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생활에 도전한다는건 뭘까?

by Rumierumie

해외생활에 도전한다는 건 뭘까?

20대 초반, 그리고 후반, 나는 워킹홀리데이에 두 번 도전했다.


20대 초반에는 낭만이 넘치는 도시, 파리에서 8개월을 살았고, 20대 후반에는 현타가 연타로 오는 도시, 런던에서 2년을 직장 생활을 했다.


그냥 생활하는 것뿐인데, 왜 ‘도전’한다고 생각했을까? 그전에, 도전이란 뭘까?




살다 보니까 과제가 내 앞에 놓였다.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어른들 말씀을 참 잘 듣는다고 칭찬을 많이 받았다. 어른들이 말씀하시는 대로만 잘 따라 하면 칭찬과 상을 받으니까 착한 아이가 되려고 노력했다. 스스로 무엇을 해야겠다고 결심하거나 계획하는 일 없이도 잘 지냈다. 선생님과 어른들이 말씀하시는 대로만 하면 되니까.


인생 참 쉽구나, 자칫 착각하며 살 뻔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앞니 두 개가 흔들렸다. 생전 처음 느끼는 변화, 내 인생에 도전이라는 큰 과제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정은 내 몫이다, 포기하던지 도전하던지.



앞니가 흔들리는 것 때문에 걱정하니까 친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자랑스럽게 이가 빠진 자리를 보여줬다. 엄지와 검지로 이를 잡고 흔들다 보면 어느새 툭! 하고 빠진 댔다. 신체의 일부를 내 손으로 훼손(?) 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어른들은 웃으면서 때가 되면 빠질 거라고 했는데, 그 ‘때’라는 것에는 내 손으로 앞니를 잡아 뽑는 과정까지 포함한 ‘때’였다. 엄마 화장대 거울 앞에 서서 앞니를 뽑지도, 놔 두지도 못한 채 무서워서 꺼이꺼이 울었다. 결심했다, 이 도전을 포기하기로.








포기해도 괜찮다.




포기하니까 마음이 편했다. 엄마에게 치과 예약을 부탁해서 앞니 두 개를 다 뽑았다. 치과 선생님이 보여준 유치는 어이없게 작았다. 한 번의 포기는, 유치 20개를 다 뽑을 때까지 포기로 남았다. 치과 선생님과 꽤 친해졌다. 내가 도전을 포기해도, 누군가 대신 도전해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안도하게 했다.




치과 선생님은 이만 뽑을 수 있다.
다른 도전은 여전히 내 몫이다.




인생의 새로운 과제를 마주치는 매 순간, 치과 선생님은 더 이상 도와주지 않는다. 도전을 포기하면, 그 결과도 내 몫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도전을 하기로 했으면, 어떻게 과제를 헤쳐나갈지 결정하는 것도 내 몫이다.

큰 맘먹고 과제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도전을 받아들였을 때, 기특하다고 누가 보너스 점수라도 주면 좋을 텐데. 얄밉지만, 도전은 온통 내 몫이다.



뭐야, 잘해봐야 본전 찾기일 뿐이라는 건데, 왜 도전하는 걸까?





도전은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힘이 있다.




무슨 일이든지, 시작하면 결과가 따른다. 해외생활에 도전한다는 것은, 정말로 외국에 나가서 살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살면서 어떤 과정을 거치냐에 따라 결과의 질은 달라지겠지만.






결과의 질은 고르지 않다.




노력한 만큼, 도전 결과에 반영해 주면 좋을 텐데, 꼭 그렇지도 않다. 열심히 해도 안 풀릴 때가 있다. 잘해보려고 기를 썼는데, 아쉽게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면, 포기해도 괜찮다. 왜냐하면 그때 포기하는 것은 진짜 포기가 아니니까, 준비가 됐을 때 다시 도전을 이어나가는 ‘일시정지’ 상태일 뿐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