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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볕 Apr 20. 2020

디지털 시대의 문화지체

디지털 범죄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고, 기술적 혁신이 이루어질 때마다 나타나는 딜레마가 있다.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는 기술을 사회가 따라가지 못할 때가 그렇다. 디지털 기술 발달로 우리의 삶은 편리해졌지만, 사회적 제도나 사람들의 인식 등 우리 사회는 기술 발전의 수준을 영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디지털 시대의 문화지체현상'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문화지체로 인해 발생한 기술과 사회 간의 간극 속에서, 새로운 형태의 범죄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발달한 기술을 따라가지 못하는 문화지체의 공백을 틈 타, 디지털 기술을 악용한 다양한 디지털 범죄가 일어나고 있다.


    작년과 올해는 '디지털 범죄'의 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짧은 시간 내에 디지털 범죄는 빠르게 증가했다. 작년 국내 사이버 범죄는 전년보다 20% 증가해 18만여 건에 달했다. 특히 작년부터 대두된 'N번방 성착취 사건'을 보면, 얼마나 많은 피해자들이 디지털 성범죄에 취약하게 노출되어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새로운 디지털 기술의 대두는 이를 악용한 범죄자들에게 새로운 형태의 범죄의 발판이 되었다.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를 이용해 진짜 같은 얼굴 합성 영상을 만드는 딥 페이크 기술을 악용해 새로운 형태의 디지털 성범죄를 만들었다. 트위터, 텀블러 같은 SNS를 통해 일반인이나 연예인의 얼굴을 음란물에 합성하고, '지인 능욕' 의뢰를 받는 등, 마치 놀이처럼 죄책 감 없이 성범죄가 이루어지고 있다. '다크 웹'은 접속을 하기 위해서는 특정 프로그램을 사용해야 하는 웹이다. 다크 웹의 보안성 및 비밀성을 악용해 온라인 마약 거래 및 성매매의 장으로 만들었다.


    디지털 기술이 범죄에 쉽게 악용되고, 디지털 범죄가 몇 년 사이에 급증한 이유는 사회가 기술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어서다. 결정적으로, 사회적 제도가 발달한 디지털 기술을 포괄하지 못하고 있다. 'N번방 사건'으로 드러난 다양한 디지털 성범죄의 가장 큰 문제는 실질적인 처벌 방안이 부재하거나 너무 느슨하다는 것이다. 관련 법안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지난해, 다크 웹을 이용해 세계 최대 아동 포르노 사이트를 운영한 한국인 S 씨는 겨우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발달된 기술과 사회적 제도의 간극이 범죄의 장을 제공해준 셈이다.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사회적 인식 또한 매우 미흡하다. 딥 페이크 처벌 법안 관련 회의록이 외부로 공개되었을 때, 정치인들과 고위공직자들의 사이버 성범죄에 대한 몰이해적인 발언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 고위공직자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디지털 범죄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 디지털 범죄의 가해자들은 정보공유 카페를 만들어 서로를 독려하고, 형량을 줄이기 위한 정보를 공유한다. 그들에게는 피해자에 대한 일말의 죄책감도, 디지털 범죄에 대한 죄의식도 없다. 또한, 'N번방 사건'과 '지인 능욕 방' 피의자의 상당수가 10대 청소년이었다는 통계는 우리 사회에서 디지털 범죄에 대한 교육이 얼마나 미흡한지 보여준다.


    디지털 범죄에 대한 법안 개정이 최우선이다. 발달된 디지털 기술의 수준에 맞는 사회적 제도가 먼저 바탕이 되어야 한다. 'N번방 사건'을 계기로 많은 국민들이 디지털 성범죄에 대해 분노하고 경각심을 가졌다. 청와대 국민청원은 디지털 범죄에 대한 국민들의 사회적 합의와 요구를 잘 보여준다. 이 사회적 요구를 적극 수용해 하루빨리 법안과 현실과의 간극을 메워야 한다. 또한 디지털 범죄 전담부서의 전문성을 향상할 필요가 있다. 지금도 사이버 범죄 전담부서가 간혹 존재하나, 현 상황에서 점점 다변화되어가는 디지털 범죄를 제대로 수사하기는 역부족이다. 디지털 범죄의 특성상 해외 공조가 가능하도록 전문인력과 시스템을 갖춘 디지털 범죄 전담부서를 정비해야 한다.


    보다 근본적으로 디지털 범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디지털 범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디지털 범죄 또한 다른 범죄들과 마찬가지로 가해자와 피해자가 분명한 범죄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문화가 만들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언론매체나 교육기관에서 디지털 범죄 관련 용어 사용을 주의해야 한다. 예컨대 '지인 능욕' 대신 '성적 지인 합성 범죄'라는 용어를 사용하거나, '리벤지 포르노' 대신 '비동의 성적 촬영물'의 용어를 사용한다면 해당 범죄의 심각성을 보다 효과적으로 인식시킬 수 있다. 또한 교육기관에서 디지털 범죄 예방 교육이 의무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10대 청소년들이 디지털 기술을 활발하게 이용하고 능숙하게 받아들이나, 이들을 대상으로 한 디지털 범죄 예방교육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하루빨리 관련 교육을 보완, 제작해서 공교육 기관에서 적극 추진해야 한다.


    지금은 기술과 사회 간의 간극이 너무나도 큰 과도기 상태다. 어느 시대나 새로운 기술이 등장했을 때 문화지체현상은 나타났다. 그러나 이를 빨리 해결하지 않으면 더 큰 사회적 혼란으로 이어지고, 더 많은 피해자가 발생할 것이다. 기술과 실제 사회의 간극 속에서 범죄자들은 새로운 토양을 삼았고, 피해자들은 지금도 늘어가고 있다. 하루빨리 디지털 사회의 문화 지체 현상을 해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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