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의 8월 8일
유난히 더웠던 2007년이었던 걸로 기억난다. 대학 3학년을 보내면서, 친구들은 하나 둘 군대로 떠나고 있었고 나는 학업을 이어나갈지, 병역의 의무를 하러 갈지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었고 당시의 나는 2008년이 되는 해에 카투사로 군대를 가기 위해 지원을 했던 상황이었던 것 같다. 정확한 선후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2007년의 상반기에는 토익 시험을 응시하기 위해 도서관에 머물렀던 기억이 난다. 18년 전이면, 기억이 잘 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 해에는 나에게 많은 일들이 있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당시의 도서관의 풍경, 그리고 캠퍼스의 모습마저도 생생히 기억나는 것 같다. 정확히 말하면 그 당시 내가 누구와 함께 밥을 먹고, 누구와 함께 시간을 보냈느냐에 대한 기억일 테지만.
음, 어찌 되었건 나는 군대로 가는 것이 거의 반정도 정해져 있었고, 그때의 나는 내가 없는 집에 무언가를 두고 가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서 개를 보러 간 것인가. 당시에는 개, 아니 강아지, 아니 애완견이라고 해야 하나 반려동물을 키우려면, 로드샵에 가서 돈을 주고 데려오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나는 부산 양정의 애견 샵 중에서 한 곳에 들러 가장 귀여워 보이던 작은 친구를 데려왔다. 당시 수컷이라서 15만 원을 사장님은 불렀는데, 내 호주머니에 10만 원이 전부라 그 돈 다 드리고, 추후 5만 원은 과외비를 받으면 드린다고 하고 데리고 왔다.
그리고 그 5만 원은 돌려줬느냐?라고 묻는다면, 나는 그러려 했으나, 하지 못했다고 대답하곤 했다. 조금 시간이 지난 후에 돈을 드리려고 했는데, 그 샵은 이미 망한 이후였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 친구들은 항상 놀리곤 한다. 네가 그 5만 원 안 줘서 망한 거 아니냐고.
유난히 더웠던 그 해 여름, 나는 귀여운 하얀색 토이푸들을 한 마리 작은 주머니에 넣어서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타서 집에 데리고 왔다. 엄마의 반응은 '놀람', 누나의 반응은 '경악'이었다. 호의적이지 않은 둘의 반응에 굴하지 않고 나는 나만의 이유를 주장하며, 새로운 가족과의 동거를 천명했다. 8월 8일 날 데리고 왔고, 팔팔하게 살아라는 의미로 '팔팔'이라는 이름까지 지어주었다.
첫날 밤, 작은 박스에 넣어서 함께 잠을 잤는데 환경이 바뀐탓인지 귀여운 아기 강아지는 밤새 끙끙대었다. 나는 내가 그 녀석의 엄마는 아니지만, 엄마처럼 안아주고 안심시켜 주었다. 아니 안심시켜주려 했다. 계속 끙끙대었던 걸 보면 내 대응은 효과는 없었던 것 같다. 그렇게 팔팔이는 장전2동에 위치한 연립주택 4층에 그의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그렇게 우리 가족의 구성원은 +1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