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lliott Apr 25. 2021

참 이상하네요




참 이상하네요.

제게는 좀처럼 감상에 빠질 시간을 주지 않습니다. 고요히 머물러갈 잠시의 틈을 만나 숨을 쉬고 나면 꼭 그 틈새에 빠져서는. 허우적대는 꼴을 보이게 되네요.

저로썬 참 안 된 일이지만 이런 모습이 누군가에겐 그저 우스운 일일 뿐인 걸까요.

이 또한 지나간다는 것을 모르지 않습니다만 지나기 전엔 너무하다는 생각 좀 더 나아가 가혹하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듭니다. 좋지 않은 일을 잊기 위해 바닥을 쓸고 닦아내기를 반복해보지만 그것들은 닦이지 않네요. 이미 짙은 얼룩으로 남겨졌습니다.

참으로 이상하네요. 세상에는 이상한 사람들이 많은데, 나는 그중 가장 이상한 사람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어요. 요즈음의 기분변화가 그렇습니다. 뭐가 뭔지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가 끝 보이지 않는 바닥 위로 굴렀다가 표정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무감각한 시간을 보내기도 합니다. 물론 아이들은 모릅니다. 남편도 마찬가지지요. 좀처럼 입이 떨어지질 않습니다. 나라는 사람의 원형이 점점 왜곡됩니다.

괜찮습니까. 스스로에게 질문을 몇 번이고 던져봅니다.

괜찮습니다. 아직은.

적어도 아직은 괜찮다는 소리가 나옵니다. 그럼 나는 괜찮은 겁니다.

그렇게 믿고 있는 요즘입니다.


조금 지난 일이지만 어느 날엔가 친구에게 전화가 왔어요.

요즘 이러하고 저러하다. 말을 했더니 약을 먹으라고 하더군요.


네가 알아서 잘하겠지만 사람 마음이 안 그래.

이상이 있다고 생각이 들면 병원에 가는 게 맞아.

아는 동생도 고민하다가 가서 약 처방받아먹고 있는데 약 먹으면 그런 기분이 하나도 안 든대.

기분이 가라앉거나 그러질 않는다더라고.




약. 손에 든 알약을 삼킵니다. 쌉싸래함을 입안 가득 머금고 생각합니다. 이건 나를 위함이다.

비타민일 뿐인 이 약이 그녀가 말한 통제 가능한 수준에 머무를 수 있는 약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억지를 부려봅니다. 그녀에게는 병원에 가 보겠다고 하기는 했습니다만. 나는 가지 않을 겁니다. 입이 쓴 걸 보면 나의 감각이 아직 여기에 있다는 게 느껴집니다.

그녀의 말을 극단으로 밀어내어 생각하게 됩니다. 일종의 원격제어장치. 자연스럽게 흐르는 사람의 감정을 조절해주는 약으로 닿으면 위험할 감정에서 조금씩 멀어지고 나면 과연 나는 살아있는 기분이 들까. 괜찮아질까. 의구심이 듭니다. 마음이 고장 났다 치고 고장 난 마음을 고치기 위한 임시방편일지라도 나는 그 약이라는 걸 먹는 게 두렵습니다. 웃고 싶은 마음이 전혀 들지 않는데 얼굴 근육을 한 껏 끌어올린 영혼이라고는 들지 않은 미소가 머릿속을 채웁니다. 마음이 위험신호를 감지하고 삑삑 경고음을 울리면 나는 지금 나와는 상관없는 그 미소를 계속해서 얼굴 위로 드리워야 하는 것은 아닐까. 억지스럽고 기괴한 그 모습이 나의 두려움에 무게를 싣고선 말합니다. '가면 안돼'



참 이상합니다.

마음의 상처는 어렵습니다.

모두에게 보란 듯 드러낼 수도 꽁꽁 감출 수도 그렇다고 잊을 수도 ㅡ 그럴 수도 없습니다.


모든 것을 견뎌내는 것. 감내하는 것. 버텨내는 것.

비슷한 그 말들을 떠올리며 살아갈 뿐입니다.

삶의 지혜가 있다면 조금 더 수월하겠지만.

나는 아쉽게도 미련한 쪽이라 이제껏 그래 왔던 것처럼 조금 어렵게 돌아갈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정상의 범주에서 되도록 벗어나고 싶지는 않으니

어떻게든 또 그 말들에 기대어 살아가겠지요.




-


참 이상하게도 제게는 감상자의 여유가 주어지지 않을 뿐이란 생각이 다시 한번 듭니다.

믿지 않는 신을 한 번은 찾아 물어야 하는 것은 아닐지.

약을 먹는 것 보다도 그 고민을 먼저 해보아야겠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초록빛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