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록」을 읽기로 하다

프롤로그

by 루너

「에세」를 읽으며 좋은 시간을 보냈다. 몽테뉴의 인생, 그리고 그로부터 피어오른 날것 그대로의 철학을 흡수할 수 있었다. 비슷한 경험을 할 수 있으면 또다시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쯤 염두에 두던 것이 「명상록」이었다. 로마 황제, 즉 제국의 정점에 있던 인물이 철학적 소양을 가지고 무언가를 생각한다는 일 자체가 참신해 보였다. 과연 아우렐리우스는 어떤 삶을 살았으며, 그로부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는 이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일단 책의 해설에서 아우렐리우스의 삶을 간략하게 요약하고 있어서 그것을 읽어보았다. 아우렐리우스의 시대는 태평성대의 끝자락이었다. 내란, 외적 등 온갖 사변이 자주 일어났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지혜롭게 처신했으니 나는 그가 뼛속까지 군인일 것으로 지레짐작했는데, 전혀 그 반대였다. 그는 사색적이었고, 사상의 자유를 중시했다고 한다. 자기 관리가 철저한 인물이어서 황제의 자리가 제공하는 특권에 홀리지 않았으며, 이런 온화한 모습이 모두를 감화시켰다고 한다. 이런 사람에게 궁정은 답답했을 테고, 전장은 끔찍했을 것이다. 「명상록」은 아우렐리우스가 맞지 않는 옷을 입고 마음을 다잡아보려는 시도로 요약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우렐리우스의 사상은 스토아 철학에 기반한다. 이에 대해서도 해설에 상세한 설명이 있어서 읽어보았다. 스토아 철학은 굉장히 생활과 밀접한 철학이다. 보통 사람들은 논리학, 자연학, 윤리학이 각기 다른 분야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스토아 철학자들은 이것들을 뭉쳐 한 체계 내에서 생각하려 했다. 즉 모든 학문은 우리가 사는 세상에 관한 것이고, 단지 우리가 생각하려는 각도에 따라 논리학과 자연학과 윤리학이 구분된다는 것이다.


스토아 철학에 따르면 우주의 원리는 이성이다. 우리가 맞닥뜨리는 모든 물질들은 실재이고, 이것들이 어우러진 물질들의 뭉치가 우주이다. 이 실재들은 자연, 혹은 신이 부여한 원리에 따라 활동한다. 신은 이성적 존재자이므로 만물의 움직임 또한 이성을 반영한다. 즉 이 세상 모든 것은 이성에 따른다. 그렇다면 우리가 목도하는 악은 도대체 왜 생긴 것인가? 스토아 철학은 이것들을 '불가피하게 생성되는 부수적인 것들'로 취급하는 듯하다.


또 스토아 철학만의 원리가 하나 더 있다. '영겁회귀'라는 원리이다. 간단히 말하면 이 세계가 일정한 주기를 가지고 멸망했다 재생하기를 반복한다는 것이다. 즉 우리가 사는 우주는 태초의 우주가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어떤 근거를 가지고 이런 아이디어를 주장한 것인지는 상세한 설명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 원리는 우리의 삶을 덧없는 것으로 만든다. 언젠가 우리의 이야기도 잊히고 우리가 살던 세계도 통째로 잊힐 운명인데, 우리 생의 부귀영화에 매달려서 무엇 하는가? 스토아 철학은 신자들을 검소하게 만든다.


이런 원리들을 전제할 때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즉 스토아 철학에서 말하는 '좋은 삶'이란 무엇일까? 해설은 제논의 말을 인용한다. "조화하고 일치하여 사는 것." 예를 들어 내게 주어진 도구를 제대로 응용하지 못하고 남을 괴롭힐 때나 쓴다면 나에게도 남에게도 좋지 않을 것이다. 우주의 만물도 마찬가지이다. 이것들은 이성적인 사용을 전제로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다. 즉 우리가 우선 해야 할 일은 이해이다. 만물이 우리에게 주어진 목적을 알고 올바른 방법으로 이들을 대하는 것이 좋은 삶이다. 이렇게 만물이 이성에 의거하여 제 몫을 한다면 우주 안에서 조화가 구현될 것이다. 이 조화로운 우주가 곧 '진실한 선'이 구현된 우주이다. "따라서 모든 이성적 존재는 서로 힘을 모아 우주를 유지하고 선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실제로 존재하는 모든 사물은 그 목적에 도움이 되도록 짜 맞춰져 있다. 인간은 우주의 일부분 또는 팔다리나 마찬가지이다. 또한 전체의 이익은 마찬가지로 부분에 있어서 이익이다."


이상이 스토아 철학의 요약이다. 그리고 아우렐리우스는 이 사상을 전제로 사색에 잠겼다고 한다. 다만 이 형태 그대로는 아니다. 그의 삶, 그가 타고난 본성은 여기에 가감을 유발했다. 그는 매우 특수한 위치에 있던 사람이었으니 여타 스토아 철학자들과는 다른 생각이 나오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특히 혼란 속에서 모든 책임을 져야 하던 그에게 철학은 도피처와도 같았을 것이다. 그는 철학을 통해 힘든 과업을 헤쳐나갈 힘을 얻거나, 아예 철학을 통해 정신을 돌릴 휴식처를 얻고자 했을 것이다.


나는 이 발자취를 따라가보고자 한다. 나는 물론 로마 황제처럼 막중한 일을 맡고 있지도 않으며 철학적인 소양도 없다. 사실 내가 상술한 내용들도 정말 옳은 것인지 의심스럽다. 다만 사건들에 짓눌려 내 마음이 무거울 때, 나도 아우렐리우스보다는 가볍더라도 비슷한 종류의 고민에 잠길 것이다. 그때를 위하여 나는 이 「명상록」을 읽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