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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우 Dec 30. 2021

'OOO만 호 건설' 공약이 실패하지 않으려면

최민아 <우선 집부터, 프랑스의 사회주택>

집 문제로 난리다. 인구가 밀집되어 있는 서울은 더욱 큰 문제다. 2013년부터 2021년까지 서울 주택 매매가격지수(주택시장의 평균적인 매매가격 변화를 측정하는 지표)는 꾸준히 상승했다.


2012년부터 2021년까지 주택 매매가격지수다. 주택 매매가격지수는 2021년 6월을 기준시점으로 하여 100인 수치로 환산한 값이다. (자료 출처: 통계청)


이재명 대선 후보는 기본 주택 100만 호를 포함한 250만 호 이상의 주택을 공급하겠다고 밝혔고, 윤석열 대선 후보는 민간 재개발, 재건축 규제완화를 통해 주택공급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과연 주택 공급의 양만으로 주택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지난 5년 동안 주택 공급만으로 주택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은 이미 입증된 바이다.


2019년 서울 아파트 기준 제곱미터당 평균 가격은 911만 원이었다. 지구 건너편 프랑스 파리는 어떨까? 파리 전체에서 가장 주택 가격이 싼 19구는 제곱미터당 7909유로(약 1028만 원)다. 서울 평균 아파트 가격보다 주택 가격이 비교적 저렴한 파리의 19구의 주택 가격이 비싼 것이다. 그렇다면, 프랑스 파리 시는 소득 수준이 높은 사람들만이 거주할 수 있는 도시일까?


프랑스 사회주택이 국내 공공임대주택과 다른 점


책 <우선 집부터, 파리의 사회주택>은 저자의 경험으로부터 시작해서 국내 주거 문제를 지적하고 프랑스의 사회주택 사례를 소개한다.


책 <우선 집부터, 파리의 사회주택>


프랑스에서는 서민들이 저렴한 가격에 거주할 수 있도록 시나 다른 공공기관이 건설하고 임대해주는 집을 사회주택이라고 부른다.


우리나라 공공임대주택과 비슷해 보일지 모르겠지만 건설 방식과 공급, 운영 방식에 있어서 차이가 있다. 우리나라는 중앙 정부가 공기업을 통해 공공임대주택을 건설하는 반면, 프랑스는 주로 지방 정부와 연결된 공공기관이나 비영리적 성격의 민간 기업이 사회주택을 건설한다.


국내 공공임대주택은 공공성을 보장하지만 주택의 질이 떨어진다는 평이 주를 이룬다. 하지만 사회주택은 비영리적 성격의 민간 기업이 건설하기 때문에 주택의 질을 확보할 수 있고 동시에 공공성도 충족한다.


파리의 사회주택 비율은 전체 주택의 20%를 넘는다. 프랑스 전체만 보더라도 17%를 넘기 때문에 파리를 조금 벗어나거나 인기가 높은 주택이 아닌 경우 사회 주택에 거주할 수 있는 확률은 더욱 높아진다. 반면 2020년 국토부가 발표한 국내 장기 공공임대주택 재고율은 8%를 조금 넘는다. 프랑스 사회주택 중에서도 저소득층만을 대상으로 하는 HLM은 460만 호(15%)로 국내 공공임대주택 재고율(8%)에 비해 높은 수치다.


민간임대주택에 입주하기에는 경제적 부담이 있지만 그렇다고 공공임대주택에 입주할 수 없는 소득 계층이 존재한다. 사회주택 제도는 주거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소득 계층에게도 대안이 될 수 있다. 프랑스인이라면 사회주택에 입주할 수 있지만 국내에서는 높은 임대료의 민간임대주택에 거주해야만 한다.


소셜 믹스와 저소득층 주거 보조 수단으로써 훌륭한 대안


프랑스 사회주택은 거주하는 사람의 소득에 따라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된다. PLUS(prêt locatif à usage social), PLAI(Prêt Locatif Aidé d'Intégration), PLS(prêt locatif social)으로 구분된다. PLUS는 일반적인 사회주택 유형으로 중간 소득 계층을 대상으로 하며, PLAI는 소득이 낮은 계층, PLS는 소득이 높은 계층을 대상으로 거주자를 선발한다.


동일한 주택이어도 계층에 따라 임대료가 달라지고 임대료 상한 금액이 정해져 있다. PLUS는 제곱미터당 임대료 상한 금액이 6.44유로이며 PLAI는 5.71유로, PLS는 13.34유로이다. 임대료가 소득 유형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예를 들면 60제곱미터에 해당하는 주택은 PLUS는 386.4유로(약 50만 3200원), PLAI는 342.6유로(약 44만 5380원), PLS는 800.4유로(약 140만 5200원)를 초과하지 못한다. 동일한 집이라도 사는 사람의 소득 수준에 따라 임대료는 거의 3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


프랑스 사회주택은 저소득 계층이 파리 도심에 거주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이면서 동시에 여러 소득 계층이 섞여 사는 '소셜 믹스'를 자연스레 실현하도록 뒷받침하는 제도이다.


국내에서도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하면서 소셜 믹스를 시도했다. 하지만 설계부터 임대, 분양까지 구분이 되면서 허울뿐인 '소셜 믹스'는 의도치 않은 화제가 되었다. 이와 비교한다면 프랑스 사회주택 제도는 소셜 믹스의 좋은 사례가 아닐까?


프랑스 사회주택 성공 요인은 막연한 구호가 아닌 공공성을 담보하는 제도


오늘날 프랑스에서 사회주택이 자리 잡을 수 있었던 이유와 사회주택 공급량을 확보할 수 있었던 이유는 오래전부터 제정된 제도들 덕분이다.


첫째, 1953년부터 건설 노력을 위한 기업주의 분담금 제도가 제정되었다. 이 제도에 의해 기업이 사회주택 건설을 위해 기금을 내야 한다. 이 제도는 1943년 니에르 루배라는 회사를 경영하는 알베르 프루보가 고안하고 실행하면서 법제화되었다.


둘째, 2000년 제정된 도시의 연대 및 재생에 관한 법률에서는 2025년까지 사회주택 건설 비율을 전체 25%까지 높이도록 각 지자체에 의무를 부여했다.


셋째, 사회주택을 짓는 ESH라는 민간기업이 있다. ESH는 민간기업이지만, 이익이 발생하면 운영을 위해 필요한 수입 이외에는 모두 사회주택 건설이나 관련 사업에 재투자해야 한다. 사회주택이 건설되고 이로 인한 수익은 다시 사회주택 건설에 사용된다.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제도다.  


이 외에도 책 <우선 집부터, 파리의 사회주택>은 사회주택 제도를 비롯한 다양한 주거 제도를 소개한다.


공공주택 공급 양 확보를 위해서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국내에도 사회주택은 존재한다. 지역별로 사회주택의 정의와 공급 대상은 상이하다. 2021년 9월 기준 사회주택은 전국에 약 5천 가구다. 프랑스의 사회주택 비율이나 국내 공공임대주택 비율에 비교하면 매우 낮은 수치다. 서울시는 2015년, 경기도는 2020년 처음으로 사회주택 활성화 조례가 제정되었다. 제도적으로 정착한 지 얼마 안 되었기에 어쩌면 사회주택 공급율이 낮은 건 당연한 이치일지도 모르겠다.


사회주택 제도는 시기나 규모 면에서 걸음마를 떼고 있는 수준이다. 단기적인 성과로만 측정하여 제도의 적합성을 판단하기에는 이른 시기다. 반면 최근 오세훈 시장은 '서울시 바로 세우기'를 추진하면서 사회주택 사업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 현재 사회주택에 살고 있는 세입자나 사회주택 입주를 고려하는 사람들에게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다. 프랑스와 같은 제도가 없으니 시장 한번 바뀔 때마다 주거권이 휘청거릴 수밖에 없다.


장한평역 인근에 위치한 사회주택 '장안생활'


대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재명 대선 후보는 지난 11월에 서울시 장안동에 위치한 사회주택 '장안생활'에 방문하여 "택지를 개발할 경우 재건축이든 재개발이든 일정 비율을 사회 공유 주택으로 배정하면 된다"라고 말했다. 다만 비율에 관한 구체적인 공약은 발표되지 않은 상태다.


이재명 후보를 비롯한 윤석열, 안철수, 심상정 등 대선 후보들이 전반적으로 공급 양에만 치중하는 주택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하지만 제도가 개선되지 않으면 ‘OOO만 호 건설’과 같은 공약은 허공에 외치는 구호가 될 것이다.


프랑스 사회주택이 자리 잡을 수 있었던 핵심적인 요인은 공공성을 담보하는 세부 제도에 있다. 사회주택과 같은 공급 방식의 다양화, 민간주택 건설 시 공공주택 혹은 사회주택 건설 의무화, 공공성을 추구하는 사회적 기업 지원 등 제도 개선에 대한 구체적인 제도적 ‘침술’이 필요한 시점이다.


(오마이뉴스 기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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