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독서지도 시행 착오를 겪다
책 읽어주면 아이가 행복하게 잠이 든다?
아이를 키울 때 처음으로 책 읽기에 대한 고민을 한 것은 큰아이가 5살 무렵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TV 광고에서 책읽어주는 부모의 모습이 나왔습니다. 잠자기 전 책을 읽어주고 있으면 아이는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잠드는 아름다운 영상이었습니다. 많은 워킹 맘이 그렇듯 저도 아이를 낮에 돌보지 못하는 미안함이 늘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이가 잠들 무렵에 나도 책을 읽어주면 아이가 저런 미소를 지으며 잠들겠지 라는 초보엄마다운 상상을 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잠들지 않았고 더 읽어주세요, 다시 읽어주세요를 반복했습니다. 그림책을 읽어주면 줄수록 아이의 눈은 더 초롱초롱해졌습니다. 낮 동안 다른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다 보니 늘 목이 안 좋았는데 밤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계속 책을 읽어달라는 아이를 보며 이건 아닌데, 책 읽어주면 아이가 잘 잔다는 거 누가 그랬어, 영상으로 보는 거와 왜 다른 거지, 하는 비명이 나왔습니다. 목이 아프고 힘들어서 낮 동안 책 읽는 소리를 녹음 해서 들려도 줘 봤지만 아이는 직접 옆에서 읽어달라고 떼를 썼습니다. 큰아이에게 그 시간은 하루 종일 보지 못한 엄마를 독차지 하고 있는 행복한 시간이었다는 것, 책 읽어주는 엄마 목소리를 들으며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는 그 시간이 빨리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순간이었다는 것을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둘째 아이는 달랐습니다. 밤마다 책을 읽어주면 잠시 후 편안한 얼굴로 잠이 들었습니다. 내 아이를 키우며 아이마다 책을 대하는 방식도, 엄마를 느끼는 방법도 다르구나 라는 걸 알게 된 순간이었습니다.
교과목 공부지도처럼 열심히만 했다.
교과목 공부지도를 대학생 시절부터 오래 해왔던 제가 독서수업을 하게 되니 아이들에게 무얼 어떻게 지도해줘야 공부실력 기르기에 도움이 될지가 보였습니다. 아이들이 공부할 때 무엇을 힘들어하는지를 알고 있으니 독서 지도 시에 어느 부분을 주의 깊게 살펴야할 지가 보였던 겁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과목을 독서글쓰기로 바꾸고 교과목 가르칠 때처럼 열과 성을 다 했습니다. 아이들에게 책을 내어주고 읽어오게 하고 안 읽어오면 남겨서 읽혔습니다. 다 읽고 나면 반드시 줄거리를 쓰고 말하게 했습니다. 쓴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책을 대충 읽었구나하고 아이가 책을 완전히 습득할 때까지 반복해서 읽도록 했습니다. 책 내용을 잘 이해했다고 판단이 되면 독후활동으로 글쓰기를 시키고 수업시간에 마무리가 안 되면 과제로 내주고 안 해오면 남겨서 다해야 집으로 보냈습니다. 참 열심히 했습니다. 아이들이 모를만한 어휘는 골라서 그 뜻을 몇 번을 쓰게 하고 어휘를 말로 설명해 보도록 하며 확인했습니다. 문제가 보이시나요? 저는 독서수업을 공부 가르치듯이 한 거였습니다. 아이들은 힘들다고 난리였고 엄마들은 아이가 수업 가기 싫어한다고 자꾸 전화가 왔습니다. 엄마들은 결과물을 보며 좋아했지만 아이들은 책을 스스로 들지 않는 힘든 수업 이었던 것입니다.
이런 시행착오를 겪으며 깨달았습니다. 아이들 독서에 대한 올바른 목표의식이 없고 빨리 성과를 내고 싶은 욕심이 문제였습니다. 책이라는 건 억지로 다그친다고 좋아지는게 아니라는 것을 아이들의 원성을 들으며 깨닫게 된 것입니다. 제가 처음 소공녀를 만나 닳도록 읽으며 행복했던 그 순간을 잊어버렸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빠른 성적 향상에 효과를 볼 수 있는 독서지도법만 생각하며 아이들을 몰아 부쳤다는 생각에 미안하고 부끄러운 마음에 얼굴을 들 수가 없었습니다. 책을 만나 즐거운 경험을 가져야하는데 공부처럼 닦달하는 책 읽기를 했으니 아이들이 힘들다고, 안하겠다고 할 만했습니다. 공부는 다그치고 억지로 시켜도 아이들은 그렇게 해야 하나 보다하고 대부분은 수긍하며 따라갑니다. 하지만 독서수업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책 읽기를 왜 그런 식으로 해야 하는지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의문을 품었고 거부했습니다.
독서지도를 왜 하는지 기본목표부터 다시 생각하다.
독서를 통해 아이들이 학습능력을 키우고 생각하는 힘을 기르며 배경지식을 쌓아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공부가 수월해지기를 바라는 것은 일차원적인 목표였습니다. 가장 중요한 독서의 목표는 아이들이 스스로 책을 고르고 책을 즐겨 읽는 평생 독자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깨닫고 나니 지난 독서수업을 받은 아이들에게 고개를 들 수 없는 부끄러움이 일었습니다. 행여나 나의 욕심으로 아이들이 평생 독서가가 될 기회를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싶어 잠도 오지 않았습니다.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즐거운 독서, 재미있는 독서가 아이들에게서 일어나도록 하기위해 독서지도 계획부터 전면 수정 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마다 다른 독서 환경과 독서 실태, 독서 능력을 고려한 개별 지도안을 만들었습니다. 저는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고 아이들을 살피되 아이들은 책 수업하는 시간이 행복한 시간이 되도록 했습니다. 아이들과 대화를 하고 마음을 어루만지며 소통하는 수업이 되도록 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아이들은 저의 달라진 교육 방향에 금방 반응을 보이며 저를 행복하게 해 주었습니다. 교실은 책 수업 오는 시간을 미리 기다리다 뛰어 들어오며 책을 손에 들고 다 읽었다고 자랑스럽게 소리치는 아이들로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인내의 열매는 달다는 진리
물론 독서 교육 방향을 바꾼 뒤 새로 들어 온 아이들은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지만 기존에 힘든 독서수업을 받았던 아이들은 쉽게 마음을 열지 않았습니다. 일단 경계의 눈빛으로 저를 보며 선생님이 왜 이러실까하는 반응이었습니다. 아이들에게 이제부터 다르게 할거라고 말을 하고 실행을 했지만 한 참동안 아이들은 저를 믿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조급해하지않고 기다렸습니다. 이후 차츰 마음을 열고 바뀌어가는 아이들을 보는 기쁨을 누리며 저자신도 행복해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더 이상 아이들을 다그치며 인상을 찌푸리는 시간이 아니라 이야기와 웃음이 있는 시간으로 변하자 아이들도 저도 기다리는 독서수업이 된 것입니다. 처음엔부모님들도 저와 생각이 맞는 분들만 함께 하게 되었지만 차츰 많은 학부모님들께서 달라져가는 아이들을 보며 찾아오기 시작하셨습니다. 아이가 행복해야 부모님도 행복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어른이 달라져야 한다는 것을 경험으로 깨닫게 된 소중한 시간들이었습니다.
독서지도를 하며 오랜 시간을 보내다보니 많은 아이들을 만나고 그 아이들이 자라 성인이 되는 과정을 지켜보게 되었습니다. 그 시간들 속에서 제가 세운 독서지도목표가 틀리지 않았음을 다시금 확신합니다. 잘못된 방식으로 아이들과 독서를 하고 있다면 늦었다 생각하지 말고 바로 수정하면 됩니다. 우리 아이가 많이 자라서 이제는 힘들다고, 늦었다고 생각하지 말고 아이들과 함께 즐겁게 소통하는 독서를하세요. 부모가 실수를 통해 배우고 고쳐나가는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것은 중요한 인생 공부가 됩니다. 부모가 달라지면 아이도 달라집니다. 아이도 부모도 독서하는 시간이 행복한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