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고, 방황하고,
당황하고, 우울해하고,
후회하다 보니 어느새 OJT가 끝나버렸다.
신이 나서 짐을 들고 당당하게 버스정류장에 갔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3주간의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설레던 첫째 날, 갈팡질팡하던 시간들, 작은 일에 기뻐하고 작지 않은 일에 좌절했던 순간들이 한 장 한 장 스쳐 지나간다. 끝내 나는 집을 구하지 못했다. 수도에 올라갈 짐을 챙기긴 했지만 앞으로 내가 어떻게 될지 막막하다.
집을 구하지 못했다고 해서 파견일이 미뤄지진 않았다.
수도에 올라가서 OJT활동에 대한 간단한 보고를 마치고, 몇 가지 일을 정리하고 나면 다시 이곳 기세니에 돌아와야 한다. 한국에서 가져왔던 2년 치 짐을 모두 싣고 말이다.
쥬디는 자신의 집에서 지내면서 천천히 집을 알아보라고 했지만,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내 덕에 쥬디의 아들 셋이 한 방에서 생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딱히 마땅한 답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눈앞이 캄캄하다. 지금이야말로 모든 것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게 아닐까.
같은 지역에 파견된 동기라도 집을 구했더라면 그 집에 짐이라도 둘 수 있었을 텐데……. 우리는 보란 듯이 둘 다 집을 구하는데 실패했다.
동기가 집을 구하지 못한 것이 안타까우면서도 작은 위안으로 다가온다는 것이 이상했다. 나만 실패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 소소한 위로가 되면서도, 이런 위안에 기대는 속 좁은 내가 미웠다.
이래서 인생은 공수래공수거라 하는 것일까.
이렇게라도 위로를 해보자 싶다가도 곧 파도 같은 생각이 나를 집어삼킨다.
내 상황은 사실 공수래공수거라 할 수도 없다.
침대 앞에 놓인 저 가방들은 뭐란 말인가. 빈손은 어디에도 없고, 가방 안에는 쌓여버린 시간과 욕심, 내려놓지 못하고 가져온 미련만 한 가득하다. 수도에 있는 숙소에도 짐이 한가득인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
누울 자리도 없는데 뻗을 다리만 있으니 걱정이 태산이다.
대책 없이 한국을 떠나온 내가 원망스럽다.
남들 다 구하는 집하나 구하지 못한 무능력한 내가 밉다.
선배 단원도 없는 지역에 나를 파견한 KOICA에 화가 난다.
나를 말리던 교수님과 학교선배, 그리고 아빠의 얼굴이 눈앞을 스쳐간다.
의식주가 이렇게 중요한 것이었구나.
내 나이치고 산전수전을 겪은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오갈 데가 없어지고 나니 그간의 내 삶이 얼마나 평탄했는지 뒤늦게 깨달았다. 하루 종일 먹을 것, 입을 것, 묵을 곳을 고민하는 나를 보며 사람이 얼마나 본능에 충실한 존재인지 절감한다. 그동안 내가 본능보다 이성을 챙기는 사람이라 믿어왔던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교만한 생각이었는지 사무치게 느껴진다.
새까만 하늘 위에 총총 박혀있는 별들은 아름답고
창문너머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시원하다.
수도에 가서 텐트든 천막이든 하나 사 올까.
쥬디네 집 앞마당에 자리를 펴도 좋지 않을까.
문득 든 생각이 나쁘지 않은 것 같아 잠시 그 생각에 머물러 본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갈팡질팡해도 어쨌든 흘러왔다.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도 생긴다.
어차피 대책 없이 시작한 길이라면, 조금 더 무모해져도 되지 않을까.
자자, 그냥.
대충 이 정도면 공수래공수거라 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