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1월 11일에 썼던 기록

생애최초 회사에서 눈물 흘린 사건(?)에 대한 마음 기록

by 정정




11/11


나는 오늘 울었다. 그것도 회사에서. 내 자리에서. 대표님과의 통화가 끝나자마자.

펑펑 운 건 아니고 툭툭 눈물이 났다.


불행은 갑자기 온다 했던가. 지난주에 마무리 짓고 완료 폴더로 옮겨둔 작업물에서 문제가 생겼다. 실장님이 먼저 내게 다가와 지난주의 상황을 물어보았고 나는 내 기억대로 이야기했다. 대표님께서 물어보신다며 결과물이 잘못 나갔음을 알려주셨다. 나는 지난주의 내 기억을 말씀드렸다. 실장님은 내 기억을 들으시곤 ‘정정아 그럼 네가 대표님께 연락할래 아님 내가 할까’하고 물으셨고 나는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대표님께 내 기억을 말씀드리면 되리라 생각했다. 그 순간의 판단으로는 나의 기억에선 “이러이러한 상황이 있었고 이렇게 진행하기로 확인을 받은” 결과물이었고 그 순간엔 실수라기보단 해프닝이라 무심코 여겼을지도 모른다. 하나 결론을 말하자면 그런 가벼운 마음으로 대표님의 번호를 누르고 통화를 걸었던 나는 통화를 하면서 죄송하다고, 제가 착각했나 봐요 하며 '죄송합니다'만 반복하는 멍텅구리가 되어 있었고 통화를 마칠 때에도 죄송합니다를 말하며 뭐라 덧붙였던 말이 있었는데 그건 또 이미 통화가 끊겨 혼잣말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내 잘못과 내 실수로 마무리되었다는, 사실은 그저 그런 줄거리이다.

막 회사가 큰 이슈에 휩쓸리거나 큰 피해를 받고 금전적인 사고가 나는 그런 엄청 큰 사고를 친 건 아니었다. 그래서일까? 옆에 있던 실장님과 팀장님이 별일 아니라 해주셨던 거 같고 종종 이럴 거라고도 해주셨던 거 같고 털어버리고 담아두지 말라 하셨던 거 같다.

사실 통화를 마칠 때쯤부터 내 머릿속은 백지가 되어 기억이 잘 안 난다.


내 빌어먹을 방어기제 때문이리라. 무의식에 비롯된 방어기제. 내가 마음에 작은 상처라도 받으면 방어기제 녀석은 유령처럼 소리 없이 기척 없이 나타나 상처에 약을 발라줄 생각은 안 하고, 그 상처를 낸 기억을 바로 어디론가 치워버리고 머릿속에서 지워버린다.

내 유년 시절의 기억이 그랬고 학창 시절이 그랬고 내 과거가 그래왔다.

그래서 내 기억은 늘 요약된 노트 같다. 그때의 감정과 기분은 배제된 채로 방어기제가 지울 수 없는 사건과 사실로만 정리된 과거 기록 요약 노트.


오늘도 방어기제 고 녀석은 한 건을 해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하려니 그새 그걸 지워버린 모양이다. 잘 기억이 나질 않으니까.


그저 내가 통화를 마치자 실장님과 팀장님이 한 마디씩 해주었고 그 순간 나는 눈물이 순식간에 차올라서 툭 흘리고야 말았다. 울었다기보단 눈물이 났다는 표현이 맞으리라. 눈물이 났다. 슬프다는 감정이 든 것도 아니었다. 그냥 눈물이 났다. 억울하거나 여타 감정이나 기분이 든 게 아니었다. 그래서 나 스스로도 어이없고 당황스러웠다. 실장님도 너 우냐고 놀라셨다. 걱정된다는 듯 다가와 안아주셨지만 나는 괜찮다고 연신 말했다. 괜찮다. 정말 괜찮기도 했고 그래야 했고 슬프거나 감정이 막 그러지 않았으니까. 아니면 어쩌면 나도 나를 모르니까 내가 내 감정을 눈치채지 못한 걸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괜찮아야 하는 건 맞았다. 그때 나는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었고 업무 중이었고 사회생활 중이었으니. 작은 사고가 나서 상황은 안 괜찮을지라도 나는 울면 안 되고 괜찮아야 하는 직장인.


나는 괜찮다며 휴지로 눈을 툭툭 닦고 웃어 보였다. 그리곤 다시 업무를 하기 위해 모니터를 보았다. 그렇게 실장님도 팀장님도 다시 각자의 자리로 간 뒤에, 그 뒤에도 나는 사실 두어 번 눈물이 나서 남몰래 슬쩍 닦았다.

이런 내가 나도 어이없어 속으로 퉁명스레 구시렁댔다.

살다 살다 내가 회사에서 우는 날이 올 줄이야. 드라마나 남의 이야기로만 여겼던 상황인데...



나는 내가 느끼기에도 비정상이다 싶을 정도로, 좋게 보면 무던하고 덤덤한 성격이고 나쁘게 보면 감정이 없다고 느낄 메마른 성격이라 여겼다.

내가 운다고? 내가? 그것도 화사에서? 고작 이런 일로? 그동안 고생했을 땐 울지 않다가?


물론 아주 가끔 감동적인 영화나 신파 드라마를 보면 눈물이 날 때도 있지만, 나는 내 감정에 받쳐 울지 않았다.

그래서 점차 시간이 지나자 되레 오랜만이라 생각했고 다행이다 싶은 일말의 무언가도 마음 한편에 피어났다. 내가 마냥 메말라죽지는 않겠구나 싶은 안도감이었을까.

또 시간이 좀 흘렀을 땐 내가 먹고 있는 정신과 약 때문일까-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곧바로 별 상관없을 거라는 자문자답을 하며 넘겨버렸다. 먹고 있는 약은 무기력감이나 우울감을 덜어내는 약과 수면제니까. 그렇다고 자궁 관련 약인 야즈의 효능일 리는 없잖아? 허허, 그러니 이 생각은 그냥 또 지워버렸다.


나는 그렇게 눈물을 겪고(?) 아무렇지 않게 실장님과 밥을 먹고 촬영 팔로우를 나갔다.

현장에서 아무렇지 않게 시답잖은 사담을 나누고 배우와 웃으며 인사를 나누고 저번보단 덜 어색하게끔 몇 마디 얹고 좀 더 다가가서 말을 걸어 카메라에 인사해 달라 하고 멘트 요청도 했다.

매니저님과 실장님과도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촬영을 마치고 인터뷰하는 동안 책을 읽다가 사무실로 복귀했다.

생각보다 훨씬 빨리 끝난 팔로우 스케줄이었다.


시간이 지나자 직장인 모드의 나는 아무렇지 않게 일을 해나갔다. 뭐 진짜 시간이 좀 지나니까 그냥 넘겨버리고 아무렇지 않게 된 거 같기도 하고.



정말 그랬다면 다행이었는데... 팔로우를 다녀와서 옆자리 대리님에게 점심 뭐 드셨냐고 웃으며 말 걸고 현장에서 받은 과자를 차장님과 대리님에게 나눠주는 여유도 부려서 그렇게 그냥 넘어가고 나도 흘려보낼 줄 알았다.


그랬는데. 아니었나 보다. 아니었어.

카메라를 정리하고 이런저런 걸 정리하고 다시금 퍽 낮은 파티션이 자리한 내 자리에 앉아 모니터를 마주했을 때, 나는 또 멍해졌었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일은 또 새로운 게 밀려오고 수정된 스케줄이 전달되어 실장님과 업무 이야기를 나누고 카톡을 주고받고 인스타 문안을 작성하면서도. 나는 멍했다.

차마 프리미어를 켜서 편집하거나 여타 다른 작업을 할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로.


그래도 일을 안 한 건 아니지만, 이따금 오전의 일이 되새김되고 일을 하면서도 내가 하얗구나, 비어있다는 게 문득문득 자각이 들 정도였다.

이런 건 또 처음이라 새로운 느낌이기도 했다. 내가 이런 날도 오는구나 싶은?


일정 정리하고 문안 작성하는 데에 시간이 들기도 했지만 그래서 더 이상 작업은 하지 못하고 5시 반에 컴퓨터를 꺼버렸다. 실장님이 벌써 갈 준비 했냐고 물을 만큼 티가 나게.

머쓱하게 웃었고 실장님은 별말 안 하고 지나가셨다. 그리고 나는 그런 말을 듣고도 이북 리더기를 켜고 책을 읽었다.

그렇게 오늘 완독을 했다. 이런 일을 겪고도 말이다. 아님 그래서 완독 할 수밖에 없었을 수도 있고.


오늘 하루 드문드문 오전의 일이 되새김되고 눈도 손도 멈칫하며 이따금 일시정지가 되는 하루를 보내면서, 나는 오늘은 기록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건 기록해야 한다. 일기를 안 쓰는 나인데도, 쓰고 남기고 뭐 할 데도 없으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나에게 잊지 말라고 다짐하듯, 오전의 일이 불쑥불쑥 떠오르면 그 생각의 꼬리를 물고 기억해서 오늘을 기록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짐. 그것은 다짐이고 나에게 보내는 메시지고 오늘의 눈물만큼 불현듯 튀어나온 나의 변화이리라.

변화. 그래 나는 바뀌고 있나 보다. 그래 좀 바뀌어야 할 때가 왔긴 하지. 한자리에 너무 오래 머물러 있었다. 내가 어디서 멈춰 섰는지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너무 오래 서있다가 그게 곧 그 자리에 뿌리를 내리고 털썩 주저앉아 자리 잡고 고였다. 잠시 멈춘 게 아니고 정체된 채로 고이고 자리를 잡아버린 채로 커버린 것이다. 이 또한 내 탓일지도 모르겠다. 내 방어기제의 탓일지도 모르고.


아무튼 너무 오래 머물러 버린 이 자리에서 이제는 벗어날 때가 왔고 그러려고 나도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아 이건 아니다 싶은 생각은 오래전부터 내 마음에 한자리 크게 차지하고 있었음에도 계속 그렇게 살아버린 나 스스로가 “아 지건 진짜 안 되겠다”라고 자각해 버렸으니. 거기에 또 쫄보인 내가 용기를 내어 큰 걸음을 떼고 약을 먹기 시작했으니. 내 발버둥이 내 덩치만큼 제법 컸나 싶다. 그렇지 않고서야 무풍의 바다인 내 안에서 죽지는 않겠다고 발버둥 치는 내 발길질이 파도가 되어 이렇게 돌아올 줄이야.

참 여러모로 어쨌든 오늘은 기록해야 하는 날이었다.

하하, 끝

작가의 이전글오늘도 나라는 존재가 이 순간을 살아있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