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마라톤 10km 대회에 다녀왔다. 새벽 4시에 나와 2시간 넘게 달려간 인천문학경기장. 1시간도 안돼서 금방 경기가 끝났다. 허전했다. 목욕탕에 가서 탕에 들어가지 않고 샤워만 하고 다시 옷 입고 나오는 느낌이랄까?
소중한 오후 일정을 위해 다시 길을 나섰다. 오후 2시 "널 보낼 용기" 송지영 작가님 첫 북토크, 마라톤 대회와 시간이 겹치면 과감히 대회를 포기하고 갈 마음까지 먹었던 북토크. 이유가 있었다.
11월의 어느 월요일, 도서관에서 첫 특강을 했다. 한 달음에 달려와주신 송지영 작가님을 잊을 수가 없다. 어찌나 반갑고 감사하던지. 눈을 빛내며 내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여주시고 사진과 영상까지 담아주신 작가님의 따스한 손길에 주어진 1시간 30분 특강을 마쳤다. 송작가님에게 내가 드릴 수 있는 최선의 것을 드리고 싶었다.
북토크 이틀 전 출근길에 작가님 책을 읽다가 버스 창에 책을 대고 지나치는 버스와 사람들, 건물들과 같이 영상을 찍었다. 그 순간이 마치 내 삶이고 영화 같았다. 나를 스쳐간 아픔의 순간들과 작가님이 책에 쓴 장면들이 차창밖으로 쏜살같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게 뭐가 되었든 이제는 그만 놓아주라고. 그냥 흘려보내라고. 이제 붙잡지 않고 떠나보낼 용기를 내라고 등을 떠미는 것 같았다.
이제야 이 책을 소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영상에 몇 줄 글을 넣고 책을 펼쳤다. 읽다가 다시 책을 덮고 눈을 감았다. 어느새 나는 수십 년 전 대학생 때로 돌아가 있었다. 가족의 아픈 소식을 들었던 날이 떠오르고 이사를 가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입을 닫고 기억에 봉인을 하고 살아온 시간들이 떠올랐다. 조금 눈물도 흘렸다. 다시 책을 읽다가 또 생각에 잠겼다. 책을 덮고 지영 작가님의 책을 소개하는 리뷰를 쓰기 시작했다. 가슴에서 가슴으로.
좋은 작가님 곁에는 좋은 사람들이 있다. 북토크에서 만난 브런치 작가님들. 아헤브 작가님, 무명독자 작가님, 에리카 작가님, 명랑소녀 작가님, 회색토끼 작가님, ligdow작가님, 지언 방혜린 작가님, 스윗리틀키티 작가님, 고요한동산 작가님...
북토크 장소에 다 와서 길을 헤매는데 맞은편에 눈에 익는 송지영 작가님과 환한 얼굴의 누군가 같이 서있었다. ligdow 작가님이었다. 대학 동창을 만난 듯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한 눈에도 선한 빛이 스며있는 작가님. 송지영 작가님이 북토크 준비를 하러 들어갔을 때 잠시 이야기 나눴다. 따뜻한 배려의 표정과 품격 있는 말투. 암 치료 중이셨다는 작가님 말, 멀리서 오셨다는 말에 고개를 숙였다.
북토크를 마치고 뒤풀이 장소에서 ligdow 작가님을 다시 만났다. 문득 새벽부터 다녀온 인천마라톤 완주메달이 떠올랐다. 만지작거리다 메달을 꺼냈다. 작가님께 조심스럽게 여쭸다. "저, 오늘 제가 마라톤 대회에 다녀왔는데요. 완주메일 드려도 될까요?" 작가님이 환하게 웃으며 좋다고 해서 메달을 드렸다. 러너에게 메달은 전리품처럼 소중하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닿으면 부적이 된다.
책을 외우듯 다 읽고 써야 진짜 리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책의 이미지와 그 책이 주는 느낌으로 리뷰를 쓴다. 그 책의 이야기가 내게 이미지처럼 다가오면, 그가 내 삶의 어느 이야기를 끄집어내고 책이 어떤 말을 내게 거는지 들여다본다. 내가 없는 책소개가 누군가의 가슴에 닿을 수 있을지 나는 모른다.
메달이 전리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그 메달이 가진 이야기와 땀방울이 좋다. 그리고 어느 순간 누군가에게 그 메달이 닿으면 부적이 되고 두려움을 이길 힘이 되리라 믿는다. 나는 ligdow 작가님이 더 건강해지셔서 정말로 10km 마라톤 대회에 나가 자신의 메달을 목에 걸고 웃는 모습을 상상한다. 그때 그날 내가 드린 메달을 돌려받으면 되니까. 아니 돌려받지 않아도 좋다. 그날의 만남을 비추는 희망의 증표로 그 메달은 가치가 있으니까.
작가의 책소개는 귀하다. 글을 쓰는 분들의 리뷰는 귀하다. 그냥 툭 튀어나오는 글은 없다. 나도 누군가의 책에 그런 리뷰를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쓰면서 내가 울컥 눈물이 차오르고 그 책을 꼭 읽어봐야겠다는 마음이 드는 그런 리뷰를 쓰고 싶다. 책을 소개한다는 건 스포일러가 아닌 그 책이 내 삶에 어떤 그림을 그리는 지를 한눈에 보여주는 일이라 생각하니까.
러너의 메달은 귀하다. 달리기에 진심인 러너의 메달은 귀하다. 그냥 재미로 나간 대회가 아닌 몇 달 아니 1년의 고통스러운 훈련의 땀방울이 담겨있으니까. 나도 누군가의 삶에 그런 메달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목에 걸면 가슴이 뜨거워지고 그처럼 달려봐야겠다는 마음이 드는 그런 러너가 되고 싶다. 메달을 선물한다는 건 자랑이 아닌 그 메달이 내 삶에 어떤 의미인지를 그분께 나누어주는 일이라 생각하니까.
누군가의 책소개에 시간을 쏟는 건 그 책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 책에 담긴 작가의 삶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메달을 걸어주는 건 그 용기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 삶에 담긴 한 인간의 용기를 사랑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