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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티끌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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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집사 Jul 03.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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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4 후덥 끈적 쫀쫀

일러스트 : 집사놀이 투 by 최집사



잠을 자도 잔 거 같지 않다. 습도 70의 세상은 포유류가 살 곳이 못된다. 아침에 일어나 발이 지느러미로 변해버린 줄 알았다. 냥이들은 수시로 인어공주 자세로 바닷가에 가자고? 꼬드긴다. 조만간 귀 옆에 조그마한 아가미가 생길 거 같다. 이리 급격히 온난화가 진행된다면 세대 안의 진화는 불가피하다. 인터넷에 떠도는 해수면 상승 추이 지도를 보면 섬뜩한 마음이 든다. 언젠가는 이곳도 물에 잠기려나… 수영을 배워둬야겠지…



이럴 때일수록 멘털 관리가 중요하다. 습기와 더위에 취약한 뉴런들은 한 놈 잡자 모드로 예민해져 있다. 따라서 인간, 동물, 사물, 가리지 않고 과다 시비를 붙이고 다닌다. 아침에 깨우러 온 꾸리와 맞짱을 뜨고, 불 앞에서 국수를 삶다 말고 헐크로 변해버린 건 내 탓이 아니다는 소리다. 지금 같은 날씨의 후덥합과 꿉꿉함을 태연하게 이길 수 있다는 오만을 버려야 한다. 이럴 때일수록 말수를 줄이고 최대한 몸을 움직이지 않는 게 좋다.



 싱크대가 초파리들의 성지가 되었다. 매일밤 뜨거운 물로 씻어 내리고 살균제를 뿌려 놓지만 돌아서면 그곳에 파리들이 클럽을 열고 손님을 받는다. 두 냥이들이 센스 있게 세스코를 자처해 주길 바라지만 의외로 룽지는 새 친구를 사귄 듯 좋아한다. 지난밤 반려인이 초파리와 쉐도우 복싱을 하는 걸 목격했다고 하니 세스코 계획은 일찌감치 접는 게 좋겠다. 이제 더 이상 초파리는 화낼 대상이 아니다. 한철 세 들어 살다가는 여행객 대하는 마음쯤으로 여기는 쪽이 평화를 도모하는 길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이번에는 연체 없이 책을 반납하기 위해 부지런히 읽어야 한다. 설거지를 끝내놓고 소파에 누워 책을 펼쳤다. 한두 페이지 넘기다 졸고 있는데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날씨 얘기, 반찬 얘기 하다가 정신을 차렸다. 다시 전화를 끊고 책을 읽다가 또 잠이 들었다. 이번에는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날씨 얘기, 휴가 얘기 하다가 현실로 돌아왔다. 책이 재미없어서가 아니다. 이번 책은 거의 모든 페이지의 모서리를 접어 놓고 싶을 만큼 좋았다. 다만 근래 수면의 질이 좋지 않은 관계로 내 몸이 계속해서 추가 수면 시간을 요구하고 있다.



결국 Sir에게 20분 뒤에 깨워 달라고 말하고 잠시 눈을 붙였다. 그전에 꾸리가 내 지느러미, 아니 발가락을 물어 깨우는 통에 일어나야 했지만, 그래도 잠시 눈 붙이고 나니 정신이 한결 맑아졌다. 나를 이리도 정성스럽게 깨워놓고 지가 잠이 든 건 무슨 심보인지 모르겠다. 생각해보니 장마 뉴런이 저 아이도 가만히 뒀을 리가 없다.



* 릴스로그 업로드되었습니다.

https://www.instagram.com/reel/C89EFkuPG82/?igsh=MW4wenBkbjc5dWQwb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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