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록」 12권
대다수는 자신에게 최적인 환경에서 살지 못한다. 이런 가운데 우리가 추구해야 할 최선의 삶은 무엇일까? 또 우리가 삶을 살 때 보여야 하는 최선은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일까? 「명상록」의 12권은 이런 질문들에 대답한다.
아우렐리우스는 세 가지 좌우명을 제시한다. "첫째, 그대는 무슨 일이든지 생각 없이 행동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정의에 어긋나서는 안 된다. 밖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는 그것이 우연히 일어났든 또는 신의 섭리이든, 이를 비난하거나 저주해서는 안 된다. 둘째, 모든 존재자는 그 씨앗에 머물 때부터 영혼을 받을 때까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가, 또 영혼을 받고 나서 그것을 본디대로 되돌려 주기까지는 어떤가, 저마다의 존재는 어떤 사물로 되어 있으며 어떤 사물에 분해되는가를 잘 생각해 보라. 셋째, 만일 그대가 갑자기 땅에서 높이 올려져 인간계를 내려다본다면 그것이 얼마나 다채로울지 생각해 보라."
첫째 좌우명은 우리 삶의 목적으로써 정의를 확실히 붙잡으라고 요구한다. 나아가 다른 사물들에 대해서도 그것들의 목적을 꿰뚫어 보라고 요구한다. "만일 인류가 다른 상태로 있어야 했다면 신들은 그렇게 했으리라고 생각하는 게 좋다. 만일 그것이 옳은 일이었다면 그것은 가능했을 것이다. 그리고 만일 그것이 자연에 따르는 일이었다면 자연은 그렇게 했을 것이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는 사실을 그대는 이해해야 한다." 즉 아우렐리우스는 모습에 관계없이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상태가 최선이라고 생각하기를 권한다. 즉 모두에게 '지금이 곧 최선'이라는 것이다.
둘째 좌우명은 지금이 최선임을 알아볼 수 있도록 탐구를 멈추지 않기를 권한다. "모든 사물을 이루는 원리를 그 겉모습에서 떠나서 바라보아라. 즉 여러 행위의 목적을 관찰하라. 사물을 바라볼 때는 물질과 형상과 목적을 나누어서 살펴라." 우리 삶에서 집요하게 반복되는 인과 관계에 적응하면, 마침내 우리는 어떤 일에 처하든 놀라지 않고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탐구는 삶의 영원한 평화를 이루는 기술이다. 최선의 삶을 위해 탐구는 꼭 필요하다.
셋째 좌우명은 우리 세계의 다채로움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를 권한다. 획일화한 사회, 모두가 한 질서에 똑같은 모습으로 복종하는 사회는 견고하지만 아름답지는 못하다. 우리 세계의 사물들은 생성과 소멸이라는 운명을 공유하지만 그밖에 모든 것들에서 다채로운 모습을 보인다. 우리에게는 이 사물들을 포괄하는 운명을 파악하는 지혜 하나면 충분하다. "지혜는 분할된 것처럼 보이지만 본디는 하나이다."
나는 이전과 같은 입장이다. 즉 아우렐리우스의 모든 말에 동의하지는 않는다. 마음을 달리 먹는다고 해서 상황이 바뀌지 않으면 우리는 언제고 다시 마음이 위축될 수 있다. 또 지금이 최선이라는 생각은 우리 삶을 개선하려는 의지를 좌절시키고 체념하게 만들 위험이 있다.
다만 아우렐리우스는 삶을 포기하라고 말하지 않았다. 어쩌면 아우렐리우스는 남이 보기에는 최선이 아닌 삶을 자신의 힘으로 최선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을 찬양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12권에 "그대는 성공할 가망이 없는 어려운 일에도 애써 힘을 기울여야 한다."라는 문장이 있다. 우리가 바꿀 수 있는 상황까지는 우리 힘으로 최선을 다해 맞닥뜨려보고, 그럴 가망이 아예 없는 상황에 처하면 그때는 미련 없이 항복하라는 것이 아우렐리우스의 진심이 아닐까? 이런 진심이라면 나는 받아들일 수 있다.
아무튼 '적당함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모두에게 나의 기준을 강요하지 않고, 나 자신 또한 기준에 얽매여서 세상사와 자아를 낮잡아봐서는 안 된다. "삶의 안정은 여기에 있다. 즉 모든 사물을 철저히 검토해 그 구성과 재료와 본질이 어떤가를 꿰뚫어 보고, 있는 힘을 다하여 정의를 실천하고 진실을 말하는 데 있다. 선에 이어서 선을 행하며 그 사이에 조금도 간격을 두지 않고 살아가는 것 말고 무엇이 남아있는가? 적당한 때에 오는 것만을 선이라 보고, 올바른 이성에 따르면 많이 행하든 적게 행하든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며, 세계를 바라보기 위해서는 시간이 짧든 길든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여기는 사람들에게는 죽음도 두려운 일이 아니다."
이상이 아우렐리우스의 마지막 가르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