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타인의 가장 빛나는 순간을 찍은 적 있는가

by 러너인


2026년 3월 31일. 분당서울대 병원 암센터 지하 1층 대강당, 타샤 용석경 작가님 강연날이다. 강연 소식은 일찍 들었지만 평일 오전 12시라는 말에 흘리듯 지나쳤다. 그런데 왜 도서관이 아닌 병원이지? 이유가 있다. 타샤 작가님은 암 진단 후 항암 치료로 이곳에서 100번 넘게 치료를 받았다. 그녀는 암 진단 후 자신과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쓴 글들로 두 권의 책을 낸 작가가 되었다. 병원의 정식 초청을 받아 다름 아닌 그곳에서 처음 강연자로 서는 데뷔 무대였다. 환자에서 작가로, 환자에서 강연자로 서신다니 얼마나 벅차고 뿌듯할까? 작가님을 치료한 의료진도 다수 참여하는 뜻깊은 자리. 새 삶의 증언자로 다시 그 곳에 서는 타샤 작가님을 실시간 직관하며 응원하기로 했다.


일찍 집을 나섰다. 센스 박약인 나였지만 아프고 나서 꽃을 좋아하게 되었다는 작가님 말이 머리에 자꾸 맴돈다. 미금역 지하철역에서 내리자마자 보이는 꽃집에 달려가서 프리지어 꽃다발을 샀다. 타샤 작가님의 첫 서점 북토크 때도 우여곡절 끝에 갈 수 있었다. 그날 아침 10km 마라톤 대회가 있어서 못 가는 줄 알았는데, 마침 서울이라 북토크 장소까지 대중교통으로 달려가면 겨우 시간을 맞출 수 있는 거리였다. 그날도 꽃을 전해드렸다. 긴장된 얼굴로 앉아있다가 꽃보다 더 환해진 타샤 작가님 표정에 가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1년 전 나의 첫 북토크도 많이 떨렸었다. 그 뒤 1시간 반~2시간 특강으로 진행된 도서관과 기업 특강까지 기회가 닿았다. 무대에서 말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내가 새로웠다. 모든 기회가 소중하고 감사했지만 작은 아쉬움이 남았다. 남는 건 결국 사진이고 기록이다. 낯선 강연장에서 공무원, 일반 도서관 이용자가 대상이라 주최 측에서 찍어준 사진 몇 장이 다였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말을 전할 때 나의 표정과 말, 분위기 그 모든 것이 궁금했다. 마라톤 대회에서 마지막 고통을 이겨내며 전력질주해서 완주하는 바로 그 장면이 가장 귀하듯 그날의 강연의 하이라이트 영상이 늘 궁금하고 아쉬웠다.


오늘은 내가 타샤 작가님의 감동적인 데뷔 무대를 기록하는 사생팬이 되기로 했다. 강연장 첫째 줄에 앉아서 타샤 작가님 강연 인트로 영상을 찍었다. 작가님과 분당서울대병원 로고가 같이 나오도록 한 화면으로 영상에 담았다. 하나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귀를 쫑긋 세웠다. 이미 몇 번 들어서 알고 있는 내용이었지만, 새로운 울림이 있었다. 강연장을 가득 메운 의료진과 환우님들의 열기도 뜨거웠다. 이제 강연은 클라이맥스로 향하고 있었다. 다시 카메라를 들었다. 타샤 작가님이 암으로 새로운 세상을 만나고 알게 된 것, 자신을 조금 더 안아주는 삶을 이야기할 때 다시 녹화를 시작했다.


그녀의 목소리가 살짝 떨리고 울컥함을 참아내며 다시 씩씩하게 말을 잇는 장면까지, 그녀의 목소리가 떨릴 때 나도 떨렸고 그녀의 목소리에 울음이 살짝 스몄다가 사라졌을 때 카메라를 든 내 손에도 울음이 스몄다가 서서히 사라졌다. 그녀가 자신의 이야기와 완전히 하나가 되었을 때 나도 그녀의 스토리와 하나가 되었다. 조금 더 자세히 담고 싶어 얼굴 표정을 클로즈업했다. 환한 웃음과 떨리는 입술, 애써 마음을 추스르며 다시 힘차게 자신의 말을 전하는 그녀의 표정은 아이맥스 영화관 화면을 가득 메운 주인공의 얼굴과 대사를 보듯 가슴 깊숙이 파고들었다.


나는 타인의 가장 빛나는 순간을, 아니 나의 가장 빛나는 순간을 찍고 있었다. 전장의 치열한 순간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누군가 자신의 아픔을 딛고 아픈 그 장소에서 다시 일어나는 위대한 순간을 찍고 있었다. 꽃봉오리에서 활짝 꽃이 피어나는 찰나의 순간을 담은 초고속 카메라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자신의 언어로 가슴으로 전하는 한 인간을 찍고 있었다. 그 속에는 떨리는 목소리로 6년 간 달리며 배운 것들을 이야기하는 바로 그 순간의 내 모습이 거울처럼 담겨있었다.


오늘 나는 타샤 용석경이라는 한 인간의 존엄과 위대한 용기를 보았다. 그녀가 쓴 두 권의 책 "살아낸 김에 즐겨볼까", "유방암이지만 괜찮아."보다 더 크고 찬란한 한 인간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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