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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a Feb 11. 2021

곡기를 끊다, 단식 2

오일 째 아침이 밝아왔다. 안 먹었더니 잠이 오질 않았다. 하루가 길었다. 해가 뜨는 걸 항상 볼 수 있었다. 어제 하루종일 집에만 있었더니 답답해서 친구에게 만나자고 했다. 점심은 집에서 먹고 카페에서 보자고 했다. 

2시. 태양이 나에게 내리 꽂혔다. 조금 어지러웠지만 버틸 수 있었다. 에어컨을 틀어놓은 흔들리는 지하철은 고역이었다. 지하철 의자에 몸을 기대어 음악을 들으며 가까스로 견뎌냈고 강남역에 내렸다. 강남역 5번 출구 계단을 하나하나 올라갔다. 사람들은 나를 치고 지나갔다. 언젠가 나도 바쁘게 사람들을 가로지르며 지나갔는데 이게 자발적 약자가 된 나에겐 고역이었다. 계단을 올라갈 수록 다시 나를 향하는 태양 빛에 눈을 뜨기가 힘들었다. 벽을 더듬더듬 짚으며 올라갔다. 


친구를 만났다. 친구는 나에게 창백하다고 말했지만 더위를 먹어서 그런 것 같다고 했다. 절대 친구에게 단식을 한다고 말하진 않겠다고 집에서부터 마음을 먹은 터였다. 친구에게 단식한다고 말하면 


-어머, 너 그러면 위험해 (나도 안다고, 위험한거. 하지만 살 빼고 싶다고) 


-너 대단하다. 나도 하고싶다. 안힘들어?(당연히 힘들지. 죽을 것 같아.) 


- 네가 뺄 살이 어디있다고? 그렇게 까지 안해도 될 것 같은데. 


내가 예상가능한 그들의 반응들은 딱히 듣고 싶지 않은 말이었다. 그래서 말을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친구와는 차를 마시며 얘기를 했다. 


-방학 동안 뭐했어?


역시나 뭘했는지 물었다.


-책읽고 운동하고 그랬어.


친구는 내 입에서 나올 또 다른 대답을 기다렸다.


-그게 다야. 쉬었어. 그냥. 학기 중에 피곤했잖아.


-아, 나도. 그런데 너무 아무것도 안하는 건 불안해서 다음주에 해외 봉사활동 가. 몽골로. 경쟁률 정말 치열했어. 


학점, 봉사활동, 영어, 제 2외국어, 인턴. 소위 스펙의 기본이었다. 


-좋겠다. 자기소개서 어떻게 썼길래 붙었어. 부러워.


-뭐 정말 하고 싶다고 하니까. 운이지. 


친구와는 불투명한 미래에 대해 우울하게 얘기했다. 친구와 헤어져 집으로 돌아왔다.

다행히 돌아오는 길은 따뜻한 바람이 살랑살랑 불었다. 사실 몸이 오슬오슬 떨리고 추웠다. 분명 피부로 닿는 공기가 따뜻한 건 알겠는데 몸 안에서부터 추위가 일어났다. 집 앞에는 엄마가 보낸 택배가 와 있었다. 가지고 들어와서 상자를 열었다.  쑥국과 멸치 볶음이었다. 엄마에게 보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대신 왜 이런걸 보냈냐고 짜증을 냈다. 알아서 해 먹을 수 있다고 했다. 


육일 째는 하루 종일 집에서 음식과 투쟁을 했다. 거의 누워서 생활했다. 움직이라면 움직일 수 있었겠지만 굳이 몸을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 집에서 친구들과 통화를 하다가 엄마가 보고 싶었다. 하지만 엄마에게 전화를 하면 엄마는 분명 밥은 잘 챙겨 먹고 있냐고 물어볼테고 나는 먹었다고 해야했다. 엄마는 반찬으로 뭘 만들어 먹었냐고 물을 것이고 나는 구체적으로 음식을 상상해서 거짓말을 해야했다. 음식을 구체적으로 떠올리는 것도 싫고 거짓말을 하는 것도 싫었지만 무엇보다 걱정되었던 건 이렇게 힘들 때 엄마의 목소리를 들으면 울음이 터질 것 같았다. 어제 엄마가 보내 준 쑥국과 멸치를 조금 먹어 볼까 하고 냉장고에서 꺼냈다. 당연히 내 원칙 상 먹을 수 없었다. 나는 멸치 봉지를 잡고 냄새를 맡았다. 엄마가 어떻게 만들었을지 상상해 보았다. 날 주기 위해 퇴근길에 지친 몸을 이끌고 마트로 갔을 것이다. 멸치와 호두, 아몬드, 고추를 사서 집으로 돌아와 날 생각하며 만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다음 날 얼려두었던 쑥국과 멸치볶음을 아이스팩과 함께 넣어 택배로 부쳤을 것이다. 나를 빤히 보고 있는 멸치의 죽은 눈을 보자 눈물이 났다. 멸치 봉지를 잡고 지칠 때까지 울었다. 


칠일 째 몸무게가 총 5.5kg 빠져 있었다. 배가 쏙들어가고 바지가 약간 헐렁해진 것 같았다.  이 날은 학교에 과 집행부 회의를 하러 가야하는 날이었다. 뭘 해도 시간은 두배 정도 걸렸다. 청바지를 입고 올리고 지퍼를 잠그기까지 참 많은 시간이 흐른 것 같았다. 마음은 빨리 올리려고 하지만 잘 안되었다.  


칠일 째에는 동아리 모임의 회의가 있었다. 회의 시간에 늦을 것 같아서 원래 출발해도 되는 시간보다 20분을 넉넉하게 잡아 출발했다. 평소에는 학교까지 10분이 걸리니까 30분을 잡은 것이다. 하지만 회의시간에는 5분 정도 늦고 말았다. 그 가까운 길이 아주 먼 고통의 행군을 하는 것만 같았다. 친구들과 선배들이 다 모여 있는 회의실 문을 힘겹게 열고 들어갔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방학하고 처음 하는 회의에 오랜만에 보는 친구들의 얼굴이 보였다. 


-어디 아파? 왜 이렇게 살이 많이 빠졌어? 


-아, 좀 더워서 그런 것 같아요.


회의에 집중이 될리 없었다. 친구들과의 대화가 귀에서 윙윙 울리기만 했을 뿐 들리지 않았다. 친구들은 밝아보였고 나는 어두웠다. 친구들 쪽으로만 태양이 비치고, 나는 추운 그늘에 있는 것 같았다. 갑자기 별 것 아닌 일들이 다 슬프게 느껴졌다. 나는 마르려고 이렇게나 안 먹는데 누군가는 지금 입에 빵을 넣으면서도 마른 몸을 가지고 있다. 불공평하다고 느껴졌고 사람들 사이에서 고독을 느꼈다.

갑자기 귀로 한 무리 친구들의 대화가 귀로 흘러들어왔다.


-  나 오늘도 남자 친구랑 싸웠어. 


-  왜 싸웠는데?


- 같이 파스타 먹고 있는데 나보고 살 빼라고 하잖아. 내가 살빼야 하는건 맞지만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린다는데 먹고 있는데 그러냐?


- 내 남자 친구도 그랬어. 맨날 돼지라고 놀려.


그러자 듣고 있던 아이들이 한, 두명씩 자기 남자친구들도 마르기를 바란다고 거들었다. 


-  진짜 살기 힘들다니까. 송혜교보고 통통하다고 하는 세상이잖아. 아니 송혜교 팔이랑 다리 봤어? 그렇게 말라도 통통하다니. 


- 그러게 말이야. 또 마른 것만으로 안돼. 말라도 가슴은 커야 돼. 대체 자기들은 얼마나 강동원 같길래 우리한테 그런 몸을 요구 하냐구. 정말 부당해.


나는 그 친구들을 바라봤다. 대체 그 남자애들은 제정신일까? 듣고만 있어도 감정이 격해지고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우리는 모두 부당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부당한 사실은 우리를 불편하게 만들었고 편해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지만 따라야 했다. 가시방석에 앉을 수 있도록 적응해야 했다. 지금 나도 그런 과정을 겪고 있는 거였다. 부당하지만 저항할 수 없었다. 저항은 감옥에 갇히거나 벌금을 내는 것과 같은 물리적 처벌을 받는 게 아니라 정신적 처벌을 받았다. 자기 관리가 안된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는다던지, 어떤 기회들이 내 근처에는 오지도 않는 처벌들을 겪어야 했다. 

그들 중 한명이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 너 몸 많이 안좋아 보인다. 그런데 살은 왜 이렇게 많이 빠졌어?


- 더워서 그런 거 아닐까? 운동도 원래 하던만큼 하고 딱히 먹는 것도 안 변했는데?


나는 거짓말을 했다.

친구는 나를 보더니 다이어트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는지 자신의 다이어트 얘기를 했다.


- 난 엄마가 다이어트 하라고 해서 죽겠어. 요즘 덴마크 다이어트 하고 있어. 광주에서 택배로 삼일치씩 식단을 조리해서 보내주고 계셔.


덴마크 다이어트는 일명 계란 다이어트라고 불리는 것으로 2주 동안 계란, 자몽, 블랙커피를 주식으로 한다. 탄수화물과 지방을 제한하고 단백질로 버티는 것이다.


- 엄마가 그렇게까지 다이어트에 신경쓰신단 말이야?


그러자 친구들이 하나 둘 말했다.


- 엄마들이 다 그런 것 같아. 우리 엄마도 맛있는 거 이것저것 먹으라고 하면서도 살찌니까 많이 먹지는 말라고 해. 밥먹는데 내 얼굴을 보면서 '뒤룩뒤룩' 살 쪘으니까 살 빼라고 한다니까. 정말 모순적이지.


나에게 살빼라는 말을 한 적도 없고 여자는 예뻐야 한다는 걸 가르쳐 주지 않은 엄마가 생각났다. 엄마는 언제나 실력과 매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언젠가 내가 눈을 성형하고 싶다고 했을 때 엄마는 단호하게 안된다고 했다.


"왜 그렇게 너 자신을 사랑하지 못해? 실력을 쌓아. 너도 남들하고 똑같아지고 싶어?"


난 진실로 남들과 똑같아 지고 싶었다. 똑같이 마르고 싶었고 똑같이 예뻐지고 싶었다. 똑같이 마르고 똑같이 예뻐진다고 해서 내가 내 자신이 아닌 건 아니었다. 왜 개성을 못생긴데서 찾으라고 하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엄마 때는 어떨지 모르지만 우리 때는 외모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물론 나도 실력이 기본적으로 뛰어나야 한다는 것을 의심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실력이 비슷하다면 예쁜 사람이 더 유리했다. 외모가 중요한 건 이제 보여지는 모습으로 사는 연예인만이 아니었다. 스포츠 선수도 미녀 선수와 그렇지 않은 선수가 있었고 정치인들도 미녀 정치인과 그렇지 않은 정치인이 있었다. 예쁘면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예쁜 유명인들이 입는 스타일들은 공항이건 길거리에서건 주목을 받았다. 그 옷들을 빛나게 하는 건 스타들의 마른 몸이었다. 조금만 허벅지가 굵어도 조금만 배가 나와 있어도 사람들은 '살 좀 빼야겠네. 너무 편한 거 아냐?'라고 댓글을 달았다.  


회의가 끝나고 회식이 있었다. 나는 몸이 좋지 않다는 핑계로 가지 않았다. 사실 몸이 정말 좋지 않기도 했다. 어지러웠다. 특히 의자에서 일어날 때는 잠시 멈춰서 피가 머리로 이동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집에 돌아가서 또 인터넷을 하면서 보냈다. 평소라면 분명 이렇게 시간을 보내진 않았을텐데 무기력해졌다. 인터넷으로 다이어트에 성공한 연예인, 인스타그램에 있는 친구들의 행복한 모습들을 확인 했다. 연예인들은 그 많은 일과를 어떻게 잘 먹지도 않고 다 소화해 내는지 신기했다. 유전자가 다른걸까? 마른게 더 강한걸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새벽이 되었고 난 잠이 들었다.


아침에 되어 눈을 떴다. 또 먹는 꿈을 꿨다. 아직까지 음식에 대한 열망을 가지고 있다는 게 짜증났다. 지금쯤이면 음식에 대한 미련이 사라져야 될 것 아냐?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약간 머리가 아팠다. 

빨리 샤워를 하고 이제는 정상적인 일상으로 돌아가 공부도 하고 운동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자!"를 힘차게 외치고 이불을 박차고 일어섰다. 베개에는 빠진 머리카락이 한 웅큼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세상이 깜깜해졌고 나는 쓰러졌다. 팔 일만이었다. 팔 일 만에 나는 쓰러졌다. 나중에 알고보니 소금을 안먹어서 그렇게 뇌로 피가 안통하는 느낌이 들었던 거란 걸 인터넷 단식 카페를 통해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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