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에 넷플릭스 드라마 <사냥개들 시즌2>가 공개되었다. 사냥개들 시리즈는 복싱을 소재로 한 드라마다. 우도환(건우 역)과 이상이(우진 역)가 주연이며 시즌2에서는 정지훈이 악역 빌런으로 등장한다.
복싱을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출연한 배우들의 복싱 실력을 보고 꽤 놀랐다. 기존에 복싱을 소재로 한 드라마나 영화는 꽤 많았다. 영화 <범죄도시>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복싱 기술의 완성도 면에서 볼 때 드라마 <사냥개들 시즌2>는 가장 완성도가 높다. 우도환 배우가 다닌 복싱장이 궁금해질 정도다.
복싱의 매력이 국내 영화나 드라마에서 잘 보였기 때문일까? 복싱장은 늘 사람이 붐빈다. 생활복싱대회만 가더라도 신청자가 워낙 많아서 기다리는 게 힘겨울 정도다. 그럼에도 프로복싱 경기장에 가면 복싱의 인기에 의문을 가지게 된다. 물론 3년 전과 비교하면 복싱 팬들이 많이 늘어나긴 했지만 여전히 비주류 스포츠인 건 분명하다.
지난 1월 복싱 서바이벌 프로그램 <아이엠복서>이 종영했다. 프로 복싱선수, 아마추어 복싱선수뿐만 아니라 격투기 선수, 일반생활체육인 등 복싱을 사랑하는 다양한 선수가 출연했지만 프로선수보다는 아마추어선수가 많이 출연하여 아쉬웠다.
세계 무대에서는 파퀴아오, 메이웨더, 카넬로 알바레즈, 테렌스 크로포드 같은 프로복서가 주류이지만 국내 무대에서 프로복서는 비주류다. 이번 글에서는 빛나고 멋진 국내 프로복서 다섯 명을 소개하고자 한다. 물론 소개하고 싶은 선수가 더욱 많지만, 자기만의 복싱 스타일이 확고한 선수를 통해 복싱의 매력을 조금이나마 전해보고자 한다. 복싱 팬으로서 주관적인 기준으로 뽑았다.
사냥개들 '건우'의 현실판 인파이터: 임수현
드라마 <사냥개들 시즌2>의 건우의 복싱 스타일을 보면서 떠오른 한국 프로복서가 있다. 바로 '한국타이슨'으로 불리는 임수현 선수다.
사냥개들 시즌2에서 건우는 피커부(peekaboo) 복싱을 구사한다. 피커부는 까꿍놀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복싱 자세도 유사하다. 피커부 복싱이란 두 손을 안면에 가드로 올려두고 좌우로 흔들면서 거리를 좁히고 상대 안으로 파고들어 공격하는 복싱을 말한다. 피커부 스타일은 복싱의 아이콘인 마이크 타이슨 선수의 트레이드 마크이기도 하다. 지치지 않는 강한 체력을 요하는 복싱 스타일이다.
임수현도 상대의 주먹이 나오는 타이밍에 주먹을 함께 뻗는다. 쉴 새 없이 좌우로 흔들면서 주먹을 뻗는다. 얼핏 보면 기계 같아 보이기도 한다. 내가 상대라면 질려버릴 것만 같이 3분이라는 라운드 전체를 압박한다. 보기만 해도 숨이 막힌다. 복싱 스타일만 봐도 성실한 선수라는 걸 알 수 있다.
임수현은 지난 3월 28일 'WE BOX 신인왕전' 슈퍼라이트급에서 신인왕이 된 선수다. 타이슨 이후로 거의 사라지다시피 한 피커부 스타일을 구사하는데 매 경기가 명경기다. 현재 전적은 6승(4KO) 2패다.
꾸준한 성장캐 아웃복서: 김진수
임수현이 피커부로 거리를 좁히는 인파이팅을 구사한다면 김진수 선수는 반대로 원거리에서 거리를 두고 싸운다. 국내 프로복싱에서 보기 드문 아웃복서다. 김진수 선수는 키 178cm, 리치 186cm의 훌륭한 피지컬을 가진 사우스포(왼손잡이)다. 앞손으로 거리를 조절하고 뒷손 스트레이트로 창처럼 찌르는 공격을 구사한다.
그는 아웃복싱만 구사하지 않는다. 지난해 3월 웰터급 강자 김용욱 선수에게 인파이팅으로 9회 다운을 빼앗고 10회 판정승을 거뒀다. 김용욱은 아마추어 복싱 전국체전 입상 경력이 있을 정도로 탄탄한 기본기를 갖춘 인파이터 강자다.
김진수가 매력적인 복서인 이유는 복싱 스타일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의 성장세 때문이다. 2015년 데뷔하여 벌써 10년을 훌쩍 넘겼고 어느덧 21전(13승(8KO) 8패)을 싸운 베테랑 복서다. 승과 패를 오갔지만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실력을 끌어올린 성장형 캐릭터다. 현재 WBA 아시아 랭킹 4위다.
어퍼컷의 장인, 낭만복서: 김주영
복싱에서도 한일전은 뜨겁다. 일본 나카타 다이시 선수는 김진수, 김용욱, 정민호까지 한국의 내로라하는 강자를 쓰러뜨렸다. 하지만 나가타 다이시 선수를 꺾은 한국 선수가 있다. 바로 한남권투 소속의 김주영 선수다.
지난해 5월 나가타 다이시를 꺾으면서 OPBF와 WBO아시아퍼시픽 챔피언 벨트를 획득하며 동양챔피언 자리에 올랐지만 지난 1월 호리이케 히로키에게 패하며 타이틀을 상실했다. 그는 1990년생으로 올해 36세지만, 아직도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다. 나와 같은 아저씨 복서의 낭만을 가득 채워주고 있다.
그는 복싱 커뮤니티계에서 어퍼컷의 장인으로 통한다. 필자도 어퍼컷을 좋아하는데 궤적이 특이해서 어퍼컷만의 짜릿한 타격감을 느낄 수 있다. 게다가 정확하게 턱을 가격하면 그 어떤 펀치보다도 치명타가 된다. 유튜브에서 김주영의 시합이나 스파링 영상을 찾아보면 다른 격투기에서 보기 힘든 어퍼컷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현재 전적은 20승 3무 3패다.
마흔이 다되어 챔피언이 된 낭만복서: 김두협
필자가 보기엔 가장 낭만적인 복서는 김두협 관장이다. 좀 뜬금없게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나의 복싱에 가장 영향을 준 이므로 소개하지 않을 수가 없다.
김두협은 현재 필자가 다니고 있는 체육관의 관장이다. 복싱 해설위원으로도 활동하는 황현철(사단법인 한국복싱커미션 대표)은 그를 "다소 엉성해 보일지 모르지만 까다로운 복싱을 구사한다"라고 표현했다. 그는 2004년에 데뷔하고 중간에 잠시 복싱을 쉬었지만 2018년 39세의 나이로 슈퍼웰터급 챔피언에 올랐다. 한 우물만 파면 성공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복서다.
그는 경기 내내 하이가드를 유지한다. 하이가드는 글러브로 관자놀이와 광대뼈를 가리고 팔뚝은 턱을 가리는 가드다. 팔을 높게 들고 있기 때문에 상체 움직임이 유연하지 못하고 팔의 체력 소모가 크다. 복싱인들 사이에서는 이것을 '팔이 털린다'라고 표현하는데 결코 쉬운 자세가 아니다.
게다가 하이가드를 하면서도 가볍게 나오는 앞손 잽은 굉장히 신경 쓰인다. 정말 상대하기 까다로운 복싱이다. 하이가드 자세로 복싱하는 프로복서는 많지 않다. 가장 유명한 복싱선수는 윙키라이트다. 하이가드 복싱이 궁금하고 연마하고 싶다면 윙키라이트와 김두협의 경기를 찾아보라.
하이가드 덕분일까. 김두협은 10승(5KO) 8패 2무, 20전을 치르는 동안 단 한 번의 부상도 없었다고 한다. 안와골절, 코뼈 골절, 턱뼈 골절 등 부상이 많을 수밖에 없는 종목임을 고려하면 대단한 성과다.
세계챔피언에 가장 근접한 중량급 복서: 윤덕노
지금까지 소개된 선수들은 70kg 이하 복싱선수다. 세계 인구 리뷰(World population review)에 따르면 역대 한국 국적으로 세계무대를 제패한 복싱선수는 60여 명이다. 장정구, 홍수환, 유명우 등이 경량급이 대세였던 복싱 무대에서 대한민국 국적의 중량급 세계 챔피언 출신은 백인철과 박종팔뿐이다.
윤덕노, 현재 한국에서 이 선수를 빼놓고 복싱을 논할 수 없다. 이름부터 강함이 느껴지지 않은가. 체급은 슈퍼미들급(76.2kg)이다. 지난해 4월 노나카 유키를 꺾고 OPBF 타이틀을 획득하여 이전에 획득한 WBO ASIA Pacific를 비롯해 통합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슈퍼미들급 동양 최강자다. 세계복싱 4대 기구에 랭크된 국내 유일한 세계 랭커다. WBC 세계랭킹 15위에 랭크되어 있다.
복싱 스타일은 끈덕지면서도 성실한 스타일이다. 단단히 가드를 올리고 중량급인데도 인앤아웃 스텝을 활용해서 소나기 같은 펀치를 쏟아낸다. 화려하진 않지만 기본기에 충실한 복싱 스타일을 구사한다.
그는 "2등, 3등 할 거면 안 했죠"라고 말하며 세계 챔피언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다. 누구보다 간절하게 운동하면서 말이다. 그의 세계챔피언을 향한 도전기는 다큐멘터리 <누군가의 꿈>에 자세히 나온다. 다큐멘터리 예고편에 나온 그의 말이 가슴을 울린다.
"나의 꿈을 이루면
또다시, 나는 누군가의 꿈이 될 수 있으니까"
그는 현재 세계 챔피언에 가장 가까운 국내 복서다. 현재 전적은 10승(8KO) 2패 1무다. 이노우에 나오야와 나카타니 준토의 대결이 메인이벤트로 열리는 5월 2일, 도쿄돔에서 타이틀 방어전을 치른다.
국내 복싱에도 봄이 오길
국내 챔피언이든 동양 챔피언이든, 현재 국내에서는 크게 화제가 되지 않는다. 기사 한 줄 찾아보기도 쉽지 않은 실정이다. 한국 챔피언이 되어도 유튜브나 커뮤니티에서는 '한국 챔피언은 아무나 된다'라는 말이 쉽게 떠돌 정도로 무시받기 일쑤다.
협회가 여러 개로 흩어져있기도 하고 선수 풀이 많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적은 파이트머니로 인해 재능 있는 복서들이 실업팀에 계속 머물거나 종합격투기로 전향하는 경우가 많다.
다행인 건 더원프로모션, 노바복싱, 한남프로모션, fw1 등 여러 프로모터(대전을 주선하고 기획하는 회사)들이 정기적으로 복싱 경기를 개최하며 멋진 무대를 선보이려고 노력하고 있다. 아직은 크지 않은 무대라 그런지 복싱팬과 선수간 거리가 매우 가깝다. 덕분에 선수들도 팬들과의 소통에 적극적인 편이고 링 밖에서도 관계를 이어가기도 한다.
이에 걸맞게 선수 기량도 향상되고 있다. 필자는 지난 3년간 꾸준히 직관하고 영상도 챙겨봐 왔는데, 3년 전과 비교하면 현재 국내 복싱 수준은 훨씬 높아졌다. 최근 많은 한국 복서들이 아시아 타이틀을 여러 차례 도전했고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여전히 프로복싱은 비주류다. 파이트머니도 적다.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복서들이 매일 땀 흘리며 때론 피 흘리고 살도 찢기는 고통을 더해가며 훈련하고 있다. 물론 누가 억지로 시켜서 하는 이는 없을 테고 복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훈련할 테다. 다만 악전고투 속에서 땀 흘리는 한국 복서들을 그저 비난하기보다는 응원해 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응원에 대한 보답과 실력에 대한 증명은 링에서 선수들이 할 것이다. 그러면 한국 복싱에도 긴 겨울이 가고 따뜻한 봄날이 오지 않을까? 월드컵의 함성 소리 “대~한민국!”이 복싱 무대에서도 울리지 않을까?
(오마이뉴스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