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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a Feb 11. 2021

가려진 진실

인도의 가난에 진절머리가 난 나는 사람사는 곳 같은 곳에서 생활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이상 인도에서 신을 찾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들을 보면서 느낀 건 신은 각자의 마음 속에 있는 것이었다. 신을 믿는 사람의 마음 속에는 신이 존재하고 믿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았다. 신으로부터 영혼의 보살핌을 받고 싶은 사람은 신을 믿고 그렇지 않으면 나처럼 스스로 관리할 운명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내가 정말 내 영혼을 돌이킬 방법을 찾으려면 신에 대한 의심부터 내려 놓아야 했지만 그러기가 쉽지 않았다. 더구나 거짓말 하고 도둑질하는 인도인들도 믿는 신에 대해서는 더더욱 불신이 가득했다.


각종 사기와 구걸은 둘째치고 위생상태가 엉망이었다. 나는 인도에 간 날부터 5일 간은 라씨만 먹었다. 다른 음식을 먹기에는 불안 했다. 사람들의 손톱에는 새까만 때가 끼어 있었다. 도저히 인도인들이 만든 음식을 먹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곧이어 내 손톱에도 같은 때가 끼이게 되었다. 아무리 물티슈로 닦아도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손톱이 새까맣게 변해 있었다. 내가 그 사람들과 결국 비슷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자 오믈렛이나 탄두리 치킨 등 인도의 음식들을 사먹기 시작했다. 하지만 곧이어 설사병에 걸리게 되었다. 한국에서 가져온 지사제는 들지 않았다. 설사가 좀 멈출 만 하면 물을 마시고 또 걸리고 음식 먹고 또 걸리고 악몽은 반복 되었다. 나는 마지막 설사병이 다 나아갈 때쯤 하이데라바드로 갔다.


하이데라바드는 IT산업이 발달한 도시라고 해서 선택했다. 하이데라바드 역시 인도의 다른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복잡하고 먼지가 많았지만 이전 도시들과는 다른 점이 있었다. 깨끗했다. 사람 사는 모습은 비슷했지만 거지도 호객꾼도 적었다.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영화관이었다. 인도의 발리우드 산업이 각광받는 사업이기도 하고 내가 영화를 좋아하기도 했다. 또한 영화관은 대중 문화의 대표격이었다. 문화 생활을 즐기고 싶었다.

하이데바라드의 I-Max 관은 건물부터가 이전에 봤던 건물들과는 달랐다. 깨끗하고 밝았다. 물론 영화를 보러 온 사람들도 돈이 많은 사람들 같았다. 다들 스마트폰을 들고 있었고 사리를 입은 여자들은 찾아 볼 수 없었다. 모두들 현대식 옷을 입고 있었고 특히 여자들 중에는 반팔과 다리가 보이는 치마를 입은 여자들도 있었다. 


인구가 많아서 그런지 영화관도 일반적인 우리나라 영화관 크기의 2~3배는 되는 것 같았다. 영화표가 그리 싸지 않았는데도 영화관은 꽉 찼다. 다른 관광지의 사람들처럼 날 신기하게 쳐다보거나 내 물건들에 관심을 보이지도 않았다. 나는 서브웨이에서 우리나라와 가격이 같은 샌드위치를 먹고 영화 < Ra. One>을 봤다. 우리나라와 영화를 보는 태도가 다른 점이라면 '조용해야 한다'는 규칙이 없었다. 그들은 슬픈 장면에서는 같이 안타까움의 탄성을 질렀고 통쾌한 장면에서는 환호를 했다. 마치 스포츠 경기를 한 편 보는 것 같았다. 신기했다. 그렇다고 벨소리가 울리거나 영화에 집중이 안되는 건 아니었다. 만약 우리나라에 이런 문화가 도입되면 오히려 불법 다운로드가 줄어들 것 같았다. 집에서 혼자 보나 영화관에서 보나 똑같으니까 사람들이 불법 다운로드를 통해 영화를 보는 거다. 만약 영화관에서 보는 독특한 즐거움이 있다면 사람들은 당연히 특별한 경험을 하길 원할 것이다.


분위기만 신기한 게 아니었다. 영화의 내용도 놀라웠다. 전개도 빠르고 내용은 유치하고 춤은 선정적이었지만 2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영화에 집중시키는 흡인력이 있었다. 물론 영화는 완벽한 허구였다. 내가 인도에서 봤던 어떤 현실도 없었다. 그 곳에는 현실의 도로를 복잡하게 매운 릭샤꾼도 없었고 거지도 없었다. 깨끗한 도로에는 고급 차들만 다니고 집은 호화로웠다. 가끔씩 여주인공이 사리를 입기도 했는데 그 여자들은 하나같이 날씬했고 우리 나라 사람들의 얼굴 색 정도를 가지고 있었다. 영화 속 인도는 모든 것에서 첨단을 달리고 있었다. 인도인들조차도 자신들의 전통에 혼란을 겪고 있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도 있었다.


남자 주인공이 손으로 음식을 먹는 장면이었다. 영화 속 설정 상 음식을 먹을 때는 당연히 수저를 사용해야 하는데 그가 손을 사용하는 것은 약간 이질감있는 주인공을 친근하게 만드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그가 손으로 음식을 먹을 때마다 사람들의 웃음이 터져나왔다. 하지만 난 인도에 와서 수프를 먹을 때 말고 손 이외에 다른 도구를 사용해 본 적이 없었다.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는 것은 장소를 불문하고 참 어려운 일인 것 같았다. 나는 이제 손으로 음식을 먹는 것이 좋아지고 있었는데 말이다.  


영화를 보고 번화가를 걸어다녔다. 삼성, 노키아, 맥도날드, KFC를 비롯해 우리 나라에서도 친숙한 해외 화장품 브랜드와 의류 브랜드가 즐비했다. 가격은 우리나라보다 약간 더 비싸거나 비슷했다. 길을 가다 한 간판 앞에서 멈춰 섰다. 다이어트 광고판이었다. 분홍색의 간판에는 가슴부터 배꼽 아래까지의 날씬한 여자가 몸매를 강조하는 사진이 있었다. 옆에는 "당신도 날씬해 질 수 있습니다."라는 문구가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한참 동안 그 간판을 바라보았다. 인도 여자들도 다이어트를 한단 말이야?


인도인들이 거짓말을 하고 사기를 치고 구걸을 해도 다 참을 수 있었다. 그런데 다이어트 광고판이라니. 난 배신감이 들었다. 지금 인도에 오는 사람들은 미화된 인도에 철저히 속고 있었다. 이들은 우리 나라와 다를 바 없었다. 단지 빈부격차가 더 심하고 더럽고 질서가 없을 뿐이었다. 아무도 영혼에 대해서 얘기하지 않았다. 이들이 힌두 사원에서 또는 이슬람 사원에서 기도를 하듯 우리나라 사람들도 교회나 절에서 기도를 한다. 특별히 인도가 영적인게 아니었다. 인도의 베일이 벗겨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지긋지긋한 다이어트를, 내가 그렇게도 벗어나고 싶어했던 다이어트를 다시 눈 앞에서 보자 나는 화가 났다. 나는 당장 숙소로 돌아가 빨리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다음 날 아침을 기다리며 숙소에 있는데 한 한국인이 함께 맥주를 마시자고 했다. 그 여자는 한국에서 법률 사무소 비서로 일을 했었다. 영화가 만들고 싶었던 그녀는 시야를 넓히기 위해 인도로 오게 되었다고 했다. 우리는 술을 마시며 오늘 다이어트 광고판을 보고 실망한 일에 대해서 얘기했다. 


여자는 별거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 너는 예뻐지고 싶지 않아?


- 당연히 예뻐지고 싶죠.


- 인도 여자들도 똑같은 거야. 아름다워지고 싶은 여자의 욕구는 다 똑같아. 터키에 가면 여자들이 다 똑같이 히잡을 쓰고 있거든. 우리가 보기엔 다 똑같아. 그런데 신기한게 뭔지 알아? 그네들, 그 머리에 둘러쓴 천 쪼가리의 색깔, 각 잡는 것까지 다 자기가 가장 아름다워 보일 수 있게 한다는 거야. 인도 여자들도 예뻐지고 싶으니까 다들 다이어트를 하는 거지. 마른게 예쁜거잖아.


마른게 예쁜거다. 정말 지겨웠다. 지구는 참 넓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숨을 수도 피할 수도 없는 것은 오직 다이어트였다. 나는 다이어트에게서 평생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았고 무서웠다. 다이어트는 정말 나쁜 악당이었다. 거대한 악마였다.


- 발리우드 영화 보셨어요? 저 어제 Ra. One 봤는데.


- 나도 봤어. 재미있긴 하지만 전형적인 인도 영화더라. 뮤지컬 형식에 시끄럽고 사람들은 환호하고, 엘리트주의자들이 말하는 전형적인 저급 문화같지 않았어?


- 네, 근데 전 그것보다 영화가 현실을 가려 놓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릭샤꾼도 거지도 없는 상류층 사회만을 그려놓았잖아요.


- 영화가 어느 정도는 현실을 반영해야 하는데 너무 미화시켜 사람들을 기만하고 있다는 거지?


- 네


- 그 것도 인도의 현실이야. 인도에서 그 영화를 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 것 같아? 릭샤꾼들은 그 영화를 볼 시간도 여유도 없어. 또 그 영화가 앞으로 발전할 인도의 현실을 강하게 반영한다고도 볼 수 있지. 


-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런데 제가 겪었던 인도의 모습과 무척 달라서 인도가 미화된 모습으로 소개가 되는 게 싫었어요. 전 인도에서 영혼이 맑아지길 기대하면서 왔는데 그런 건 없더라고요.


그 사람은 날 쳐다보며 웃었다. 


- 정말 인도에 와서 영혼이 맑아질거라고 생각했어? 세상에 그런 곳은 없어. 어디에 있든 영혼을 맑아지게 할 수 있는 것도 너고 망치는 것도 너야. 왜냐하면 너만이 네 영혼의 주인이니까.


주인이란 말은 충격이었다. 나는 나에 대해 주인 의식이라고는 전혀 없었던 '내 인생의 손님'같은 인간이었다. 환경이 날 바꿔주길 바랐고 환경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되었다고 생각해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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