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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우 Feb 18. 2021

대학원생 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리뷰 <대학원생 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서른이 넘어 석사 과정 대학원 신입생이 되었다. 배움에 늦음은 없다지만 주변 또래 친구들이 박사 과정을 밟고 있었기 때문에 신경이 아예 쓰이지 않았던 건 아니었다. 1년 전부터 아내가 대학원 입학을 계속 권유하긴 했지만 대학원에 진학할 생각은 없었다. 명석한 편도 아니고 가만히 앉아서 하는 일을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었다. 그런데 대학원생이 되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긴 것도 아니고 갑자기 명석해진 것도 않았는데 말이다.


우연찮게 취미로 글쓰기를 하면서 학문적인 호기심이 커졌고 의미 있는 논문을 써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겨 대학원에 관심이 생겼다. 대학원 접수를 앞두고 주변 대학원생 친구들에게 대학원 생활을 묻기도 하고 온라인 커뮤니티와 카페를 기웃기웃 거리며 정보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회사의 형태와 분위기가 가지각색이듯 대학원의 형태와 분위기도 다양했다. 고심 끝에 대학원과 전공을 결정했고 대학원에 지원해보기로 결심했다.


1년 전부터 관심을 갖고 지켜보았던 교수님이 있었다. 저서를 읽고 칼럼을 꾸준히 챙겨봤다. 존경심이 절로 들었다. 다른 학교도 알아봤지만 내가 지향하는 바대로 연구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결국 해당 교수님이 있는 학교에만 지원하기로 했다. 면접과 연구실 컨택 과정을 통해 원하는 교수님 연구실에 들어가게 되었다.


합격 통보와 연구실이 결정되고서 <대학원생 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이라는 책을 읽었다. 아직 학기가 시작된 건 아니어서 이 책을 집어 든 게 늦은 시기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대학원에 지원하기 전에 알았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을 정도로 유용한 정보와 이야기들이 가득 담겨 있다.


<대학원생 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은 대학원생이었던 3명의 저자가 전반적인 대학원 생활에 대해 풀어써놓은 책이다. 이 중 권창현 저자는 교수다. 덕분에 교수 입장에서 바라본 대학원생에 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


연구를 한다는 것은 인류 지식의 경계를 조금, 아주 조금 더 확장시켰다는 것이다.


대학원생은 공부하는 사람인가요? 일하는 사람인가요?

대학원생은 연구자다. 대학원생은 대학원에 소속되어 있기도 하지만 대학원 내 교수님의 연구실에 소속되어 있기도 하다. 연구실은 연구를 하는 공간이다. 그러므로 대학원생은 대학원 강의를 수강하는 학생이기도 하지만 연구실에 속한 연구원, 연구자다.


따라서 연구 방향과 주제가 설정된다면 연구실과 지도교수 고민은 자연스레 줄어들 것이다. 물론 내가 가고 싶다고 해서 연구실과 지도교수를 결정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교수님이 '합격' 통보를 해줘야 한다. 솔직한 마음으로 '내 돈 주고 대학원에 입학하는데 뭐 이리 들어가기 어려운가?'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책에는 입학 전 연구실과 지도 교수 결정에 관한 고민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학교의 이름보다 연구실과 지도교수가 중요하고 입학 전에는 반드시 연구실을 컨택하고 지도교수를 만나볼 것을 권했다.


물론 대학원 입학의 목적이 '연구'가 아니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력서 한 줄을 늘리기 위함이라면 학교 이름이 중요할 테고 인적 네트워크를 확장하기 위함이라면 아는 교수님과 지인들이 있는 학교에 입학하는 게 건설적인 선택이다.


대학원은 학부와는 다르게 '지도교수'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지도교수의 연구 주제와 방향이 곧 연구실의 주제와 방향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도교수는 대학원 내에서 '절대권력'으로 불린다. <대학원생 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에는 좋은 지도 교수를 선택하는 법이 나온다. 교수의 연구 경력과 성과 그리고 인품들에 따라 유머러스하게 항목을 나누었다.

1위 - 떠오르는 별
2위 - 통제광, 과학 오타쿠
4위 - 반쯤 신
5위 - 달변가
6위 - 노예 주인, 구멍가게 주인, 느긋한 교수
9위 - 사이코
- p.61-65

사실 지도교수를 잘 선택하려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는 게 더 중요하다. 물론 9위 사이코와는 그 누구도 맞지 않을 테니 피하는 게 상책이지만 자신에게 맞는 스타일의 교수가 있는 법이다. 내가 조급한 사람이라면 느릿한 교수와는 맞지 않을 테고 통제당하는 걸 싫어한다면 꼼꼼하게 챙겨주고 통제하는 교수와는 맞지 않을 테다. 나는 주로 개인적인 연구를 확장시키고 심화시키고 싶은데 연구실 교수는 프로젝트를 계속 따와서 연구실을 바쁘게 만든다면 이 또한 맞지 않을 테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대한 고민을 끝내면 지도교수를 선택하는 과정도 수월해지리라 생각한다.


연구실 선택도 마찬가지다. 질서가 잘 잡혀있고 체계적인 연구실은 능동적인 연구 활동의 폭이 줄어든다. 반면 개인의 시간을 자유롭게 보장해주는 연구실은 능동적인 연구 생활이 가능하겠지만 그만큼 길을 헤맬 가능성도 매우 높다. 삽질할 가능성이 매우 높단 뜻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삽질이 비효율적인 행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물도 많이 파 본 사람이 어디가 물이 나올만한 곳인지 잘 알기 때문에 삽질은 피와 살이 되리라 믿는다.


나는 대학원 지원 전부터 프로젝트에 대한 반감이 있었는데 막상 여러 이야기를 듣다 보니 프로젝트를 통해 석사 학위 논문을 발전시키는 사례가 꽤 많다고 한다. 좋은 기회의 프로젝트가 생기면 고민해봐야겠다.


석사 학위는 교수님이 떠먹여 주다시피 하고 박사 학위는 스스로 개척하는 것과 같다고 흔히들 말한다. 따라서 이 점을 감안하고 지도교수와 연구실을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 물론 정답은 없다. 길이야 그냥 걸어가면 새로운 길이 만들어지는 법이니까.


자유와 방종의 차이는 대학원생의 자발성과 책임감이 결정짓는다

프로젝트가 바삐 돌아가는 연구실에서 9to6는 필수이고 야근이 기본일 수도 있다. 하지만 프로젝트가 따로 없는 연구실은 시간이 남아돈다. 하루 종일 딴짓을 해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다. 물론 이에 따른 결과 또한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 무한한 자유가 누군가에게는 타락의 지름길이 되기도 하며 누군가에게는 창조적인 학문 활동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책에서도 대학원생에게 가장 필요한 태도는 '자발성'과 '책임감'이라고 강조한다. 자기 연구를 자발적으로 수행하고 인간관계와 교수님과의 관계 또한 마찬가지다. 따라서 이전에 언급한 바와 같이 자기 성향에 따라 지도교수와 연구실을 잘 선택하는 게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나는 양질의 논문을 양껏 쓰기 위해 대학원에 입학하기로 했다. <대학원생 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을 읽으며 주로 논문을 쓰는 노하우를 집중적으로 살펴보며 꼼꼼하게 메모했다. 이 책이 논문을 쓰는 법에 대한 책은 아니지만 논문에 대해 1도 모르는 나 같은 초짜에게는 매우 귀한 자료를 담은 책이었다.



논문 쓰기에 대해 많은 자료가 있었지만 세 가지만 요약해본다.


첫째, 첫 번째 논문은 최대한 빨리 써라.

1단계: 가설 세우기, 실험하기, 데이터 정리
2단계: 논문쓰기 그림그리기, 영어 첨삭
논문투고
3단계: 수정하기, 추가 실험하기, 재투고하기
- p.189

논문을 쓰고 투고하는 사이클을 최대한 빨리 경험하는 게 논문을 쓰는 데 도움이 된다. 나는 이 첫 번째 논문을 최대한 빨리 쓰기 위해 입학하지도 않은 현재, 논문을 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금 넘치는 의욕 때문에 예상보다 일찍 번아웃을 경험할지도 모르지만 지도교수님께 이런 상황을 말씀드렸고 조언을 구했다. 일주일 간 고민 끝에 목차와 선행연구 목록을 정리한 A4용지 두 장을 들고 교수님을 찾아뵈었다. 교수님은 연구의 방향 그리고 논문에 대한 조언들을 마구 쏟아주셨다. 교수님과의 만남을 통해 논문 쓰기가 한 발짝 진보한 건 아니었지만 어떻게 연구 주제를 잡을지에 대한 조언을 들을 수 있었다. 안 그래도 활활 타오르는 의욕에 교수님은 기름을 부어주셨다. 논문이 언제 완성될지 모르겠지만 학기 전을 활용해서 개인 연구를 최대한 진전시켜볼 생각이다.


둘째, 아이디어를 남에게 이야기하라.

결국 아이디어를 말하고 안 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었던 것이다.
- p.344

단순히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는 것과 아이디어를 '논문화'하는 것은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논문과 아이디어 대한 피드백을 주고받을 스터디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때론 함께 논문을 써도 되고 따로 논문을 쓰더라도 서로에게 피드백을 주면 윈윈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논문의 구조를 파악하라.

나는 이런 문제를 풀 거야(abstract)
사실 이 문제는 이런 동기에서 연구가 시작된 건데(introduction)
관련해서 이런저런 접근들이 있었지 (related works)
난 이런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해보려고 하는데(method)
정말 이게 효과적인지 실험도 해봤어(experiment)
실험 결과는 이렇게 해석할 수 있지(discussion)
마지막으로 너를 위해 요약해줄게(conclusion)
- p.68


때로 논문은 하나의 단행본으로 나와도 부족할 양이 아니기도 하다. 내용은 학문적 가치를 지녀야 하고 논리성을 띠어야 한다. 양만 채워서도, 질만 채워서도 안된다.


논문에 대해 막막하던 차에 이 책을 펼치고서 논문의 구조를 맛보기라도 할 수 있었다. '어떤 동기로 연구를 시작했는지, 어떤 연구를 할 건지, 어떤 연구 방식으로 연구할 건지, 결론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쉽게 이야기해준다. 마침 교수님과 미팅 때 논문에 관한 책을 읽어볼 것을 권유하셔서 논문에 대해 공부하면서 관심 있는 연구 논문들을 읽어볼 생각이다.


대학원 입학 결정 전부터 연구실과 지도교수가 결정된 지금까지도 막막함의 연속이다. 앞으로 대학원 생활이 이런 막막함의 연속일지도 모르겠다. 책을 통해 온통 암흑으로 가득 찬 대학원 생활에 일부분 빛이 비치었다. <대학원생 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은 아무것도 예상이 되지 않고 막막한 대학원생에게 도움이 될 책이다. 책을 읽는다고 모든 궁금증이 해결되진 않겠지만 그래도 이 책이 대학원생 라이프의 든든한 친구가 되어줄 것이라 믿는다. 혹시 대학원에 지원할 예정이거나 이제 막 대학원에 입학했다면 <대학원생 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일독을 권한다.


p.s. 그나저나 책 이름은 글을 쓰면서 몇 번을 썼는데도 쓸 때마다 책 제목을 거듭 봤다. 내가 멍청한 건지 책 제목이 긴 건지 모르겠다. 어쨌든 이렇게 똑똑하지 않은 나도 대학원생이 되었으니 이 글을 읽는 모두 힘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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