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에서 1,000까지, 100일

모든 달리기에는 이야기가 있다

by 러너인

오디오북이 세상에 나온 지 100일이 됐다. 밀리의 서재, 윌라, 그리고 교보문고. 100일 전 처음 만난 윌라 누적 청취자 수는 단 50명. 매일 늘어가는 숫자를 확인하곤 했다. 출시 40일째 600명을 넘은 것까지 보고 잊어버렸다.

오디오북이 어디까지 닿았을까 궁금해졌다. 출시 100일이 된 나의 오디오북은 지금 어디쯤 달리고 있을까. 밀리의 서재 북마크 222명, 윌라 1,000명. 생각보다 많은 분들께 닿고 있었다. 매일 제자리에 머물러있는 것 같지만, 책은 꾸준히 소리를 통해 누군가의 귀에 닿고 있었다.

50명에서 1,000명이라는 숫자. 20배, 100일. 6시간 13분이나 되는 긴 오디오북을 누군가 달리면서 즐겁게 들었다니 기뻤다. 달리며 책을 듣고 처음으로 울트라마라톤에 도전한다는 분의 이야기도, 책을 듣다가 하도 기가 막혀서 글쓴이가 참 대책이 없는 도전을 하는 사람이라고 혀를 차는 댓글을 썼던 분이 며칠 후 그 열정에 취해서 끝까지 재미있게 들었다는 댓글에 한참을 웃었다.

대책이라는 걸 세우고 살아온 45년, 달리기를 시작하고 대책 없이 달려온 4년의 기록. 평범한 중년 비운동인의 도전 이야기가 그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갔을까. 누군가는 이런 사람도 도전해서 해내는데, 왜 나라고 못할까 하는 마음으로 새로운 도전을 꿈꾸기도 했을 것 같다. 나도 우연히 sns에서 본 누군가의 울트라 완주소식에 저 사람도 했는데 왜 나는 안될까 하는 용기를 얻었으니까.

지금은 무슨 대책이 있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여전히 아니오이다. 대책은 없지만 계속 달리면서 답을 찾을 테니까. 두렵다고 방구석에 앉아서 대책만 세운다고 일이 해결되는 게 아니다. 러너가 되고 느낀 건 일단 시작하고 달려가는 게 대책이라는 것.

오디오북을 듣고 댓글을 남겨주신 분이 걱정해 주셨듯 만일 생애 첫 한라산 트레일러닝을 날씨를 탓하고 풀이 죽어 숙소에 가서 잠이나 자고 있었으면 책에 그 에피소드가 쓰일 수 있었을까. 그 뜨거운 삶의 순간이 죽기 전에 나에게 주어졌을까.

한라산 입산 통제선이 닫히기 불과 몇십 초 전에 게이트를 통과하고, 바로 귀 뒤에서 '오늘 한라산 입산은 마감합니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의 희열을 무엇과 바꿀 수 있을까. 비바람을 때려 맞으며 아무도 없는 한라산 계단을 미친 사람처럼 웃으며 뛰어내려 가던 그 순간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물웅덩이가 되어버린 현무암을 딛고 빠르게 하산하면서도 두렵지 않았다. 아무도 없는 정상석에서 눈도 뜨지 못할 정도로 거친 날씨에 셀카로 하트를 그리며 인증사진을 남기던 순간도. 뛰어내려 가다 뱀을 밟을 뻔했던 아찔한 순간도. 다른 분들이 정말 대단하다고 엄지 척해주셨던 순간도. 그 하산의 기쁨을 그 무엇과 바꿀 수 있을까.

반대편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망연자실한 상황, 누구라도 포기할 생각을 했을 비바람. 먹을 간식 하나 없이 달랑 에너지젤 두 개만 챙겨 온 대책 없는 상황에서 한라산에 가기엔 늦은 시간에 굳이 뚜벅뚜벅 걸어 들어가던 내 마음. 그때 그 결심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누군가의 인정도 필요 없고 내가 나를 믿고 몸을 던지던 순간을.

누군가는 비가 와서 포기하고, 늦었다고 포기했지만 그 말을 듣고 오히려 나는 러너니까 조금 더 빠르게 오르면 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졌던 순간을. 그리고 포기하지 않고 울상을 지으며 죽기 살기로 돌을 밟고 올라서 정상으로 가는 문이 닫히기 직전에 통과하던 희열을. 그 어느 대회도 그때처럼 기쁘지 않았다. 나와의 싸움, 나만의 대회.

수많은 대책을 세우고 시작해도 변수가 찾아오는 인생길처럼, 그날 한라산을 뛰던 일도 같았다. 나는 그날 포기하지 않는 법을 배웠고, 그 이야기를 책에 썼다. 무모한 도전이라 볼 수도 있지만 가끔은 그런 무모함이 자신을 더 깊은 삶 속으로 들어가게 한다. 나의 지극히 개인적인 달리기 도전과 체험 이야기를 보고 들으며 더 멋진 당신이 더 대책 없이 도전하고 더 많이 실패하기를 바란다. 물론 성공은 그 안에 자연스럽게 다가오겠지만.

오디오북 출시 100일을 맞아서 귀한 시간을 내어 6시간 넘는 오디오북을 듣고 함께 울고 웃으며 달려주신 1,000명의 윌라 구독자님과 222명의 밀리의 서재 구독자님. 종이책으로 또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며 그럼 한 번 나도?라는 생각을 하며 가슴에 뜨거운 불씨 하나를 간직한 당신께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달리기든 일상이든 새로운 도전을 멈추지 않는 당신을 응원한다. 언제나 뜨거운 열정으로 달려가는 나 러너인이 당신을 응원한다. 대책은 없지만, 계속 달리자. 그게 내가 찾은 유일한 답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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