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작가를 소개합니다
교수님 아들 결혼식에 갔다. 다음날 경기도 인재개발원 특강이라 망설였다. 첫 강연을 준비하느라 공원을 걸으며 연습하다가 식장으로 향했다. 아는 얼굴이 많았다. 정년퇴직한 교수님들도. 식전 행사로 내가 좋아하는 '일몬도' 노래가 울려 퍼졌다. 행복한 마음으로 결혼식을 보고 식사를 하며 교수님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평소 인문학 관련 글을 교내 게시판에 꾸준히 쓰시는 교수님이 오셔서 지역 유래, 전통에 대해 몰랐던 이야기를 해주셔서 강의를 듣는 듯 즐거웠다.
빨리 강연 연습하러 가려고 일어섰는데 교수님도 댁에 가신다고 해서 같이 나란히 걷게 되었다. 부끄러웠지만 책을 하나 냈다고 말씀드렸다. "팀장님이 책을 쓰셨어요? 어떤 책인가요. 서점에 있나요?" "네. 교수님. 달리기 에세이 책입니다. 서점에 있습니다. 올 10월엔 오디오북으로도 나왔습니다."
교수님은 감명받으신 듯 책 제목을 꼼꼼히 확인하시고 나를 바라보셨다.
"팀장님이 기획 일만 하시는 줄 알았어요. 언제 이렇게 책까지 쓰셨어요? 아니 이런 큰 일을 왜 안 알리셨어요. 책 내신 지 벌써 8개월이나 지났네요." 내가 답했다. "개인적으로 열심히 알리고 있는데, 왠지 직장에서는 일 안 하고 딴짓한다는 이야기 하지 않을까 해서 조용히 있었습니다."
교수님이 말했다. "제가 먼저 주문해서 읽을게요. 와. 팀장님이 이런 진면목이 있으셨구나. 평소에 글을 좀 쓰셨어요?" 내가 웃으며 말했다. "교수님의 필력에 비하면 부끄러운 수준입니다. 달리며 느낀 생각, 몸으로 직접 경험하며 변화된 이야기를 솔직히 썼습니다. 어머니가 평소 수필을 쓰셔서 책 퇴고를 같이 했습니다." "그러시구나. 반가운 소식이네요. 이런 좋은 일을 왜 안 알려요? 이야기해 주셔서 저도 지금 알게 되었네요." 멋쩍게 웃으며 강연 소식도 전했다. "저 내일 도서관과 인재개발원에서 첫 러닝 인문학 특강이 있어서 떨립니다. 소중한 기회라 잘하고 싶어요." "팀장님은 잘하실 거예요. 좋은 소식 기다릴게요."
강연을 마치고 일하다 보니 한 주가 흘렀다. 결혼식에서의 일도 까맣게 잊었을 때 교수님께 연락이 왔다. 근무하는 대학 자유게시판에 글 하나를 올리셨다고. 나를 소개하는 글이었다. 가슴이 벅차올랐다. 제목은 <한 작가의 두 발로 쓴 기도>였다. 달리기에 대한 인문학적 이야기의 끝에 나를 작가로 소개해주신 귀한 글이었다.
"달리다 보면 결국 마주하는 나 자신. 일체 가식을 버리고 달리는 나의 몸에 집중하고 그리하여 편안하게 마주하는 나. 이렇듯 달리기의 뚜렷한 속성은 삿된 것을 비우는 허(虛). 나와 자연이 전일하는 일(壹). 그리고 심의 고요한 상태를 마주하는 정(靜). 바로 순자가 직설한 세상의 도리를 깨닫는 허일정의 묘리. 바로 달리기는 세상의 도리를 깨우치고자 하는 하나의 첩경이 아닐까.
달리기를 인간 사색의 한 몸짓으로 이렇듯 길게 쓰는 내 꼰대 짓에 반하여, 작가는 너무도 명료하게 자신의 달리기를 고백하고 있다. "달리기는 두 발로 쓰는 나의 기도였다. 달릴수록 어제보다 더 나은 내가 되었다. 달릴수록 자신을 더 사랑하게 되었다. 오늘도 나는 나를 사랑하기 위해 달린다." 작가가 너무도 가까이 있었음에도 이제야 그를 발견하고 감히 소개한다. <모든 달리기에는 이야기가 있다>를 쓴 정승우 작가."
교수님의 깊고 벅찬 소개글에 한참을 멈춰있었다. 책이 나온 3월에 직장에 알리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너무 나대는 것 같아서 소심하게 알리지 못했다. 내가 나서서 올리기도 민망했다. 강연 준비로 갈까 말까 망설였던 결혼식에서 교수님께 이야기하게 되고, 교수님의 귀한 글로 나를 작가로 소개받고 내 책을 직장에 전할 수 있어서 벅찼다.
이렇게 답을 달았다.
"교수님,『모든 달리기에는 이야기가 있다』를 쓴 정승우입니다. 5년의 발걸음과 마음을 담은 제 책을 이렇게 귀한 글로 소개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5년 전 길을 잃었을 때 달리기를 만났습니다. 미운 제가 싫어서 시작했지만, 달리고 쓰는 시간이 쌓이면서 어느 순간 저 자신을 다시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틈틈이 글을 쓰다가 투고 끝에 출판사와 인연이 되어 올해 3월 종이책으로, 10월에는 오디오북으로 세상과 만날 수 있었습니다. 누군가의 힘든 시기에 작은 용기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쓴 책인데, 교수님께서 남겨주신 따뜻한 글 덕분에 그 시간들이 더 소중하게 느껴졌습니다. 보내주신 응원 잊지 않고, 더 정직하게 쓰고 달리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정승우 드림 -"
모든 달리기에는 이야기가 있다.
정말로 끝나지 않는 이야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