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팡세」를 읽기로 하다

by 루너

고전은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다. 고전 자체가 위대한 물건이다. 시공을 초월해서 지혜와 감흥을 일으킨다는 일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인간은 필멸의 존재지만 고전을 통해 간접적으로 불멸을 누릴 수 있는 셈이다. 오묘한 조화이다. 나는 그간 「에세」와 「명상록」을 통해 나날이 오래된 지혜를 체득했고, 삶의 윤택함을 느끼고 있다. 이제는 다른 책, 파스칼의 「팡세」에 도전하려 한다.


사실 나는 파스칼을 사상가보다는 수학자로 알고 있다. 이 시대의 모든 확률론 교과서는 그가 지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지성으로 모든 것을 훑을 수 있을 것 같던 파스칼이 생전에 목표로 삼았던 작품이 수학 이론서가 아닌 「팡세」라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더구나 「팡세」를 아직 읽어 보지는 않았지만 「팡세」에 종교적 색채가 짙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다. 과연 무엇이 그를 신에게 이끌었을까? 「팡세」 읽기에 돌입하기 전에 이를 짚어보고 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파스칼은 천재성으로 일찍이 각광받았지만 개인사는 복잡다난했다. 우선 몸이 약해서 꾸준히 탐구를 지속할 수 없었고, 가정사와 개인사도 시대의 종교적 상황에 영향을 받아 자주 흔들렸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 삶에서 그나마 숨돌릴 틈을 만든 것은 파스칼 본인의 재능과 '기적' 몇 가지였다. 이를테면 도저히 낫지 않던 조카의 병이 성(聖)가시관에 찔리자 깨끗이 나은 사건이 있었다고 한다. 파스칼은 이런 체험들을 통해 신앙에 이끌렸다. 「팡세」는 그런 맥락에서 사람들을 종교로 인도하는 성격의 글이다. 민음사 판본의 해설에서는 아예 「팡세」를 호교론(護敎論), 즉 종교를 변호하는 글로 칭한다.


파스칼의 생각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을 듯하다. 그는 스스로의 재능으로 많은 것을 탐구했고 많은 지성인들을 만났지만, 그런 활동들로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 있었다. 즉 인간의 이성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이성 너머를 들여다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인간의 기능을 초월하는 존재, 즉 신에게 의존하는 것이다. "인간은 무한히 인간을 넘어선다."라는 말이 민음사판 해설에 반복되어 나오는데, 이 말은 즉 인간은 신에게 기댐으로써 스스로를 더 성장시킬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현대의 종교는 신빙성을 이유로 배척받는데, 당대에도 마찬가지였던 것으로 보인다. 사람들은 더 이상 초월적인 존재로서의 신을 믿지 않았다. 나아가 신의 존재 자체가 이성에 합치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파스칼은 이런 사람들을 설득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즉 이성과 종교는 이율배반이 아니라고 설명할 생각이었다. 파스칼에게는 오히려 종교야말로 인간을 가장 합리적으로 이해하는 체계였던 것이다.


그래서 「팡세」는 2부로 나뉜다. 1부의 부제는 「신 없는 인간의 비참」이다. 1부는 이성에만 기대는 인간들에게 이성의 취약함을 보여줄 의도였던 것이다. 실제로 1부는 인간 이성의 허위, 오류를 밝히는 데 주력한다고 한다. 2부의 부제는 「신 있는 인간의 복됨」이다. 2부는 인간이 신을 받아들일 때 얻을 수 있는 사상의 초월을 보여주고자 의도한 것으로 여겨진다. 인간이 이성이 주는 아집을 버리고 종교의 가르침에 귀의할 때 얻을 수 있는 위안과 구원을 그릴 의도가 아니었을까?


이상이 「팡세」의 의도를 잘 요약했는지는 모르겠다. 하여튼 내가 알아들은 내용은 이러하다. 이 대략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팡세」를 본격적으로 읽어보려 한다. 나는 「팡세」를 통해 종교에 귀의할 생각은 없다. 단지 인간 이성의 한계를 보고 싶다. 그간 읽은 철학서들은 인간 이성을 숭상하며 이성을 최대한 발휘할 것을 설파했다. 「팡세」를 통해 파스칼이 내놓은 이성의 한계는 무엇일까? 그리고 이를 초월하는 방법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정녕 신에게 귀의하는 것일까? 여러 물음들이 벌써 피어오른다.


「팡세」는 제법 긴 데다, 완결된 글이 아니라 사색을 담은 단장들의 묶음이기 때문에 읽기 굉장히 어려울 것 같다. 나는 그래서 「팡세」를 분석하고 해설하기보다 그저 내가 이해하는 그대로를 글로 나타내보려 한다. 이 글을 쓸 때는 도서관에서 빌린 민음사 판본이 자세한 해설로 많은 도움을 주었지만, 이전에 구입한 판본이 을유문화사 판본이어서 독서는 을유문화사 판본으로 할 예정이다. 그럼 이성의 한계선으로 여행을 시작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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