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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집사 Sep 03. 2024

고양이 세수 요리

 끼니 준비



 최소한의 요리를 즐긴다. 고구마와 계란은 삶고, 버섯은 굽고, 옥수수는 찌고, 오이는 껍질만 벗기고, 사과는 잘 씻어 썰기만 한다. 그 흔한 액젓도 없고, 마법의 치즈가루도 없고, 만능 스리라차 소스도 없다. 간장, 소금, 식초, 된장, 고추장, 후추… 손에 꼽을 정도의 기본 조미료만 가지고 있다. 다양한 조리 도구도 필요 없다. 세련된 에어프라이기나 예쁘장한 요거트메이커보다 단순한 냄비와 팬을 선호한다. 고양이 세수하듯 최대한 설렁설렁 간단하게 먹고 산다. 된장찌개, 백숙, 미역국, 카레… 쉽고 뻔한 요리들 몇 가지만 돌아가며 만든다. 그때그때 냉장고에 있는 걸로 요리하며, 가끔 먹고 싶은 게 생기면 가진 재료로 대충 흉내 내어 먹는다. 평소 배부르게 먹지 않는 느낌이 오히려 좋은 맛을 즐기게 해 준다.



먹어도 먹어도 먹고 싶은 것들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유행처럼 빠르게 변하는 음식과 시즌마다 쏟아져 나오는 요리에 뒤처지지 않으려 열심히 따라 하며 살았다.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처럼 언젠가 나도 돼지로 변해 이름을 잃어버리지 않을까 상상한 적도 있다. 가오나시가 아무리 질척거리며 금은보화를 내밀어도 입 꾹 닫고 고개를 저을 수 있는 용기가 있으면 좋으련만… 현실은 필요 이상의 욕망을 가르쳤다. 시간이 흐르고 크고 작은 몸의 변화를 거치며 이제야 겨우 단짠의 유혹을 뿌리칠 수 있게 되었다. 마라탕과 탕후루를 먹지 않을 용기를 얻었다. 결국 몸이 아프고 나니 음식으로부터 스스로를 구하는 사람으로 거듭났다.



당장 눈이 반짝거리는 맛보다 기승전결이 느껴지는 음식을 좋아한다. 과자의 르네상스 시대를 살며 구황작물은 입에도 대지 않았는데… 이제는 자연에서 온 것들을 즐기게 되었다. 고구마 선생은 먹은 만큼 정직하게 내보내는 법을 가르쳐 주셨다. 강물 속 연어처럼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니 비로소 지구의 일부가 되는 기분이 들었다.



어릴 적 할아버지 댁에서 나무 열매를 따먹던 기억이 난다. 이제 와 그 시절을 가난이라 하지만, 그땐 모두 그렇게 살았기에 가난이 아니었다. 옛날을 동경한다는 건 그때 느꼈던 작은 만족 때문인지도 모른다. 적당히 만족하며 사는 게 힘든 세상이며, 이럴 때일수록 나의 본능은 속도를 늦추라고 한다. 매일 조금씩 간단하고 건강하게 끼니를 준비한다. 이제 모든 것을 맛보지 않아도 주어진 만큼 만족하는 법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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