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나라는 존재가 이 순간을 살아있었음을.

나는 오늘도 지난한 하루를 보내고 이 글을 마친다.

by 정정

지난한 하루들 속에서 점차 작아지는 나 자신을 체감할 때 나는 이 마음을 어디에 호소할 수도 토해내고 게워낼 수도 없다는 것에 또 한 번 나의 감정을 접어버리곤 한다. 시간은 이 세상에서 점차 나를 지워가기 위해 하루에도 수차례 시련과 갈등 속에 나를 내던진다. 매 순간 내게 주어진 고난 속에서 나는 매번 나를 접어내고 접어내어 나는 점점 작아졌다. 내가 숙이고 들어갈 수밖에 없는 현실의 반복. 고개를 들어 나의 속내를 내비칠 수 없는 상황. 나는 질 수밖에 없는 모지리 못난이 바보로 매일을 보내고 하루의 마침표를 찍는다.

지친 하루 끝에 씻지도 못하고 현관문을 열고 그대로 모든 걸 내려놓고 쓰러질 때면, 종종 불안이 나를 집어삼킨다. 부정적인 생각이 스멀스멀 나를 잠식시키고 나를 저 밑바닥으로 끌어내린다. 검은 감정이 뒤섞인 생각이 든다. 실패한 하루와 실패한 삶을 살고 있는 걸까. 내 선택과 내 시간은 무의미하고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 걸까. 그리하여 사실은 이 시간과 이 세상이 나를 지우려 애쓰는 게 아니라, 내가 가는 이 길이 잘못된 길이라고 내게 보내는 신호이자 붙잡으려고 애쓰는 것은 아닐까. 사실은 나 스스로 이 험난한 길을 자초하여 걸어가는 것이 아닐까. 결국엔 다 내 잘못이고 내 탓이겠지. 그래. 내가 나를 죽음으로 몰아넣고 있구나. 다 내 잘못된 선택이고 실패한 이야기를 쓰고 있구나. 내가, 내가 잘 못 살고 있구나. 결국 또 나는 나를 궁지로 몰아넣는다.


이 세상의 수많은 삶들이 있다. 그 삶이라는 이야기들이 이 세상을 이뤄가는 각각의 에피소드들일 테고 누군가는 이 세상의 주인공이고 조연이고 빌런이고 어떤 상황의 등장인물일 것이다. 하지만 각자의 삶, 그 이야기들 속에선 다들 자신의 이야기를 이끌어내고 주인공일 테다. 그러나 나는 이 세상뿐만 아니라 나의 삶, 내 인생에서도 주인공이 아닌 것만 같다.


나는 뭘까.

내 삶의 의미와 나의 역할은 뭘까.


빛나는 아티스트들을 더 돋보이게 해주는 게 내 역할일까. 그저 조명처럼, 그 자리에 있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스쳐 지나가는 가로등 같은 걸까.

그럼 나는 빛을 내지만 나 스스로의 존재는 모두에게서 기억되지 않겠지. 가로등은, 조명은 내가 아닌 다른 무언가를 비추는 역할이니까.


내가 지워지는 세상 속에서 나 역시도 나를 접어가며 작아지게 하면서도

나는 또 이 불안하고 부정적인 마음 안에서 ‘그래, 그렇구나’ 하고 인정한다.

내가 없어도 이 세상은 잘 돌아갈 것을 죽지 않아도 잘 알고 있기에, 나는 없어도 되는 쓸모없는 부품이지만 그래도 나는 기다린다.

언젠가 나도 쓰임을 다하는 날이 오겠지, 그런 마음으로.

떨어진 단추를 대신하여 잠시라도 대체할 수 있는 그런 쓰임이라도…


바쁘게 살고 있지만 나를 위한 시간은 없는 삶.

내가 내는 빛은 내가 아닌 타인을 향하고 그리하여 나는 어두운 그림자 속에 있지만 나는 내가 비추는 아티스트들이 더 빛나길 바란다.

나는 오늘도 그러한 하루를 보내고 이 글을 마친다.


오늘도 일을 하고 나라는 존재가 이 순간을 살아있었음을 기록한다.

수고했다. 고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