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화로 가는 버스를 탔다.
기사님이 교통카드를 찍지 말고 그냥 타라고 하신다.
사람들이 어리둥절해하면서 차례차례 올라탄다.
승객들이 다 타고나자 아저씨가 말씀하신다.
카드 단말기가 고장이 났다고.
누군가 묻는다.
"공짜예요?"
"이런 날도 있어야죠."라고 기사님이 답한다.
나는 창밖을 보며 기사님의 목소리가 꽤 유쾌하다고 느꼈다.
오전의 버스는 한가했다.
드문드문 자리에 승객들이 앉아있다.
누군가 내리면서 기사님께 인사한다.
"감사합니다."라고.
하차문은 뒤쪽에 있어서 제법 큰 소리로 말하지 않으면 들리지 않을 텐데.
기사 아저씨는 하차하는 승객의 인사를 들었을까?
공짜로 사람들을 태워서 나중에 싫은 소리를 듣게 되는 건 아닐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창밖을 보고 있었다.
이번엔 내가 내릴 차례가 되었다.
나는 좀 전에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하며 내리던 승객을 떠올린다.
교통카드 단말기가 고장이 났다면, 그냥 승객을 태우지 않고 가버려도 그만이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우리를, 나를 버스에 태워 준 기사 아저씨에게 나도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냥 조용히 하차문을 통과해서 버스에서 내렸다.
나에게는 큰소리로 감사를 표할 용기조차 없나 보다.
조금 부끄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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