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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우 Jan 10. 2024

새해 시작할 운동 찾으세요?

작심 1년이 되기 위한 조언

2023년 12월 31일 마지막 날에도 복싱장에서 땀을 흘렸다. 간간히 썼던 부부일기장을 꺼내보니 2월 1일 처음 복싱장에 등록했다. 복싱으로 시작한 한 해를 복싱으로 마무리했다. 퇴근 후 ‘오늘은 쉬겠다’고 결심하고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 그대로 복싱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던 건 부지기수였다. 그야말로 복싱에 빠진 한 해였다.


연초가 되면 가장 많이 결심하고 다짐하는 것이 '다이어트', 살을 빼거나 건강을 챙겨보겠다는 사람들의 새해 다짐은 다이어트로 수렴한다. 내가 복싱장에 들어선 이유도 별반 다르지 않다. 코로나 시기를 지나오면서 자연스럽게 운동을 멀리하게 되었는데 떨어진 체력을 증진하기 위해 복싱장에 등록했다.


복싱 수련으로 체력 증진에서 재활까지


목적대로 기초 체력이 상승했다. 복싱은 기초체력운동이 필수다. 체육관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정통복싱 체육관의 구성은 유사하다.



우리 체육관의 기본 운동은 달리기 10분, 줄넘기 3세트, 벽치기 3세트, 쉐도우 3세트, 샌드백 3세트, 미트 1세트, 스피드볼 3세트, 탭볼 3세트로 구성되어 있다. 유산소 운동과 무산소 운동이 섞여 있다. 지방을 태우면서도 심폐지구력, 근력과 근지구력을 향상할 수 있다.


기본 운동 이후 혹은 운동 중간에 웨이트나 스파링 등 자율운동을 하는 이도 있다. 물론 어느 정도 경력이 쌓이면 각 단계별 세트 수나 운동 구성을 조정할 수 있다.


1년 동안 회식과 가족 행사를 제외하고는 평균 주 4회, 일 2시간 이상 복싱을 수련했다. 기초 체력이 향상했음을 스스로 느낄 수 있었다.



내 몸은 의심의 몸뚱아리다. 채식과 고강도 운동을 병행하기 때문이다. "도대체 단백질은 어떻게 섭취하냐"라는 의심 가득한 질문을 매번 받는다. 간혹 미지의 세계에 사는 사람이 된 것도 같다. 파트리크 바부미안(비건 스트롱맨)처럼 '근육 벌크업'을 하면 이 단백질 질문이 그칠까.


육식하던 때와 근육량은 크게 차이가 없다. 오히려 체지방률은 10%로 낮은 편이다. 육식하던 때보다도 낮은 수치다. 낮은 체지방률은 성실하게 운동해서 얻은 덤이다.


체력 증진 외에도 한 가지 목적이 더 있기도 했다. 재활이었다. 2022년 10월 사고로 왼쪽 발목이 심하게 꺾였다. 발 전체에 피멍이 들고 종아리와 발목의 경계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부었다. 목발을 짚어야만 이동이 가능했다.

 

3개월 후 복싱장에 등록하여 재활을 시작했다. 발목을 다치고 복싱한다는 소식에 '위험한 거 아니냐'라고 의문을 갖는 이들이 많았다. 다행히도 복싱 특성 상 왼발을 굽힐 일은 많지 않았다. 재활의학과 원장님께서도 왼발을 굽힐 일이 많지 않기 때문에 복싱을 해도 괜찮다는 의견을 주셨다.


줄넘기나 스텝 훈련을 하면서 종아리 근육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다. 종아리와 주변 근육이 손상된 발목 인대를 대신하여 기능했다. 혈액이 순환되면서 굳은 발목과 주변 근육이 이완되는 효과도 있었다. 다행히도 지금은 달리기도 가능한 수준으로 발목 상태가 괜찮아졌다.


여기까지는 복싱을 시작할 때 어느 정도 예상하던 바다. 그런데 1년 간 복싱장에 꾸준히 다니자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취미로 시작한 복싱, 생활체육대회 최우수선수상 수상 받았던 비결



두 번의 생활복싱대회에 나갔다.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상대와 링 위에서 주먹을 나눴다. 생활복싱대회에 나갈 생각이 처음부터 있던 건 아니었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체육관에 등록했다. 등록하고 보니 관장님은 챔피언 출신이고 다섯 명가량의 프로 복서가 소속된 체육관이었다.


운동 시작 후 2주 정도 지났을 때였나. 오래전에 복싱을 잠깐 했었다는 얘기를 들었던 관장님은 스파링을 제안했다. 스파링 재미에 푹 빠져 매주 1~2회 정도 링 위에 올랐다.


어느덧 4개월이 되었을 때 서울시협회 생활복싱대회가 열리고 있는 링 위에 올랐다. 코로나 감염 이후여서 컨디션이 좋진 않았다. 그러나 성실히 준비한 노력이 아깝기도 하고 처음이니 승패에 연연하지 말고 경험 삼아 나가보기로 했다. 결과는 판정패.


승패에 연연하지 않겠다던 대장부 같던 마음은 금세 쪼그라들었다. 그러나 패배의 기억은 불씨가 되어 훈련에 불을 지폈다. 땀 흘리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승리를 향한 갈증도 커져갔다. 결국 11월 두 번째 복싱대회에 나갔다. 결과는 무승부.


응원 와준 아내와 친구의 위로를 받으며 남은 시합을 보기도 하고 프로레슬링 김남훈 선수와도 사진을 찍으면서 아쉬운 마음을 달랬다.



그런데 심판들에게 눈도장이 찍혔던 걸까. 최우수선수상을 수상했다. 무승에 최우수선수상이라니. UFC 격투기 선수들이 패배하고도 인센티브를 받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의미인 걸까. 다소 얼떨떨했지만 트로피를 손에 드니 뿌듯했다.


별다른 칭찬을 하지 않았던 관장님도 "성실하게 체육관에 나와 운동한 보상인 것 같다"라고 말씀하셨다. 아내가 종종 "성실함이 재능이야"라고 북돋아주곤 하는데, 막상 최우수선수상 트로피를 받고 보니 실감이 났다. 그제야 스스로를 성실했다고 인정할 수 있었다.  


'한 해 동안 다른 건 몰라도 복싱만큼은 성실하게 했구나'


동네 사랑방 같은 복싱장


복싱장에 등록하고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한 가지 더 있다. 복싱장이라는 장소에서 생겨난 관계다. 일반적으로 복싱은 혼자서 하는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줄넘기, 쉐도우 복싱, 샌드백 치기는 혼자서 하는 운동이다.


그러나 미트 치기와 스파링처럼 합을 맞추는 훈련도 있다. 매일 미트 훈련의 짝이 되어주는 관장님은 물론이고 스파링 하는 상대와 인간관계가 생겼다. 복싱 실력이 향상되었다고 자만할 때쯤이면 관장님과 프로 복서들은 내 얼굴과 몸을 두들겨주었다. 사각형 링에서 주먹을 비롯해 온몸을 격렬한 대화를 나누고 나면 친밀해진다. 나만의 느낌이려나. 프로 시합에 나간 선수를 내가 응원하기도 하고, 프로 복서가 11월 출전했던 생활복싱대회에 와서 세컨(코치)을 봐주기도 했다.



프로 복서는 아니지만 흔히 '고인물(보통 복싱계에서는 오랫동안 복싱장에서 운동한 실력자를 긍정적인 의미로 지칭함)‘로 지칭되는 형님들과도 스파링을 하면서 내 단점과 한계를 매번 마주하게 되었다. 서로 연습 상대가 되어주면서 자연스럽게 인사도 나누고 사소한 대화도 나누게 된다. 몇 명의 회원은 이웃 주민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심지어 한 회원은 같은 동에 거주한다.


어느덧 서른 중반이 되니 청소년이나 아동을 마주칠 기회가 줄어든다. 그런데 스파링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고등학생이나 대학생과 스파링도 하고 소소한 대화도 나눈다. 다만 초등학생 이하 친구들과는 많은 대화를 나누지 못한다. 사회 분위기상 아저씨가 아이들에게 말을 먼저 건네는 건 적절치 않지 않은가. 서른 중반의 아저씨가 말을 건네면 지레 겁부터 먹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빠와 함께 복싱장에 와서 훈련하는 모습, 삼삼오오 복싱을 매개로 친구들과 어울리며 대화하는 모습, 관장님과 대화하는 모습을 보면서 '요즘 아이(?)'들은 어떤 생각을 하며 지내는지 가늠하게 된다. 끈끈한 인간관계는 아닐지라도 아이가 없는 우리 부부가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해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할지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되는 계기도 된다.


복싱장은 두 개의 주먹을 매개로 하는 사랑방 같은 장소가 아닐까.


복찬호가 전하는 취미 오래 지속하는 방법


건강 관리와 재활이라는 목표를 어느 정도 달성한 것 같아 기쁜 한 해다. 생활복싱대회 최우수선수상 수상과 함께 복싱을 연결 고리로 하여 생긴 인간관계까지. 의도치 않았던 취미 인센티브를 받는 것 같아 보람차다.


성실함은 무기가 되었다. 무언가를 시작하면 끝장을 보는 성격은 아니지만, 취미라도 어느 정도의 의무감을 부여한다.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의무감은 일종의 땜빵이다. 게으름과 피곤함이라는 틈새로 포기하려는 마음이 수시로 간을 보기 때문이다. 이 유혹에 넘어가 좌절감을 맛본 게 한두 번이 아니다. 물론 적절한 휴식도 필요하다.


성실함과 동시에 대충 하는 미덕도 필요하다. 계획을 완벽히 실행하기 위한 부담감이 무거우면 시작 자체가 어렵다. 글쓰기도 그렇지 않은가. 처음부터 완벽한 글을 쓰려고 하면 한 문장 쓰는 것조차 어려워진다. 일단 한 문장을 완성해야 지울 부분도, 덧댈 부분도 보인다. 복싱을 비롯한 모든 취미 운동도 마찬가지일 테다.



올 한 해도 복싱에 빠져 있을 것 같다. 지난해처럼 꾸준히 복싱을 수련하고 생활복싱대회는 두 번 정도 나가는 게 목표다. 한 해 동안 복싱장에서 흘린 땀방울만큼이나 이야기보따리가 가득해졌다.


지난해는 무슨 일을 겪든 복싱에 비유하고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던 것 같다. 아내는 이런 날 ‘복찬호(복싱 박찬호)‘라고 부른다. 글을 쓰고 보니 복싱 이야기만 잔뜩 풀어놓은 복찬호가 된 기분이다. 하지만 올해도 복찬호의 복싱 이야기는 계속된다.


“내가 오늘 스파링 때 말이야...”


(오마이뉴스 게재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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