.”          

   

  2024년 서울은 그 지점에 와 있다. 

  격변의 시대를 거친 선배들의 치열함이 부럽지만, 이 시대의 경쟁에 지친 아이들이 먹방을 보고 맛집에 줄을 서며, 언젠가는 부자가 될 것이라 꿈꾸는 세상. 지하철에 두 시간씩 매달려 출근하면서 주말의 서핑과 호캉스가 만들 짜릿한 추억을 그리는 도시. 60년대 프랑스 사회 구조의 변화 속에 젊은이들이 행복을 찾아가는 모습은 지금 여기에 다시 있다. 대화 한마디 없고 소설 작품의 기본인 시점이나 플롯도 불분명한 이 작품은 행복에 대해 정의하지 않으며 계속 생각하게 한다. 주인공 커플 ‘제롬’과 ‘실비’가 그렇게 살았다는 것인지, 그렇게 살 수도 있었다는 가정인지 혼란하게 하는 에필로그까지. 행복이란 그렇게 가정법과 추측으로만 존재하는 것일까. 사물 뒤에 숨은 의식의 흐름을 다시 따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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