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린 시절 가장 두렵고 불안했던 '한 순간'에 대하여
스물한 살 즈음 공황장애와 같은 비슷한 경험을 한 일 있다. 사람이 많이 오가는 어느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던 날이었다. 학생들을 가득 실어 나르는 여러 대의 버스들이 지나고 내가 타야 할 버스를 바라보는데, 앞으로 뒤로 사람들이 내리는 모습들, 한눈에 보아도 내가 앉을자리 같은 건 없어 보이는 버스가 당도했다.
남들보다 조금 더 먼저 앞서가야 안쪽으로 들어갈 수 있을 텐데, 혹여라도 남은 자리를 탐낼 수 있을 텐데 그날의 난 어쩐지 발이 움직이지 않았고, 급격히 숨쉬기가 어려움을 느꼈다.
심장이 멋대로 움직이고 등 뒤로 얼굴로도 식은땀이 흐르는 듯 한 착각.
그 자리에 곧이 서선 꼼짝없이 움직일 수가 없었다.
정류장에서 다음 버스를 기다리면서도 홀로 안절부절 심장이 계속 쿵쿵댔다. 아무도 보고 있지 않는데, 누군가는 나를 보고 있는 듯도 하고 시선 둘 곳을 좀처럼 찾지 못해 헤매었던 시간. 첫 번째 버스를 보내고 계속해서 집으로 향하는 여러 대의 버스가 오갔지만 그때마다 발걸음을 떼지 못했고 결국은 만원 버스를 모두 보내고 난 후에야 몸을 움직일 수 있었다. 사람이 드문드문 넉넉한 자리가 남아있는 버스가 오기까지 정류장에 앉아 멍한 시간을 보냈었던 어느 날. 아주 긴 시간은 아니었으나 너무도 급작스레 다가왔던 상황이라 그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막막한 기분으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혼자 누군가들의 시선과 불안함을 끌어안고 있었던 것 같다.
몇 번 버스를 타고 어떻게 집에 돌아갔는지에 대한 후의 일들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의 '불안'을 상기하자면 그 순간의 어쩌지 못하고 있는 내 모습 그리고 그때의 쿵쿵댔던 심장소리만큼은 아직까지도 분명하게 재생된다.
그 후로 대학교 과 모임에서 또 한 번 비슷한 일을 겪게 되었다.
어느 호텔에서 열리는 학과의 연례행사라 평소엔 입지도 않고 입을 일 없는 옷들을 다들 차려입고 한자리에 모이는 날이었다. 휴학으로 1년을 쉬는 사이 아는 사람이 더 없어졌고 때문에 의지할 수 있는 친구라고는 단 한 명뿐이었던 날. 함께한 친구는 사교성이 좋은 친구로 행사장에 도착하자마자 여기저기 인사를 다니느라 정신이 없었고, 그런 친구를 마냥 따라다닐 수 없어 홀로 행사장으로 들어섰는데 가기 전부터 내심 불안했던 어떤 마음이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갈피를 잡지 못한 채 나는 다시금 정류장에서와 같은 상황을 맞게 되었다.
버거운 숨쉬기, 경직된 몸, 떨리는 손, 불안한 시선...
혼자 어쩌지 못하던 와중 친하지 않지만 얼굴은 알고 있던 선배가 다가와 '괜찮아? 이쪽으로 와서 앉아'하며 나를 어딘가의 테이블로 끌어다 앉혔는데, 식사를 했는지 그곳에서 어떤 행사를 치렀는지 어떻게 지났는지 모를 시간을 그 날의 난 그 선배가 데려다 앉힌 그 의자에 앉아 모든 시간을 보냈다. 자리에서 일어서면 또다시 불안한 상태가 지속될 것만 같았고, 그래서 꼼짝없이 한 자리에 머물렀다.
버스정류장에서 일 그리고 과 행사 모임에서의 일로 한동안은 한번 더 그런 일이 생겨날까 모든 일상생활을 하며 조금 더 움츠러든 시간을 보냈다. 스물하나의 아무도 몰랐을 나의 겨울과도 같았던 시기. 그곳에서 내가 왜 그렇게 헤매었는지에 대한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는 긴장과 불안의 연속으로 이어지던 감정들. 그래서 계속 속이 울렁거렸던 시간들. 흔히들 사람들이 우스갯소리로 말하는 세상이 빙글빙글 돌아간다던가 숨쉬기가 어렵다던가 하는 일이 실제로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버스정류장에서, 그리고 낯선 호텔 행사장에서 명확히 알게 되었다.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왜 그렇게 됐는지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
당장은 괜찮지만 어떤 상황에 갇히게 되면 또 만날 수도 있는 상황.
현재에 해당하지 않는 어렸던 때 가장 두렵고 불안했던 지나간 한 순간.
서울로 이동을 한 후 만원 버스를 탈 일이 없었고, 특별히 불편한 자리를 가질 일 없이 그저 상황에 부딪히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다행히 우려했던 것과 달리 이후엔 그와 같은 일이 없었다. 의사의 진단으로 확정 지어진 것은 아니지만 공황에 빠졌다라 할만한 경험을 한번 하고 나니 문득 그때가 떠 오를 땐 지금처럼 잔잔히 흘러 살아가는 일이 계속 이렇게 당연해야 할 텐데.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지나간 순간이라며, 지금은 아무렇지 않다라고 괜찮다라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싶은 마음.
내 불안이 어디에서부터 기인한 것인지 왜 그랬는지.
계속 이유를 알 수 없었으면 좋겠는.
알고 싶지 않은 마음.
- 어린 시절 가장 두렵고 불안했던 '한 순간'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