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나는 아우렐리우스로부터 만족하는 삶에 대해 배웠다. 모든 것이 최선이며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단지 최선을 알아보는 안목일 뿐이다. 나는 이 사상에 마냥 동의하지는 않는다. 결국 상황을 바꾸지 못하면 우리는 언제고 절망에 빠질 수 있다. 하지만 이 사상을 알게 된다면, 우리가 언제고 절망에 빠질 수 있는 만큼, 우리는 언제고 희망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삶은 한 명의 철학으로 재단하기에는 정말 복잡하다! 결국 우리는 미물이며 언젠가는 소멸할 운명에 처해 있다. 그런 우리에게 알맞은 일은 세상을 바꾸려는 무모한 시도보다 세상을 다르게 보려는 시도일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명상록」을 읽는 시간은 충분히 값졌다.
「명상록」은 이렇게 끝난다. "그대는 이미 이 엄청나게 큰 세계의 한 시민이다. 우주에서 비롯된 일은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다. '나는 아직 5막을 다 끝내지 못하고 3막만을 겨우 끝냈을 뿐이다.'라고 그대는 말하는가? 물론 옳은 말이다. 하지만 삶에서는 3막이 희곡 전체일 수 있다. 처음에 그 희곡을 구성하는 작가가 연극의 대단원을 결정하는 법이다. 이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게다가 그대는 그 희곡의 작가도 아니다. 그러니 그대는 만족하며 무대에서 내려오라. 그대를 떠나보내는 자도 만족하고 있으니까."
아마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이 말에 충실하여 편하게 세상을 떴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치세도 그와 함께 꺼지며 로마는 몰락했다. 그러나 로마가 멸망했어도 「명상록」은 아직까지도 남아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이는 세계가 변하더라도 세계 속에 깃들어있는 이성의 진리가 변치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나는 인간이 이성적인 면으로만 이루어져 있다고 믿지는 않는다. 하지만 모든 인간이 이성에 의해 움직이기를 거부하지 않는다면 눈부신 세상이 도래하리라 믿는다. 그래서 나는 「명상록」을 덮지만 명상을 멈추지는 않겠다. 언젠가 회복돼야 할 이성의 가치를 널리 알리기 위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