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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생입니다

미생 : 아직 완전히 살아나지 못한 상태

by 러너인

셔플댄스를 시작했다. 주 1회. 첫날은 어렵지 않았지만 두 번째, 세 번째는 버벅거리기 시작했다. 초심자의 행운이었을까. 둔한 몸과 박치인데 너무 욕심이 컸는지 조금씩 작아지는 느낌이다.

초보반이지만 금방 잘 따라 하고 성취가 빠른 분들이 있다. 찰스턴? 찰리채클린처럼 발을 모으고 펴는 동작을 배웠는데 잘 안된다. 발에 본드를 발라 놓은 건지. 어느 분은 그냥 술술 동작이 나온다. 동작이 잘 안 되니 답답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부서를 옮긴 첫 해라 업무파악에도 시간이 든다. 잘하던 일이 아니라 새로운 일이니 잘 챙기고 제대로 해야 한다. 새로 맞이한 팀원과 새 일을 맡게 된 팀원이 잘 해낼 수 있도록. 사업 마감과 절차를 지키는 것, 돈과 관련된 일. 버겁게 느껴질 때도 종종 있다.

주 3일 러닝클래스도 잘 해내고 싶다. 11-12월 클래스인데 저번 주는 부서 전체 가장 큰 행사 준비로 2번 빠졌다. 이번 주 화요일도 사업 중간점검 제출로 또 빠졌다. 월요일 셔플도 가까스로 다녀왔다. 우선순위를 잡는 게 어렵고 어렵고 어렵다. 달리기 하나만 붙들고 살 때가 편했나 웃음이 난다.

500자 이상 매일 글 쓰고 인증하기도 어젠 짧은 글로 대체했다. 이빨 빠진 하루. 전날 야근하고 뻗었다가 새벽 5시에 일어났다. 출근 전 글 한 편을 쓰는 시간이다. 왜 난 인스타나 브런치에 올릴 글 하나를 쓰는데 1시간 30분~2시간이나 걸릴까. 15분에 한편 쓰는 분들도 있다던데. 너무 둔하거나 글재주가 없는 게 아닐까.


잘 쓰고 싶은 강박이 있어서 그럴까. 어제 새벽엔 눈 뜨자마자 그 시간에 회사일을 했다. 새로운 사업이라 기존 절차를 조금 바꿔서 처리해야 하는데 타 부서일이라 내 맘 같지 않다. 불만이 있는 사람과 일하는 건 쉽지 않다. 의지가 없는 사람과 일하는 건 나도 지친다.

업무협조가 필요 없다면 무시하고 신경 쓰면 되지만, 신경을 끄면 문제가 생긴다. 현재 바꿔야 할 업무절차를 정리하고 구글링을 하며 문서 초안을 잡다 보니 새벽 2시간을 꼬박 썼다. 달리기도 못하고 매일글쓰기도 못했고 잠은 설쳤다. 다들 어떻게 매일 새벽에 나가서 뛰는 건지. 매일 새벽에 뛰는 분들도 많은데 왜 나는 그게 잘 안될까.

아쉬운 마음에 짧을 글귀만 써서 sns에 올렸다. 정확한 업무처리를 위해 전화하고 연락하고 정리하고 중간에 회의에 다녀오고 이것저것 하나 보니 퇴근시간이다. 집에 오면 밤에라도 뛸까 생각했는데 몸이 무겁다. 쓰러져서 그대로 잠이 들었다가 새벽 3시에 눈을 떴다. 바로 글 쓰는 지금이다.

주말이면 북토크, 모임, 행사가 계속 있다. 예전엔 갈 곳이 없어서 도서관에 갔는데, 이젠 갈 곳이 많아서 걱정이다. 가서 응원하고픈 자리도 많고 내가 누군가를 도와야 하는 자리도 있고, 이도저도 아니면 운동약속, 러닝동기모임도. 모든 걸 다 갈 순 없다.

깊이 있는 독서도 하고 싶고, 독서모임도 참가하고 싶다. 깊은 글도 쓰고 싶고, 달리기도 더 잘하고 싶고 대회에도 나가고 싶다. 셔플댄스도 잘 배워서 사람들과 같이 추고도 싶다. 새벽마다 10km를 뛰고도 싶고 새벽마다 어디 올려도 부끄럽지 않은 에세이 한 편씩 뚝딱 써서 올리고 싶다.

SNS도 잘하고 싶다. 인스타도 스레드도 브런치도 블로그도 지금 수준이 아닌 수만 명 계정으로 키우고도 싶다. 더 많이 알리고 더 많은 분들께 책과 이야기가 닿고 서로 성장하고 싶다.

회사일도 잘하고 싶다. 대충 하는 게 아닌 제대로 해보고 싶다. 가끔은 장거리를 달리며 나와 대화하듯 조용히 뛰고 싶고 가끔은 사람들과 같이 달리며 마음 나누고 싶다.

나만의 작은 커뮤니티를 만들고 싶다. 최근 책을 내신 작가님처럼 온오프라인으로 정기적으로 소통하는 자리를 만들고 꾸준히 몸과 마음을 가꾸는 사람들과 더 깊이 연결되고 작은 도움이 되고 싶다. 강연 기회도 더 많이 만들고 더 많은 제안서를 보내고 더 큰 무대에서 서보고 싶고 아주 작은 무대에도 서보고 싶다.

왜 나는 다 해내지 못할까. 속상할 때가 있다. 피곤하고 지칠 때도 있다. 회사일이 몰아칠 때, 제대로 잘 풀리지 않을 때 더 그렇다. 셔플댄스를 배우며 내 몸이 내 몸 같지가 않아서 속상하고 또 가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들었듯 모든 일이 잘되고 술술 풀리면 재미있지만 안 그럴 때가 더 많다.

글도 잘 쓰고 싶고 브런치북도 또 내고 싶고 새 책도 쓰고 싶다. 좋은 책도 보고 싶고 작가들과의 만남도 더 많이 갖고 싶다.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 시간을 제대로 쪼개어 쓰는 것. 글 쓰고 달리는 것, 이 둘도 내겐 벅차다. 다들 책을 어떻게 그렇게 많이들 읽고 어쩌면 그렇게 운동도 많이 하고 다 해내는지.

'선배, 갓생 사시네요.'라던 후배의 말에 이렇게 답해야겠다. "아니오. 저는 하고 싶은 걸 10%도 못하고 살아서 언제나 배가 고픕니다. 나는 미생입니다. 너무나 갓생 살고 싶은 미생입니다."


P.S. 브런치북을 이 주제로 새로 써볼까요?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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