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읽은 부분은 파스칼이 생전에 특정 주제로 묶지 못한 원고들의 1장이다. 사실 분류되지는 않았다고 하나, 말들을 묶을만한 고리는 충분히 떠올릴 수 있었다. 인간사의 헛됨을 말하고 있으니 '허무'라고도 할 수 있겠고, 겸손을 강조하니 간단히 '겸손'이라고 할 수도 있다. 다만 어느 단어도 문장들을 전부 완전무결하게 묶기는 어려워 보여서, 그냥 '미분류 원고'로 표기하기로 했다. 다른 장들에 대해서도 동일한 방법으로 표기할 것이다.
아무튼 서두에서 말한 것처럼 이번 장은 인간사의 허무함을 많이 다루고 있다. 파스칼은 사람들이 사람에게 갖는 애착은 허무하다고 말하며, 심지어 파스칼 자신을 향한 애착도 허무한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나는 그 어떤 사람의 목적이 아니며, 그들을 만족시킬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머지않아 죽을 것이고, 그래서 그들의 애착 대상은 사라질 것이다."
인간의 삶은 유한하며, 인간의 시야도 유한하다. 인간은 태초부터 무한과 떨어져 있기에 영생할 수도 없고, 영원성과 유리돼있기에 행복에 닿지 못하고 헛됨만을 발견할 수 있다. 헛된 세상사를 극복하기 위해 오락에 빠지는 사람도 언젠가는 권태에 이르게 돼있다. 인간의 헛된 삶과는 별개로, 인간이 인간을 사랑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들은 분명 위대해 보인다. 하지만 사랑 또한 늘 옳은 것은 아니다. "사랑의 현상은 끔찍하다. 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어떤 것은 너무나 하찮은 것이라 잘 인지할 수도 없는데, 온 대지를, 군주들과 군대, 온 세상을 선동한다.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조금만 더 낮았더라면 지구의 모습이 바뀌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진정한 행복을 찾고자 한다면 인간의 조건을 벗어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흥미로운 것을 무시할 정도로 무심하고, 우리와 가장 관련 깊은 것에 대해서까지 무심해지는 것." 이는 인간을 초월한 존재, 즉 신에게 귀의함으로써 이루어질 수 있다고 파스칼은 생각했다. "행복은 우리 밖이나 안에 있는 것이 아니다. 행복은 신 안에, 우리 안과 밖에 존재한다."
그러나 나는 정의를 위해서는 신의 힘이 필요하지만 개인의 행복을 위해서는 신으로부터 자유롭기를 바란다. 아무리 미약한 존재라고 해서 스스로 행복할 수조차 없다면 얼마나 불쌍한 존재인가? 내가 이런 존재라면 신을 경배하기보다 날 이렇게 창조한 신을 원망할 것이다. 나는 신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고도 인간의 행복을 가져올 방법을 마련해두었다고 믿으련다. 신은 모든 존재를 위한 존재이니, 신을 모르는 자에게도 광명을 충분히 줄 수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