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단골가게가 있는가? 필자는 무주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도시보다는 동네라는 말이 어울릴 법한 이곳에서는 자연스럽게 단골이 생겼다. 지금처럼 편의점이 많지 않았던 때여서 집 건너편 슈퍼마켓을 이용했다. 건넛집이니 이름, 나이, 누구의 아들인지도 알고 있다.
치킨은 늘 페리카나에서 시켜 먹었다. 양념치킨이 맛있던 가게다. 사장님께서 직접 배달하셨는데, 우리는 치킨과 돈만 거래하는 게 아니었다. 사장님과 나는 자주 스몰 토크를 나눴다. 사장님은 위트가 있고 대화에는 늘 칭찬을 양념처럼 섞어주셨기 때문에 대화는 불편하지 않았고 즐거웠다. 지금도 사장님의 웃는 얼굴이 선하다.
단골 가게는 분위기도 중요하고 판매하는 상품도 중요하다. 하지만 단골이라고 부르는 데에는 결국 '얼굴'이 떠올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서로의 얼굴을 알아볼 수 있어야 한다. 관계를 맺고 소소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정도는 되어야 단골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고등학생이 되면서 전주로, 대학생이 되면서 대전으로, 직장을 구하면서 서울로 머무는 자리를 옮겼다. 특히 서울에 올라와서는 단골 가게랄 게 없었다. 자주 가던 음식점이나 편의점은 있었지만 떠오르는 얼굴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만 그런 걸까. 보통 편의점이나 마트에서 장을 본다. 커피는 동네 카페보다는 프랜차이즈 카페에 가서 마신다. 이유는 다양하다. 편리함, 표준화된 상품, 저렴한 가격... 도시에 온 이후로 어느새 단골 가게는 기억 속에서 잊혀 갔다.
채식하면서 생긴 단골가게
도시에 살면서 자연스레 단골이라는 존재는 없어졌다. 그러던 내게 단골가게가 생기기 시작했다. 이유는 채식 때문이었다.
우리 부부는 외식할 때면 서울 이태원과 망원역 인근에 자주 간다. 비건 전문음식점이 많기 때문이다. 몇 년 전 우연히 이태원 비건 중식점 오픈 소식을 알게 되었다. 이곳은 모든 메뉴가 비건이다.
특히 대체육으로 만든 새콤달콤한 유린육, 얼큰하면서도 깔끔한 짬뽕이 일품이다. 술을 즐겨 마시진 않지만 좋은 안주가 있으면 술이 당기는 법. 이곳에 오면 자연스레 연태고량주를 주문하게 된다.
우리 부부는 축하할 일, 기쁜 일이 있거나 어떤 일이 마무리될 때면 이곳을 찾는다. 음식과 함께 특별한 날을 기념한다. 이후로 마음이 맞는 논비건인 친구와 식사를 하기도 했다.
점차 손가락으로 셀 수 없을 정도의 방문 횟수가 되니 매니저님과 안면을 트게 되었다. 채식에 관한 이야기를 비롯해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얼마 전 이 음식점을 독서모임 뒤풀이 장소로 추천했다. 함께 독서모임을 한 지 2~3년 여정도 되었고 한번 정도는 비건 전문음식점에 가봐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게다가 미셰린 장소로 선정되었기 때문에 추천할 만하다고 생각했다. 이 음식점은 2025년 미셰린 빕구르망으로 선정되었다. 빕구르망은 합리적인 가격에 훌륭한 음식이 제공되는 음식점에 부여되는 등급이다.
결국 추천한 비건 음식점으로 뒤풀이 장소가 결정되었다. 여덟 명이 모였고 나를 제외한 모든 모임원이 전부 논비건이었다. 다행히도 대다수 모임원이 대체육 식감과 맛에 놀라며 굉장히 만족했다. 가족들과 오겠다는 모임원도 있었다. 먹을만하다는 정도가 아니라 그냥 맛있는 음식점으로 인정해 주시는 것 같아서 괜스레 기분이 좋았다.
게다가 매니저님은 나를 반갑게 맞아주셨고 셰프님은 비건 만두를 서비스로 주셨다. 금상첨화였다. 이 모습을 본 몇몇 모임원이 신기하고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아마도 얼굴을 알아보는 것에 놀라웠을 테다. 여기에 '서비스'가 더해지니 놀라울 따름 아니겠는가.
채식 아저씨를 향한 김밥에 담긴 '정'
돌이켜 보면 단골 가게는 이곳만 있는 게 아니다. 집 주변에도 단골 가게가 있다. 돌솥비빔밥에는 계란을 빼고, 김밥에는 햄과 맛살을 빼달라고 요청한다. 이제는 가게 사장님이 나를 '채식하는 아저씨'로 기억한다. 그 기억에는 약간의 안쓰러움과 걱정이 묻어 있다.
"언제부터 채식하셨어요?"
"고기 먹어야 되는데..."
말로만 걱정만 하셨다면 잔소리로 들었을 텐데 푸짐한 음식을 보면 진심이 느껴진다. 고기를 먹지 않는 만큼 채소를 듬뿍 넣어주시기 때문이다.
김밥이 정말 맛있다. 채소의 식감이 살아있다. 아삭아삭한 당근과 양배추, 구수한 우엉까지. 여기에 적당한 밥과 김을 돌돌 말아 참기름으로 마무리한, 최고의 김밥이다. 가득 채워진 채소 때문에 빵빵해진 김밥 한알이 입안을 가득 채워 아귀아귀 씹다 보면 건강해지는 느낌이 든다.
이뿐만이 아니다. 한 번은 반찬으로 드시려고 만든 시금치 무침도 주셨다. 시골에서 직접 기른 시금치였다. 뿌리까지 그대로 무쳤는데 고소하다며 꼭 맛보라고 하시면서 말이다. 동지에 팥시루떡을 나눠주셨던 기억도, 음식을 포장할 때 담근 김치를 주셨던 기억도 선명하다.
이건 서비스가 아니라 '정'이다. 무언가를 주실 때도 "먹어, 먹어!" 이런 느낌이 아니라 "좀 드셔보시겠어요?"라며 선택지를 내민다. 내게는 이런 조심스러운 마음과 음식과 반찬에 담아 전해주시는 걱정해 주시는 마음이 부담스럽지 않게 느껴진다. 가게의 상호명에는 '엄마'가 들어가는데 상호가 정말 잘 어울리는 가게다.
채식으로 열린 단골의 세계
채식 때문에 음식으로 경험할 수 있는 세계가 작아졌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먹을 수 있는 음식과 갈 수 있는 음식점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만큼 채소를 요리하는 방법을 익히기도 했고 맛있는 채소 요리도 알게 되었다. 제철나물과 계절별로 먹을 수 있는 과일의 이름도 기억하기 시작했다.
마찬가지로 잊혀졌던 단골가게의 존재가 슬며시 내 삶에 다시 들어온 건, 채식 때문이었다. 채식 음식점이 많지 않기 때문에 자연스레 자주 가는 음식점이 생긴 것이다.
나도 사장님의 얼굴을 기억하고, 내 얼굴 또한 음식점 사장님에게 기억되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게 채식하는 아저씨로 기억되는 것은 나름 흐뭇한 일이다. 자주 가는 장소에 날 기억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안정감을 주기도 하니까.
단골가게가 생긴 건, 단골을 향한 낭만이나 감성이 되살아났기 때문이 아니었다. 채식을 제공하거나 일련의 협상을 통해서 채식으로 조리가 가능한 음식점만 가게 된 것이다. 익명 속에서 거래만 하는 도시 속에서 단골이 생기다니. 정말 신기한 일이다.
돌이켜보면 채식으로 인해 내가 닫았던 세계만 있었던 게 아니었다. 동시에 반대편에는 다른 매력을 뽐내는 새로운 세계의 문이 열렸다. 삶은 참 입체적이다. 채식 지향인으로 살아가며 이 사실이 더욱 생생하게 다가온다.
(오마이뉴스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