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가두는 사람.

인간의 배터리에 대하여.

by 정정



스스로를 가두는 사람이 있다. 5평이 되지 않는 원룸 오피스텔에 스스로를 가두고 가급적 창문이든, 현관문을 열지 않는 사람. 문을 여는 순간은 이따금 정말이지 어쩔 수 없는 순간에 이르러서 마지못한 찰나이다. 예를 들어, 먹을 거나 필요한 것이 떨어져 배달을 시켜서 받아야 하는 순간이나 가만히 있어도 답답하고 공기가 탁한 게 느껴지는 순간. 그럴 때만 아주 잠깐, 현관문을 빼꼼 열어 물건만 받아 후딱 닫아버리고, 창문도 빼꼼 반의반도 안 되는 틈새같이 열어 환기를 시킨다.

매일, 수십 년을 집 밖을 나오지 않는 건 아니다. 그 사람이 스스로를 가두는 기간은 주기적이지 않지만 한 가지 규칙이자 명분이 있다. 단 하나의 이유, 집 밖을 나갈 이유가 없을 때 나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집 밖을 나가야 하는 순간도 창문과 현관문을 열어야 하는 순간처럼 마지못한 순간들이다. 오피스텔 월세와 관리비, 생활비를 벌기 위한 순간, 종종 몸이 아파서 심각하다고 자각이 들어 병원을 갈 수밖에 없는 순간, 또는 아주 가끔 가족을 포함한 타인과의 피할 수 없는 만남이 약속되어 있는 순간. 그것도 아니라면 안락한 침대의 품을 포기할 만큼의 그에게 상당히 큰 비중을 차지하는 여가생활을 위해서 1년에 한두 번은 용기를 내곤 한다. 그는 이런 이유가 아니라면 철저하게 스스로 작은 집 안에서, 그리고 그 집에서도 더 작은 범위인 침대 안을 쉬이 벗어나지 않는다.




이는 어쩔 수 없는 그의 숙명이자 태생의 문제와도 관련되어 있다. 그는 자신이 봐도 스스로가 정상인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여긴다. 그렇다고 큰 범죄를 일으킬 살인마나 악한 성향을 타고난 것은 아니지만, 사회 안에서 구성원으로 살아가기엔 구성원으로서의-정상인으로서의 기준에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는 천성이 둔하고 느리다. 이제는 드라마에서든 현실의 주변에서든 ‘이혼과 재혼’이라는 흔하디 흔한 클리셰적인 가정사를 겪은 그는 한국인이라면 평균적인 나이 때에 맞는 교육을 제때 받지 못했다. 그 교육에는 사회화 교육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래서일까, 그는 혼자가 편했고 당연했다. 그래도 약 30년을 살아가면서 그 나름대로의 사회화에 대한 업데이트를 해서 살아가면서 큰 사고나 문제는 없지만, 그에게 집 밖의 사회는 너무나 큰 에너지를 쓰게 하는 고성능 프로그램들이 깔린 프로그램이자 게임 세계이다.

그는 어떻게 보면 사람 모습을 한 로봇 AI에 더 가까울 수도 있다. 학습이 꾸준히 필요하고 그것도 반복적인 학습이 필요한 저성능의 로봇 AI. 그래도 30년의 데이터로 밥벌이를 하고 살지만, 30년의 세월 동안 나름대로 업데이트를 하며 고군분투를 하느라 배터리 수명이 짧다. 인간은 배터리를 교체할 수 없기에 수명이 다다른 채로 버티고 있는 것이다.

그는 아주 낡고 오래된 노트북이나 핸드폰처럼 툭하면 배터리가 방전되기 일쑤이고 보조배터리가 필수인 사람이다. 그런 그에게 배터리를 쭉쭉 잡아먹는 고성능의 사회생활은 그 무엇보다 제일 큰 문제이자 곤욕이 따로 없다. 그래서 그는 부득이하게 택할 수밖에 없던 것이다. 최소한의 삶을 유지하는 일 외의 모든 순간을 자신의 작은 오피스텔에 스스로를 가두는 것을. 그곳엔 그의 충전기인 침대가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