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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이란 무서운 거야

결국 나를 만드는 건 나의 습관

by 차분한 초록색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뭘 하시나요?

저는 시끄럽게 울리는 알람소리에 겨우 몸을 일으킵니다.

습관적으로 알람을 끄고 다시 자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알람은 늘 부엌 식탁 위에 둡니다.

어쩔 수 없이 일어나서 부엌으로 나갑니다.

나가면서 아주 짧은 순간, 10분만 더 잘까? 생각합니다.

곧이어, 10분 후에는 분명 후회하게 될 거라는 걸 자각합니다.


냉장고에서 쌀을 꺼내 씻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쌀을 씻는 일입니다.

세수를 하거나 물을 한 잔 마시는 그런 게 아닌,

왜 하필 쌀을 씻는 거냐고 누군가 물어본다면

취사버튼을 누르기 전에 조금이라도 쌀을 불리려는 목적이라고 대답하겠습니다.

주부로서의 습관입니다.

다음은 베란다로 나가 블라인드를 올립니다.

베란다의 차가운 공기와 이른 아침 풍경으로 잠을 깨울 요량입니다.


이제 자리에 앉습니다.

한동안은 커피를 마시기도 했지만,

공복에 커피를 마시는 게 습관이 될까 봐 그만두었습니다.

자리에 앉으면 이것저것 생각할 필요 없이

다른 거에 눈 돌릴 필요 없이 노트를 펼치고 3페이지의 글을 씁니다.

(아티스트 웨이에서 저자가 말한 모닝페이지입니다.)

대략 30분 내외의 시간이 걸립니다.

3페이지 쓰기를 마치고 나면 밥솥의 취사 버튼을 누릅니다.

밥이 지어지는 15분 동안 뭘 할지 몰라 우왕좌왕할 때도 있지만,

이런저런 소소한 일들을 처리하다 보면 금방 밥은 완성됩니다.


이윽고 아이를 깨웁니다.

정신없이 휘몰아치는 아침 시간이 시작되는 것이죠.

등교준비는 일사천리로 진행됩니다.

이삼십 분 남짓의 시간 동안 아이는 세수하고 밥을 먹고

옷을 입고 양치를 하고, 가방을 챙기고 학교로 향합니다.

뭔가 굉장히 많은 일들을 한 듯 하지만 별거 아닌 일들로 아침 시간은 흘러갑니다.


매일 아침, 조금만 더 자고 싶다는 내적 갈등을 겪으면서,

자고 나면 분명 후회할 거라는 사실 또한 자각하면서 몸을 움직이는 게 저의 습관입니다.

그리 오래된 습관은 아닙니다.

예전에도 여러 번 시도했다가 번번이 실패했던 일이기도 합니다.


엄마가 옆에 없으면 깨는 아이를 두고 아침 일찍 일어나 뭔가를 하기는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아예 깨지 않을 새벽에 일어나 보기도 했습니다.

어설프게 아침 6시 7시에 일어나면 아이가 깨서 다시 잠들지 않으니까요.

새벽엔 깊이 잠이 들어 엄마가 없어도 몇 시간은 더 자거든요.

그럼 그 몇 시간 동안 저는 뭘 했을까요?

아이가 깰까 봐 아무것도 못하고 그냥 앉아 있었습니다.

작은 소리에도 쉬 깨는 아이였으니까요.

무의미한 새벽기상에 진절머리가 났습니다.

대체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새벽에 왜 일어났을까요?

아마도 나 자신을 변화시키고 싶은데,

뭔가 일찍 일어나야만 변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을 했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어느새 아이는 자랐고, 이제 엄마가 옆에 없어도 잘 자는 아이가 되었습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제가 일어나기 힘들어졌습니다.

아이는 자랐고, 저는 나이를 먹었기 때문일까요.

아이와 함께 겨우겨우 일어나는 생활이 반복되었습니다.

헐레벌떡 등교를 시키고 나면 동네 엄마들과의 티타임이 이어졌습니다.

“빨리 들어가서 글을 써야 해요.”라는 말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티타임은 거의 매일 이루어졌습니다.

반복되는 분주한 아침과 정신없이 흘러가는 시간들.

나는 나에 대해 무엇도 하지 못한 채 의미 없는 이야기들을 나누고,

차곡차곡 불만을 쌓아가고 있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쌀을 씻는 습관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정도면 계속해서 해나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입니다.

아이는 이제 엄마가 옆에 없어도 깊은 잠을 잘 수 있고,

엄마의 부스럭 거리는 소리에 깨지 않으니까요.

몸을 움직이고 창밖을 내다보는 것만으로도

잠에서 깨어나 하나의 일을 해낼 수 있다는 걸 알았으니까요.


매일 아침 3페이지를 채우면서 불만을 토로하고

짜증을 뱉어내고, 희망을 꿈꿔봅니다.

습관이라는 게 참 이상하죠.

안 좋은 습관은 너무 쉽게 몸에 익는데,

좋은 습관은 몸에 익히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게다가 어렵게 몸에 익힌 습관은 또 금방 사라져 버리기도 합니다.

마치 내게서 달아날 궁리를 하고 있던 것처럼, 조그만 틈만 보여도 사라져 버립니다.

사실은 오늘도 커피를 마시면서 소파에 앉고 싶었습니다.


글을 쓴다는 건 정말 어렵고 오래 걸리는 습관임을 새삼 깨닫습니다.

일어나기 싫어도 늘 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나가기 싫어도 늘 같은 시간대에 나가 일터로 가는 직장인들.

그런 매일 반복되는 행동들이 직장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만들어 냅니다.

매일 가방을 메고 등교하는 학생들.

그런 행동들이 학생으로서의 정체성을 만들어 냅니다.

그렇다면 매일 글을 쓰는 사람이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가질 수 있는 거겠죠.

글을 쓰고 싶다고 말하면서, 작가가 되길 꿈꾸면서

글쓰기를 게을리하고 습관으로 만들지 않는다면 참 염치없고 뻔뻔한 일입니다.

결국 나를 만드는 건 내가 하는 행동들이고, 반복되는 행동들은 습관이 됩니다.

나의 습관이 나를 만드는 거라면 매일 글을 쓰는 그 어려운 습관을 몸에 익히는 게 첫 번째입니다.


더 자고 싶다는 욕망과 싸워 이기고 일어나, 분주한 아침을 보내고 자리에 앉아 업무를 보는 당신,

학교에 앉아 수업을 듣는 당신,

책상에 앉아 글을 쓰는 당신 그리고 나.

모두 매일 반복하는 행동들이 자신을 만들어 냅니다.


가끔은 (실은 자주) 내가 쓰는 글들이 너무 형편없이 여겨져,

대체 매일 앉아서 쓴다고 뭐가 되긴 해?라고 자조적으로 묻습니다.

이런 시시껄렁한 글 따위 매일 써 봤자 무슨 도움이 되겠어? 뭐가 나아지겠어?

그리고 또 되묻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것도 쓰지 않고 있으면 뭐가 나아져?

시시껄렁한 거라도 쓰다 보면 조금씩 나아질 기회라도 있는 거 아니겠어?


매일 자조적으로 묻고 대답하고, 혼자 절망하고 좌절하고

그러면서도 힘을 내보고 희망을 품어보는, 그런 습관이 내게 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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