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공주의, 토지공개념 관점으로 바라본 종묘 앞 개발
참 걷기 좋은 계절이다. 지난 10월 29일부터 11월 9일까지 코리아 그랜드 페스티벌 기간이었다. 4대 궁을 비롯해 종묘를 개방하여 무료로 입장할 수 있었다. 이 기간에 창덕궁, 창경궁, 종묘를 방문했다. 내국인뿐만 아니라 많은 외국인 관광객이 방문하여 궁궐과 종묘에서 가을의 정취를 즐기고 있었다.
사대문 안 유적지 중 종묘를 가장 좋아한다. 종묘는 1963년 사적 제12호로 지정되었으며 199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조선시대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신 유교식 사당이다. 종묘의 중심부라고 할 수 있는 정전은 서쪽부터 동쪽까지 총 19개 방에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셨다. 종묘의 건축적 아름다움은 화려함이 아니라 절제에 있다. 가장 단순한 형태의 맞배지붕 양식과 101m라는 어마어마한 길이가 결합하여 신성과 위엄을 드러낸다.
종묘 대 재개발 논란의 중심에 있는 '앙각 규제'
얼마 전부터 종묘 인근 개발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서울시가 세운4구역 재정비촉진계획을 변경했기 때문이다. 세운4구역 일대는 종묘 바로 맞은편이자 세운상가 서측에 있는 구역이다. 재정비촉진계획을 변경하면서 건축물 높이완화에 관한 계획이 변경되었는데 개방형 녹지를 확보하는 조건으로 높이를 완화시켜 준다는 내용이다.
종묘 인근 개발 논란의 핵심은 건축물의 높이다. 종로변은 최대 101m까지 청계천변은 145m까지 건축할 수 있다. 아파트 층고 2.5m를 기준으로 하면, 종로변은 40층, 청계천변은 58층까지 올릴 수 있는 높이다. 이를 두고 국가유산청은 종묘 관련 세계유산영향평가(Heritage Impact Assessment, HIA)를 요구 중이다. 종묘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선정되었기 때문에 유산영향평가가 더욱 필요한 유산이다.
실제로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가 인근 개발로 인해 조망이나 보존가치가 훼손되어 세계문화유산 목록에서 해제된 사례가 있다. 반면 서울시는 국가유산청이 세계유산지구의 필수 구성 요소인 완충구역조차 설정하지 않았다며 대립 중이다.
일반적으로 국가유산 인근 건축물은 앙각 27도 규제를 받는데 이를 넘어서면 국가유산위원회 심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서울시는 2024년 국가유산 보존 및 활용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고 앙각 규제 사항은 삭제했다. 쉽게 말해 현재 법적으로 세운4구역은 앙각 규제 대상은 아니다. 실제로 대법원에서도 문제 될 것 없다고 판결한 바 있다.
조례 삭제 이전에 구체적으로 높이 몇 m의 규제가 있었을까? 종묘 경계부에서 100m까지는 3.2m 높이의 건축만 허용되었다. 100m 밖은 앙각 27도 선 이내로 규제를 받는데, 앙각 27도 선은 보호구역 경계지점에서 건축 예정인 건축물까지 거리와 건축물 높이가 2:1에 해당하는 선이다.
예를 들면 현재 세운4구역 재정비촉진계획으로 지정된 부지까지 거리는 약 180m다. 종로변 경계부는 43.2m가 최고 높이가 된다. 하지만 조례 제정과 함께 변경된 세운4구역 계획에 따르면 종로변은 101m까지 건축이 가능하다. 결론적으로 두 배 이상 높게 건물을 지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녹지공간을 조성하면 용적률 인센티브 줄게
그런데 서울시 세운4구역 재정비촉진계획 변경의 핵심은 고층 건물에만 있는 건 아니다. 용적률이 상향되었고 그 중심에는 녹지공간 조성 내용에 있다. 허용용적률은 700 이하였지만 개방형 녹지 30% 초과 설치, 상가 세입자 대책 수립, 역사 보전 등에 따라 800 이하로 상향되었다. 상한용적률도 향상되었다. 상향용적률은 건축주가 토지를 공원과 도로 등의 공공시설로 기부채납할 경우 추가로 부여되는 용적률이다.
종묘를 예로 들면 동일한 면적의 부지에서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이 늘어나게끔 계획한 것이다. 동일한 면적 내에서도 수직공간을 활용하고, 지상 1층은 공원과 같은 녹지공간을 조성하는 '효율적인' 도시계획 수법으로 볼 수 있다.
서울시는 고층 건물을 지을 수 있도록 허가하고 대신 사업주는 녹지공간을 제공받는 것이다. 재정비촉진계획 고시 상으로는 녹지 확보를 조건으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으로 나와있지만, 뒤집어 보면 서울시는 사업성을 극대화하고 동시에 공공녹지공간을 확보하려는 속셈이다.
종묘 일대의 녹지공간을 확보하려는 계획은 2000년 도심부관리기본계획, 2007년 도심재창조 종합계획, 2023년 녹지생태도심 재창조전략까지 오세훈 시장의 오랜 숙원 사업이다. 자세한 내용은 이전 글(https://brunch.co.kr/@rulerstic/400)를 참고하길 바란다.
지공주의 관점에서 바라본 종묘 인근 개발
최근 우연히 종묘 인근에 유명한 비건 브런치집을 발견하면서 두 차례 더 방문했다. 종묘와 세운상가 일대를 둘러보았다. 이전에는 고층 개발 문제가 국가유산 조망과 도시계획 관점에서만 보였다면, 이번에는 지공주의 관점에서 바라보게 되었다. 사실 종묘 인근 지역 개발의 근본적인 문제는 높이 자체에만 있지 않기 때문이다.
지공주의 관점은 본래 땅은 모두의 것이지만 효율성을 위해 소유권과 사용권을 사유하되 토지가치는 공유하자는 개념이다. 지공주의는 현대 자본주의와 토지소유권 제도와는 상반된다.
현재 제도에서 세운4구역 부지 소유주와 사업시행사가 사업성을 높이려는 시도는 당연한 결과다. 사업성을 높이는 것은 자본주의의 미덕이니까. 그러나 도시계획의 본질은 공공성이다. 재정비촉진계획 변경은 일종의 도시계획이다. 도심 환경을 쾌적하게 변화시키고 경관을 현대적으로 바꾸는 데다가 녹지공간까지 마련할 수 있으니까 공공성을 담보한다고 볼 수 있을까?
사업성을 증대시킬 때 가장 큰 이익은 소유주와 사업시행자에게 돌아간다. 어쩌면 도시계획이 사업성을 증대하는 데 일조하고 있는 것이다. 동시에 주거 혹은 상가 세입자는 다른 지역으로 밀려난다. 밀려난 이들이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임대료 인상은 당연한 수순이다. 새로 생긴 고층 건축물에 기존 소상공인이 입주하기는 쉽지 않을 테다.
본질적인 문제는 토지의 사유재산화 아닐까?
단순히 세운4구역만의 문제는 아니다. 세운상가 보행로를 걷다 보면 서측에 공구거리가 있다. 이 지역은 세운2구역인데 최근 재개발준비위원회가 출범하며 재개발계획을 세우고 있다. 화재가 발생하기도 했다는데 필지가 잘게 나누어져 있어서 화재 피해의 위험은 더욱 크다. 외관만 봐도 굉장히 낙후되어 환경 개선은 반드시 필요해 보인다.
세운상가 또한 마찬가지다. 세운상가는 종묘 맞은편에 있는 주상복합건축물이다. 1~4층은 상업용으로, 5층~8층은 주거용으로 건축되었다. 1~4층 상가는 대다수가 상가나 창고로 활용되고 있었다. 5층부터는 별도 관리실이 있고 주거로 사용되던 5층 대다수 공간은 사무실이나 창고로 활용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주거용으로 거주하고 있는지 건물 관계자에게 문의해 봤다. 외부인인 필자를 매우 경계하며 확인해 줄 수 없다는 답변을 전해 들었다.
종묘 인근 개발 문제는 세계문화유산으로서 가치도 중요하지만, 토지의 사유재산화가 본질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만약 건축물의 높이를 규제한다면, 세계문화유산으로서 조망과 보존가치는 유지될 것이다. 하지만 개발되는 실제 주거, 상가, 업무시설을 임차하는 이들의 임대료는 더욱 올라갈 것이다. 당연히 사업주 이익과 소유주의 불로소득은 증가할 것이다.
개발하지 말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개발 이익을 땅 소유주와 사업시행자만 가지냐는 것이다. 소유주만이 땅의 가치를 상승시켰다고 할 수 있을까? 세운상가 일대만 하더라도 도심부에 가까운 위치, 대중교통의 편리함, 산업생태계 등 이 모든 것들을 어찌 소유주만 일구어 온 것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어쩌면 개발이익을 공공으로 환수하는 제도가 제대로 안착하지 못하는 데서 발생한 문제 아닐까? 시장이 바뀔 때마다 종묘 인근 재정비구역은 휘청인다. 좀 거칠게 표현하면 지자체장이 용적률을 사고팔며 토지를 소유한 일부 사람만이 이익을 공유할 수 있다.
"종묘 앞 땅주인은 개발로 돈 벌었대, 우리도 가능하지 않을까?"
세운4구역 계획과 정비사업 추진은 종묘 인근 지역 개발의 가늠자가 될 것이다. 하나의 사례가 생겨나면 여기저기 개발 욕망은 바이러스처럼 퍼져나갈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종묘 인근 지역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 다른 국가유산 인근 지역으로도 개발 욕망이 피어오를 것이다. 또한 개발제한구역으로 불리는 그린벨트에도 도시의 검은 욕망이 충분히 확장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