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살의 5월, 아르바이트 모집에 떨어졌다.

난 뭘 할 수 있을까?

by 부농발


자소서 써본 적은 20대 때 대학원 조교 자리를 구할 때 써본 것이 전부였다. 사실 그 자리에 내정자였으니 그 자소서는 어디까지나 정말로 형식일 뿐이었다. 대학원 때를 떠올리니 그 때의 면접도 생각이 난다. 나는 집에 하나 있는 검은색 원피스를 입고 갔고, 학부 생활 내내 보던 교수님 앞에 새삼스러운 표정을 짓고 앉았다. "어이, 자네 아침밥은 먹고 왔나?" "아뇨, 안 먹었습니다." "그럼 이 커피 마실래?" 이게 내가 본 면접의 기억이다.


대학원 후, 나는 강사의 길로 가지 못했다. 여러 문제, 특히 감정적인 문제들로 내내 스트레스를 받았던 대학원 생활을 때려치고 신랑이랑 고양이랑 알콩달콩 살았다. 나는 외부로부터 받았던 스트레스를 완전히 잊기 위해 벽을 만들고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만들어서 숨었다. 숨숨집에서 쿨쿨 잘 자는 고양이처럼.

쉬는 동안 꽃꽂이도 배우고, 집도 꾸미고, 책도 읽고, 여행도 다니면서 직장에 다니는 친구들의 부러움을 받았더랬다. 나처럼 속 편한 사람은 없을 거라나? 이봐, 속편하다니? 나도 가끔은 마음이 덜컹할 때가 있다고. 이대로 영영 사회에 격리되는 건 아닌지. 나 혼자 재밌자고 이러는 건 아닌데 말인데. 난 아직도 핸드폰 벨소리가 무섭다고.


5월 초에 인스타그램 팔로우를 하며 마음속으로만 친근하게 여기던 서점에서, 사람을 뽑는다는 공고를 올렸다. 어? 이거 딱 나인데. 나 책 좋아하고, 한가하고, 또 고양이도 좋아하는데(고양이 관련 도서를 다루는 서점이었다). 신랑한테 나 이거 해볼까? 했더니 해보란다. 얼렁뚱땅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쓰고 두근두근 메일을 보냈다. 자기소개서를 쓰면서 정말 여기에는 내가 딱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나를 뽑지 않을 리가 있을까? 연락이 오면 면접 때 가서 뭐라고 하지. 나 진짜 잘할 수 있는데. 저녁까지 매장지기를 해야 한다는데 그럼 신랑 저녁밥은 어쩌지?

완벽하게 빗나갔다. 연락은 오지 않았고, "많은 분이 지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면접 보실 분들께는 연락드렸습니다"라는 공지가 서점 인스타에 떴다. 그 피드를 보는 내 얼굴이 화끈해지는 게 느껴졌다.


내가 뭘 기대한 걸까?


난 내가 주부로 아주 편하게 잘 지내고 있다고 믿고 살았다. 근데 아무래도 아니었나 보다. 내 입으로 인정할 수 없었던 것이다. 난 자아를 잃어버린 주부, 권태로운 주부의 이야기가 tv에 나오면 슬며시 채널을 돌렸다. 이대로 아이라도 생겨야 내 존재의 의미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몇 번 지나갔음을 고백한다.

서점 직원을 뽑는데 떨어지자, 나는 일하고 싶어 하는 나의 모습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매일매일 출근하는 나를 떠올리며 들떴던 나 자신을 부정할 수가 없었다.


그럼 난 뭘 할 수 있을까?


근무 경험은 대학원 시절 조교 근무, (이것도 근무라고 할 수 있다면) 20살 때부터 하던 과외. 할 수 있는 건 학원 선생밖에 없는 것 같았다. 실제로 사람인에서 이력을 올렸을 때는 이력서 맞춤 채용에 논술학원 강사 자리만 들어왔었다. 그럼 학원 강사를 알아볼까 해서 사람인에 당장 등록된 논술 선생님 자리에 지원했다. 그냥 클릭 한두 번이면 지원이 되니까, 보이는대로 10군데에 지원했다. 새로 쓴 자기소개서에는 햇수로 11년 동안 과외선생을 한, 국어국문과 출신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다행히도 지원한 학원 몇 군데에서 전화가 오고 면접을 보러 오라는 제안을 했다. 전화를 하며 워라벨을 듣는데, 참 난감했다. 방과 후 아이들이 오는 곳이기 때문에 평일에는 오후부터 출근하여 일을 마치면 10시~11시였고, 주말에는 종일 근무였다. 무조건 밤늦게 퇴근하고, 주말에도 출근을 해야 한다니, 나는 감당하지 못할 일이었다. 적어도 주말에는 쉬고 싶었다. 당연한 거 아닌가요?

그리하여 또 질문.


그럼 난 뭘 할 수 있을까?




그냥 뿌렸던 내 이력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