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시간
" 하늘 정원에 그늘막을 놓고 생맥주 제공하면 어떨까요?"
"아.. 생맥주 쿠폰을 보내주면 고객 유인 효과도 있을 겁니다... 팝콘 같은 것도 같이 나눠주고."
"그런 이벤트성 자선 사업 말고. 명소로 만들 방법을 생각해 봐? 예를 들면 플리 마켓 같은 거.'
팀장도 알고 있다. 매장에 자리가 넘치는데 뭐 하러 하늘 정원까지 올라가 마켓을 하냐.
한두 번은 야외 행사로 할 수 있겠지만 그거야 말로 비용 많이 들고 지속성 없는 이벤트,
일 년에 몇 번이나 할까.
답답한 시간의 흐름 중간에 막내 사원이 툭 튀어나왔다.
"다람쥐요.."
'뭔 다람쥐?"
"저 옆에 백화점이 다람쥐 모형 가져다 놓고 재미 보니, 우리는 아예 진짜 살아있는 다람쥐를 가져오는 거죠. 어린이들이 좋아할 거고, 그럼 부모들도 자주 올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만의 상징 동물,푸바오 같은"
딱히 다른 아이디어가 없던 직원들은 회의를 빨리 끝내기 위해 막내를 칭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각자 담당 업무에 '다람쥐 프로젝트'를 접목했다. 실제 두 쌍의 다람쥐를 입양했고,
'하늘 정원 가는 길' 안내 사인에도 귀여운 다람쥐 그래픽을 인쇄했다. 정문 앞에 다람쥐 인형을 놓고,
다람쥐 탈을 쓰고 돌아다니는 이벤트 요원들까지 어린 고객뿐 아니라 어른들도 즐거워했다.
하늘 정원에도 벤치를 만들고, 포토죤을 겸한 그네를 설치하고, 흡연 공간을 분리하고 나니 지역 최고의 쉼터가 되었다. 역시 백미는 살아서 뛰어다니는 다람쥐였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그 문제는 다람쥐가 있는 것은 분명한데 본 사람은 거의 없다는 점이다.
분명 하늘 정원에 살고 있는 것은 아는데, 사람들에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초기에 사람들과 몇 번 조우한 후 그 산만한 공간에서도 능숙하게 몸을 숨기고 있다가 밤이 되면 나와 돌아다녔다. 낮에 돌아다니게 하려고 정원 곳곳에 먹이를 놓아두지만 다람쥐는 보이지 않고 먹이만 사라졌다.
다시 대책 회의가 열렸다. 장기 대책과 단기 대책이 대립하였다.
장기 대책은 인간의 음식을 계속 주면서 길들이는 방법이었다. 인간에게 음식을 받아먹고 사랑받는 다람개로 만들자는 계획. 센트럴 파크에서 만났던 두려울 정도로 덩치 큰 놈이 생각났다.
단기 대책은 다람쥐 우리를 만드는 것이었다. 다람쥐 두 쌍이 충분히 놀만한 공간 사이즈로 우리를 만들고 다람쥐가 쉴 그늘과 쳇바퀴에서 운동하기 등 일상을 편안하게 해 주면 관람객과 친해질 것이라는 의견이었다.
어린 고객의 손길에서 벗어나 안전하기도 하고, 다람쥐 행동반경을 제한할 수 있어 관리도 수월했다.
다람쥐를 우리에 가둔 후 하늘 정원을 이용하는 고객수는 3배로 늘었다. 그들은 다람쥐를 보고 쳇바퀴를 굴려보라 하고 철창 사이로 프렌치프라이 같은 음식을 끼워 넣었다. 하늘 정원의 인공적인 시설 사이에서 고객들이 휴식하는 진정한 랜드 마크가 되었다. 경품이나 연예인 이벤트 같이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 하늘 공원이 활성화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업계에서 벤치마킹을 왔다.
막내의 기발한 아이디어가 만든 결실에 칭찬을 기대하며 본사 사장님의 방문을 기다렸다.
"살아있는 짐승을 가두는 것은 우리 회사의 금지 사항이란 것을 잊었소.
매장에 있던 수족관도 철수한 것 기억 안 나나요.
도대체 회사의 역사와 방침 정도는 알아야지. 당장 풀어줘요"
사장의 한마디에 우리의 문이 열리고 다람쥐들은 몇 그루 안 되는 나무 사이로 사라져 버렸다. 고객들도 어리둥절했지만 다람쥐를 풀어놓았다고 항의하는 사람은 없었다. 아마도 정기적인 외출 시간인 줄 알았던 모양이었다. 어쩌면 갇혀서 쳇바퀴를 돌리는 다람쥐를 안쓰럽게 여긴 사람도 많았던 듯했다.
두 번째 작전인 먹이를 주며 다람쥐 길들이기에 돌입했다.
놈들은 사람이 있을 때는 잘 나타나지 않았다. 아주 빠르게 움직이며 먹이를 물고 사라지곤 했다.
계절이 바뀌어 따뜻한 봄볕이 내리쬐자 잔디도 파랗게 솟아오르고 가끔씩 우두커니 서있는 다람쥐의 모습이 목격되었다. 고객들도 하늘 정원에 다람쥐가 있다는 것은 알지만 그들을 구경하러 오진 않았다. 어쩌다 마주치면 친절하게 아는 척을 해주는 정도. 아는 척하다가 깜짝 놀라곤 했다. 겨울을 이겨낸 다람쥐들은 엄청 자라 있었다. 동면해야 할 계절에 인간의 소음에 잠들지 못하고, 낮이고 밤이고 하늘 정원을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주워 먹은 결과로 통상적인 다람쥐에 비해 비만한 모습이었다.
봄철을 맞아 하늘 정원을 찾는 가족 단위 고객이 늘어나면서, 녀석들의 먹을 것은 더욱 풍성해졌다. 특히 두려움 없는 어린이 고객들은 다람쥐와 눈을 마주치고, 간식을 선뜻 양보했다. 먹이 주기 작전은 성공적으로 다다 람쥐를 다람개로 진화시켰다.
4월의 어느 아침. 하늘 정원 관리 담당 직원은 한 통의 전화를 받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전화를 한 사람은 5층 남성의류 매장의 매니저였다. 영업 준비를 위해 창고에 들어가 불을 켜는 순간, 후다닥 달아나는 놈들을 보았다는 신고였다. 처음에는 무엇인지 몰랐다. 얼떨결에 "쥐야!" 하고 소리를 지르자, 열어 둔 출입구로 다람쥐 두 마리가 쏜살같이 사라졌다는 신고였다. 두 마리의 다람쥐를 찾기 위해 전 직원이 출동했다. 5층 곳곳에서 다람쥐를 향한 탄성과 비명이 들렸다. 일단 사람과 친숙한 놈들이니 소리를 지르거나 위협적인 행동을 하지 말라는 지침이 전달되었다. 그리고 녀석들이 좋아하는 넛트류를 중앙 에스컬레이터 주변에 가져다 놓았다. 어느 틈에 나타나 먹이를 확보한 녀석들은 멈춰있는 에스컬레이터를 역주행해 올라가다가 9층에서 검거되었다.
다시 긴급 대책 회의가 열렸다. 처음에는 그들이 어떻게 거기까지 내려갔나 논의했다. 왜 내려갔는지도 궁금했다. 하늘 정원에 먹을 것도 많고, 밤에는 조용한데 왜, 언제, 어떻게 내려간 것일까?. 왁자지껄한 추측 가운데 팀장이 중심을 잡았다.
"어차피,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고, 그들을 어떻게 통제할까입니다."
"더구나 봄이 지나고 저 녀석들이 번식이라도 하면 점점 힘들어집니다."
"저 녀석들이 살찐 것이 아니고, 임신한 건 아닐까요?"
직접 다람쥐를 심문할 수 없고 부질없는 추측만 난무하였다. 이번에도 결론은 막내 직원이었다.
"하늘 정원 홍보 목적은 달성했으니, 이제 재들을 돌려보내죠."
그 후로 시립 대공원에서 다람쥐를 보았다는 사람도 있었지만 놈들이 백화점 출신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백화점 고객들은 하늘 정원에 다람쥐가 있다고 계속 믿었지만 본사람은 없고, 어린 고객들이 두고 간 과자는 비둘기들의 몫이 되었다. 하늘 정원의 생태계는 바뀌고, 너무 많이 날아오는 비둘기 퇴치를 위한 아이디어 회의가 시작되었다.
백화점은 그 이후 살아있는 동물을 이용하여 고객을 모으는 일은 하지 않기로 했다. 경쟁 점포에서 생태체험전이나 아기 호랑이 전시를 할 때도 절대 따라 하지 않았다.
끝까지 책임지지 못했고, 일한 만큼 대우해 주지도 못한 다람쥐들에게 계속 미안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