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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분한 초록색 May 23. 2024

조금 천천히 가도 될까?

천천히 그러나 꾸준하게

학원은 참, 시작할 때도 고민이지만 그만둘 때도 고민이다.

학원의 가짓수는 하나하나 늘어만 가고, 뭐 하나 그만둘 만한 것이 없다.


빡빡한 학원 스케줄에 먼저 지쳐버린 건 아이가 아닌 엄마였다.


무거운 가방을 메고, 깜깜한 밤에 학원으로 향하는 아이를 1년 넘게 지켜보면서

매 순간 '이게 맞나?'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도 그만 둘 용기가 없어 망설였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마음먹게 된 계기는 학교 단원평가였다.


4학년까지만 해도, 별다른 예복습 없이도 곧잘 하던 과목들이 5학년이 되면서 힘들어졌다.

생각보다 어려웠다.

아이를 나무랄 수 없었다.

학원 숙제에 치여서 정작 학교 공부를 할 시간이 없었다는 걸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게 맞나?'

내내 들던 생각에 '이건 아니지'라는 답을 스스로 내리기까지 1년이 걸렸다.


학원을 정리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아이는 즐겁게 다니던 학원을 그만 다니라고 하자 섭섭해했다.

그렇지만, 학원에 다니느라 학교 공부에 소홀해지는 건 완벽한 주객전도.


한번 그런 마음이 들자 학원에 대한 미련이 사라졌다.

내내 '나는 학원의 노예'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만두지 못했었는데.



아이를 설득해서 학원을 그만두기로 했다.


처음 그렇게 마음을 먹고 아이를 설득할 때만 해도 기분이 좋았다. 후련했다.

학원 노예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만 같아서.



그런데 주위에서 다들 나를 말린다.

학원을 그만두는 순간, 실력은 수직 하락 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모두가 그렇게 말하니 나는 다시 불안해진다.


많은 사람들이 아이를 학원에 보내는 게 그들이 뭘 몰라서, 학원의 상술에 휘둘려서 보낸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으니까 보낸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그들의 말에 나는 점점 더 불안해진다.



"내가 너무 순진하게 생각하는 걸까?"라는 물음에 다들 고개를 끄덕인다.



마음을 다잡아 보기 위해 읽은 책에서조차 인간의 나약한 의지를 언급하며 '학원'의 시스템에 대해 이야기하니, 나의 마음은 바람맞은 갈대처럼 휘청거린다.



현실적 조언들이 와 닿는다. 그래서 더욱 흔들리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나는 학원을 정리하기로 했다.


스스로 공부하는 시간 없이, 학교 수업을 되새김할 시간 없이 학원 숙제에 쫓기며 쉬지도 못하고 달려가는 일상에 한 번쯤 브레이크를 걸고 싶어졌다.

정말로 수직하락 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만둔 걸 후회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한들, 그게 뭐 어떤가.

지금은 실패해도 괜찮은 시기 아닌가?


계속해서 뛰어왔다.

엄마는 숨이 차서 조금 쉬어가고 싶다.


우리, 조금만 걸어볼까?





<커버이미지 출처-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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