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싱은 혼자서 하는 운동이 아니다
복싱에 관한 몇가지 오해가 있다. 먼저 '헝그리 복싱' 이미지다. 헝그리 복싱은 철 지난 이야기다. 온종일 줄넘기만 시키는 복싱장 이야기도 옛날 이야기다. 요즘은 다닌지 한달이 되지 않아도 가볍게 스파링도 해볼 수 있다. 복싱은 더 이상 헝그리하지도 않고 줄넘기만 강요하지도 않는다. 완벽한 변신이다.
복싱은 '혼자 하는 운동'이라는 오해도 있다. 실제로 복싱장에 가면 혼자서 훈련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기도 하기에 도시에 사는 바쁜 현대인에게 적합한 운동이다. 하지만 이는 반만 맞는 이야기다. 이번 글에서는 복싱은 '함께' 하는 운동이라는 사실을 몇가지 경험과 함께 소개하고자 한다.
정겨운 마을회관 같은 복싱장
3년 동안 복싱장에 꾸준히 출석했다. 어느덧 복싱장에서 사귄 동네 이웃만 하더라도 손가락으로 셀 수가 없다. 형, 동생으로 지내는 친구들도 생겼다. 관장님도 예외는 아니다.
오랜 시간 복싱장에 머무르면서 복싱을 수련하는 이들을 관찰하며 깨달은 사실이 있다. 복싱이 개인 운동에 기반을 둔 건 사실이지만, 복싱을 더 즐겁게 즐기거나 훈련 효과를 증대시키려면 '함께' 해야 한다.
도심 속 복싱장의 상징은 종소리다. '땡'하고 종소리가 울리면 3분 간 훈련하고, 다시 '땡'하고 종소리가 울리면 30초를 쉰다. 이를 반복한다. 훈련하는 시간에는 훈련만 하는 게 정도(正道)다.
저녁 시간이 되고 학생들은 집으로 돌아가고 어느덧 동네 아저씨들과 청년만 남는 시간이 찾아온다. 취미로 복싱을 즐기는 이들이기 때문에 종소리에 크게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훈련한다. 그래도 암묵적인 룰 같은 게 있다. 줄넘기, 러닝머신, 스트레칭과 같이 몸을 푸는 시간만큼은 운동에 집중한다.
30~40분 정도 기본 훈련을 마친 몇몇 사람들이 모여 수다를 나누기 시작한다. 몸 푸는 시간만큼은 운동에 집중하는 이유가 설마 몸을 풀어야 입도 풀리기 때문인 걸까? 어쨌건 수다를 나누기 시작하면 이제 복싱장은 '마을회관(?)'으로 변신한다.
부동산, 주식, 프로복싱 매치, 여행, 동네 맛집 등 다양한 주제로 대화가 오간다. 수다 가운데 알짜배기 정보가 공유되기도 한다. 농담이 오가며 자연스레 웃는 시간이 많아진다. 운동하는 시간만큼이나 건강해지는 시간 아닐까? 어느 운동이든 마찬가지 아닐까? 혼자서 운동만 하는 이들도 많겠지만 사람들과 어울릴 때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웃고 떠드는 시간 때문에 복싱이 함께하는 운동이라고 주장하는 건 아니다. 한 공간 안에서 운동하다 보면 서로 의식하며 운동하는 게 자연스러운 법이다. 남에게 보여주려고 시작한 운동은 아니지만 타인의 영향을 받을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자기 통제를 잘하는 사람이면 모르겠지만, 필자만 하더라도 체육관에 혼자 있을 때면 아무래도 집중력이 떨어지곤 한다. 복싱뿐만이 아니라 헬스를 비롯한 다른 운동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공부할 때 집보다는 타인이 있는 도서관이나 스터디카페에서 집중이 더 잘되는 것과 유사하다.
실력을 향상하려면 파트너가 반드시 필요하다
무엇보다 운동 기술을 숙련시키고 실력을 향상하려면 반드시 파트너가 필요하다. 필자도 단순히 건강만을 위해 운동을 하는 게 아니다. 실력을 향상시키고 기술을 익히면서 배우고 성장하는 보람이 있다.
간혹 생활복싱대회에도 참가하며 성과를 내면서 자신감도 얻고, 내 실력을 객관적으로 확인하는 시간을 갖게 된다. 단순히 운동만 할때와는 달리 또 다른 즐거움이 느껴지기도 하고 새로운 동기 부여도 된다.
복싱대회에 참가하려면 개인 운동에만 그쳐서는 안 된다. 실전 연습을 위해 스파링을 해야만 단점을 보완하면서 실력을 향상할 수 있다.
게다가 누누이 이야기하지만 복싱의 꽃은 스파링이다. 섀도복싱과 샌드백 훈련을 넘어 스파링을 시작하게 되면 새로운 복싱의 세계의 문을 연 것이다. 더 이상 복싱이 혼자 하는 운동으로 보이지 않게 된다. 이때부터 파트너가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보통 스파링은 체육관 관장님이나 코치님의 지도 스파링부터 시작한다. 강도를 조절하면서 개인 훈련 때 연습했던 기술을 활용해 보는 데 목적이 있다. 주먹을 맞는 두려움을 없애는 게 우선이다. 다음으로 허공과 샌드백을 향했던 주먹을 실제 사람의 안면과 복부를 향해 뻗기 시작한다.
지도 스파링에 익숙해지고 실력이 향상되면, 비슷한 실력의 상대를 찾아 스파링을 한다. 그동안 연습했던 것들이 쓸모없지 않았다는 사실을 몸소 알게 되기도 하지만, 상상과 현실은 많이 다르다는 사실도 동시에 배우게 된다. 무엇을 연습해야 할지 확실히 알려주는 동기 부여가 된다. 다음날 복싱장에 오는 발걸음을 신나게 만들어준다.
지금 다니는 복싱장에도 많은 스파링 파트너들이 있다. 체중은 다르지만 강도 조절을 하면서 서로 기술 연습을 한다. 나보다 체중이 덜 나가면 내가 힘 조절을 하고, 상대가 체중이 더 나가면 상대가 힘 조절을 한다. 간혹 처음 스파링하는 이들을 위해서는 가드를 올리고 인간 샌드백이 되어주기도 한다. 내가 처음 스파링할 때 인간 샌드백이 되어줬던 관장님과 체육관 선배들처럼 말이다.
항상 같은 사람과 스파링을 하다 보면 비슷한 움직임의 강도와 속도에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복싱에 진심이 아니었던 적은 없지만, 좀 더 진지하게 복싱을 훈련하기 시작하면서 원정 스파링을 다니기 시작했다. 처음 보는 사람과 스파링을 하게 되면 나의 부족함과 강점이 좀 더 명확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스파링 이후에는 처음 만난 사이라도 서로의 복싱에 관해 이야기하며 급속도로 가까워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평생 사람의 얼굴에 주먹을 날려보거나 맞아볼 경험이 없는 이들이 하나의 공통점이 생기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가족과 함께라면 더욱 즐거운 복싱
취미를 함께 하는 이가 가족이나 친구라면 더욱 즐겁지 않겠는가? 복싱장에서 가장 흐뭇한 순간은 가족들이 함께 복싱을 즐기는 모습을 볼 때다. 아빠와 아들, 아빠와 딸, 엄마와 아들, 형과 동생이 함께 복싱장을 다니는 모습은 괜스레 미소 짓게 만들고 마음은 포근해진다.
보통 처음에는 보호자가 자식 운동을 시키기 위해 함께 나온다. 하지만 보호자가 먼저 나가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복싱 자체에게 다운되는 것이다. 얼마 후면 보호자는 안 보이고 자식들만 복싱장에 남는다. 복싱이 재밌는 운동인 건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초반에는 적응하기까지 힘든 운동인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복싱을 시작했던 초반에 아내와 3개월 동안 함께 다녔다. 당시 링 위에서 즐거운 부부싸움을 하며 아내의 매서운 불주먹을 느끼기도 했다. 나처럼 성실하게 운동해야 실력이 느는 이가 있는 반면, 주먹이 타고나는 경우가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된 순간이다. 하지만 재능을 타고난 아내는 초반 3개월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지금은 복싱 경기를 눈으로 보는 것에 만족하고 있다.
가족 구성원 간 스파링은 프로복싱 시합과는 또다른 즐거움이 있다. 링 위에서 가족 구성원이 주먹을 교환한다는 장면 자체로도 충분히 흥미롭고 웃음이 나온다. 주먹을 교환하며 몸을 부딪히는 모습을 보면 쌓여가는 추억이 부러워진다. 함께 땀 흘리며 몸을 부대끼며 만드는 추억만큼 진한 기억은 없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복싱은 혼자서 하는 운동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혼자 수련하는 운동이지만 함께 수련하는 파트너 없이는 성장하기 어려운 운동이기도 하다. 꼭 실력 차원이 아니더라도 오랜 시간 즐겁게 복싱하려면 함께 즐기는 이가 있는 게 좋다.
또한 체육관에서 관계 맺는 사람에 따라 복싱이 더 즐거워지기도 한다. 알다시피 사람을 알아가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전혀 관리가 되지 않고 결정적인 결함이 있는 체육관이 아닌 이상 최소 1년 이상 다녀보길 권장한다. 다니다 보면 복싱 말고도 얻을 게 많기 때문이다.
종소리가 나를 부른다. 오늘도 나는 스파링 클럽이자 마을회관인 복싱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어려서는 혼자서 하는 운동을 멀리했다. 주로 농구나 축구와 같은 공놀이 위주였고 거의 친구들과 함께 즐겼다. 대학생 때뿐만 아니라 첫 직장 입사 후에도 농구 동아리에 참여하면서 팀 스포츠를 즐겼다.
그런데 본업 직장 생활을 하다보니 사람들과 시간 약속을 잡고 만나 운동하기보다는 시간 운용이 유연한 개인 운동을 찾게 되었다. 게다가 사회생활을 지속할수록 점차 내향인이 변화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 적응하고 약속을 만들고 소통하는 게 마음에 부담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결국 집 근처 운동을 찾아보다가 찾은 운동이 복싱이었다. 복싱장 운영 시간에만 방문하면 내가 원하는 시간에 운동을 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운영 시간에만 가면 언제든지 숨차게 운동하고 올 수 있다. 기본적으로 혼자서 할 수 있는 운동이기 때문이다. 줄넘기와 달리기는 물론이고 복싱의 주요 훈련인 섀도복싱과 샌드백 훈련도 혼자 수행한다. 스트레칭, 줄넘기 3라운드, 섀도복싱 3라운드, 샌드백 3라운드만 하더라도 이미 40분을 훌쩍 넘는다.
마지막으로 관장님과 함께 1~2라운드 미트 훈련을 마치면, 취미로 복싱을 즐기는 일반인의 훈련은 종료된다. 여기에 추가로 웨이트 트레이닝과 정리 운동을 마치면 1시간 30분 내로 운동을 마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