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은 힘이 있다

by 러너인

월요일은 힘이 있다.

일요일에 두 번째 한국어 교육 자원봉사가 잡혀있다. 한주 내 일하느라 바빠서 온라인 강의도 절반밖에 못 들은 내가 누굴 도울 자격이 있을까. 바쁜 업무로 지하철에서 잠시 찔끔 강의를 들었지만 문법이 어렵다. 단어, 조사, 형태소... 한국어가 이렇게 어려웠나 싶을 정도로.

이 문장에서 단어의 개수는 몇 개일까. 띄어쓰기로 나눠진 부분만 세면 될까 싶지만 아니다. 거기에 조사를 더해야 한다. 처음엔 알 것 같은데 막상 형태소라는 개념이 나오면서 어디까지가 조사인지 헷갈린다. 찔끔찔끔 출퇴근하며 귀로 듣는다고 개념이 잡히는 게 아니라서 답답하다.

일요일 아침, 온라인 한국어 자원봉사 약속시간은 저녁 6시. 씻고 준비하고 낮 12시 넘어 도서관에 도착했다. 첫 번째 시간은 전날부터 몇 시간씩 준비했는데, 두 번째 교육시간은 불과 몇 시간 전인 지금까지 교재조차 들여다보지 못했다. 정신 차리고 교재를 열고 오늘 알려드릴 문법을 체크하고 예문을 만들었다. 오늘 주제는 취미이다. 평소에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할 수 있고 나중에 무엇을 하고 싶은지. 2~3시간 정도 작업 후 정리를 마쳤다.

문득 좋아하는 책, 작가가 궁금해졌다. 취미를 물을 때 추가질문을 하기로 했다. 한국어를 할 줄 아는지 묻는 질문에는 추가질문으로 1분간 한국어로 자기소개를 해달라는 내용을 넣었다. 힘들 수는 있지만 유창하지 않아도 그런 기회를 통해 더 몰입도를 놓일 수 있으니까.


정작 내가 머리를 싸매고 있는 한국어 문법은 아직 해결된 게 없었다. 도서관 검색 후 쉽게 설명한 한국어 문법책을 한 권 대출해서 집으로 향했다. 오후 5시. 저녁 먹기에는 조금 이른 시간이다. 수업시간인 6시까지 시간이 없어서 간단히 배고픔만 면할 정도로 대충 입에 넣고 방에 앉아 노트북을 켰다. 줌 회의를 예약하고 수업자료를 화면에 띄웠다.

정각 6시, 한국어를 배우는 학습자가 줌 회의실로 입장했다. 한 주간 톡방이 조용해서 혹시 무슨 일이 있나 했는데 다행히 일요일 아침에 수업 가능하다는 톡이 왔다. 바빴는지 물어보니 주말에는 집안일하느라 바쁘다는 말에 웃음이 났다. 청소 등 밀린 집안일이 많았겠지. 하나라도 더 열심히 따라 하고 준비한 내용에 고개를 끄덕이는 학습자를 보니, 급하게라도 준비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취미가 뭔지, 어떤 취미활동을 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 한국어로 책을 읽을 수 있는지 물으니 쉽지 않다는 답변이 돌아온다. 준비했던 질문을 해본다. 모국어로 된 책도 좋으니 가장 좋아하는 책, 작가가 누군지 물어보았다. 도스토예프스키, 죄와 벌. 푸쉬킨 이름이 나온다. 아는 이름이 나오니 반갑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책, 채식주의자를 읽었다는 말을 덧붙인다.

책의 내용을 논하기에는 서로의 언어가 미치지 못했지만, 채식주의자의 반대말이 육식주의자라고 깨알 같은 반대말 교육을 시전 한 뒤 다시 진도를 나갔다. 화면에 뜬 교재의 내용을 학습자가 한국어로 낭독하고, 발음 상 조금 어색하게 들리는 부분이 있으면 알려주고 모르는 단어나 표현은 빠르게 제미나이로 러시아어 번역 후 화면에 띄워서 알려주었다. 외국어를 할 줄 아냐는 질문 확장판으로 한국어로 1분간 자기소개해달라는 고난도 미션을 드렸다. 살짝 당황하는 표정이다. "지금요?"
"네. 자유롭게요. 잘하지 않아도 되니, 아시는 단어로 아무렇게나 이야기해 주시면 돼요."
"네. 저는 러시아에서 왔어요. 러시아 동포예요. 가족과 함께 한국에서 살고 있어요...." 자신을 소개하는 모습, 이야기를 들으며 살짝 가슴이 뭉클해진다. 러시아 동포. 할머니 이름이 한국어라는 말에 첫 수업에 좀 놀랐던 것처럼. 자기소개를 들으며 잠시 감상에 빠졌다. 응원하는 마음이 든다. 자료를 많이 준비하지 않았는데도 줌 무료 회의시간 40분이 훌쩍 지나간다.

한국어학당에서 요구한 자원봉사 기준은 총 5회, 줌 수업의 경우 40분을 1회로 인정한다. 지금 마쳐도 아무 문제가 없지만 열심히 경청하고 소리 내어 따라 읽고 애쓰는 학습자를 보니 준비한 내용을 끝까지 마쳐야겠다는 마음이 든다. 무료회의는 40분 수업 후 10분의 쿨타임이 지나야 다시 40분 회의를 열 수 있다. 톡으로 10분만 쉬었다가 다시 들어오시라고 안내드렸다. 잠시 후 새로운 회의실에서 인사를 나눈다. 남은 자료로 수업을 이어가다 이런 질문을 던졌다.
"금요일이 되면, 기분이 어때요?"
"아! 좋아요. 기분이 좋아요.
그럼 월요일은 어떨까. 뻔한 대답을 예상하여 다시 질문을 던졌다.
"월요일이 되면, 기분이 어때요?"
"월요일. 월요일은 힘이 있어요! 괜찮아요."
예상치 못한 답변에 놀라고 새로운 표현이 가슴에 꽂혔다.
'그래... 월요일은 힘든 한 주의 시작이 아니라, 주말에 충전했으니 힘내서 즐겁게 다시 뛰는 첫날이구나...'

월요일은 힘이 있다. 월요일은 힘이 있다. 왠지 이 말이 자꾸 가슴에 맴돌았다. 한국어 수업을 하면서 생각지도 않게 선물을 받은 느낌이었다. 그래, 월요일은 힘이 있구나. 새로운 곳을 향해 달려 나갈 출발선을 힘차게 지나는 첫날이니까. 비록 회의도 있고 피곤하고 출근길도 부대낄지라도 우리에게 월요일은 힘든 날이 아니라 힘이 있는 날이구나.


학습자님의 환한 표정과 함께 그 문장이 겹쳐지며 새로운 삶의 문장을 선물 받은 것 같았다. 결국 80분간 줌 회의로 수업을 마쳤다. 자기 할 공부도 못 끝내고 미련하게 누군가를 돕느라 시간을 뺏겼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에겐 이 시간이 더 소중했다. 누군가에게 배움은 빛이고 새로운 한 주를 힘이 나게 하는 기쁨이라는 걸. 그의 월요일이 힘이 나는데 나의 이 작은 노력이 작은 힘이 되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일까.


수업을 마쳤다. 인사를 나누고도 여운이 남았다. 힘찬 학습자에게 내가 알려준 건 '월요병'이란 몹쓸 단어였지만, 나는 그에게 이 문장을 선물 받았다. "월요일은 힘이 있어요.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해주는 힘이. 정말 그래요. 월요일은 힘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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