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브런치라는 곳에서 글을 쓸 권리(?)를 얻지 못해 속상해할 때 파워블로거가 되는 방법을 강의한다는 사짜를 만나 비싼 수업료를 낸 적이 있다. 그 후 SNS에서 뭔가를 가르쳐준다는 꼬드김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오로지 내 마음과 내 땀이 스민 이야기를 쓰는 것이 좋았다. 누군가 봐주지 않아도 그저 쓰는 것만으로 치유됨을 느꼈다.
책을 내고 출간작가가 되기를 희망하는 사람도 많다. 내가 4수를 해서 들어간 브런치란 글 쓰는 공간은 출간작가를 목표로 글을 쓰는 분들이 가장 많이 있는 곳이다. 마치 서브 3을 목표로 잘 뛰는 러너 분들이 서브 3반 러닝클래스에 모인 모양이라고 할까.
어디나 스타강사처럼 수천, 수만, 수십만 팔로워를 데리고 있는 인플루언서들이 있다. 그런 분들은 나와는 결이 다른 사람들이라고 생각해 왔다. 우연히 그 유명 인플루언서의 강연 커뮤니티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 호기심이 생겼다. 뭘 가르칠까? 과연 그가 가진 숫자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내키지 않았지만, 낯선 세상을 경험해 보기로 했다. 무료가 아닌 유료강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당황스러웠다. 이미 내가 알고 있는 기초적인 내용. 강의를 들을수록 내가 원하는 방향과 거리가 멀었다. 이미 종이책과 전자책, 오디오북까지 낸 상황에서 무슨 미련이 있어서 신청했을까.
언제부턴가 수업을 듣지 않았다. 회사일도 바빠지기도 했고 여전히 나와는 맞지 않았다. 무엇보다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과 전혀 맞지 않았다. 중간에 단톡방을 나왔다. 결국 돈만 날린 셈이었지만, 또 다른 의미의 타산지석, 수업료를 냈다. 씁쓸했다. 언제까지 불에 손이 닿아야 뜨거운 줄 알까. 그나마 끝까지 가지 않고 소신 있게 행동한 게 예전과 다르다면 다른 점일까.
사람이 어느 단계를 지나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려는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고 움직여야 한다. 자신의 페이스와 다른 사람들과 함께 달리면서 성장을 꿈꾸는 건 무리이다. 잠시 몸이 편할 수는 있지만, 불편하지 않는 도전이 어떤 성장을 가져다줄까.
사실 불편함을 선택하긴 했다. 하지만 그 불편함은 답이 아닌 것을 답인 것처럼 말하고, 성장이 없는 것에서 성장을 말하는 결핍에 대한 불편함이었다는 게 문제였다. 이 불편함은 결국 또 다른 불편함으로 내게 다가왔다.
도전은 불편하다. 하지만 그 불편함은 누군가가 만든 장기판에서 졸이 되어 움직이면서 느끼는 수동적인 불편함이 아니어야 한다.
길이 아닌 것을 길이라 말하고, 도가 아닌 것을 도라 말하는 순간 그 길은 길이 아니다. 땀과 고통으로 말하는 달리기, 달리기는 정직하다. 땀의 이야기가 그래서 좋다. 있어 보이는 이야기가 아닌 그저 가슴이 뜨거워지는 진짜 자신의 이야기. 그런 이야기라면 지갑을 열고 싶다.
자신의 이야기가 아니라면 그 이야기가 어떤 감동을 줄까.
sns에 매일 글을 쓰고, 수십 개씩 게시물을 올리는 물량에 의한 양적 성장방식이 SNS의 알고리즘을 자극해서 많은 이들을 팔로워로 모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렇게 모은 숫자는 신기루다. 팔로워 숫자가 그 자신의 인격이 아니듯 달린 거리 옆에 붙은 페이스 숫자는 나 자신이 아니다.
숫자에 놀아나지 않는 삶. 페이스든 팔로워 수든 뭐든. 또다시 수업료를 내고 내가 원래 알던 것이 맞았음을 배운다. 달려도 달려도 아직 배워야 할 것이 많은 나는 아직 러너다. RUNNER 이전에 LEARNER다.
가끔 세상의 유혹에 눈을 돌리고 아차. 이 길이 아니구나 알바를 하고서야 깨닫는 러너인. 쉽게 가는 길이 지름길이 아니듯 땀인 듯 눈물인 듯 흘리며 멈추지 않고 달리는 그것이 달리기임을 배운다.
태초의 운동, 달리기를 통해 다시 겸손을 배우고 숫자에 취하는 삶이 아닌 숫자에 담긴 땀에 취하는 한 주가 되길. 나를 사랑하고 나로 살기 위해 다시 뛴다. 달리기로 눈 내린 새벽을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