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평 세상에 살고 있다

고여만 가는 나를 어쩌면 좋을까요.

by 정정








세상은 이토록 거대한데 나의 세상은 처참하리만치 협소하다. 나의 세상은 딱 10평 내외. 나의 집, 그 안을 벗어나지 못한다. 나의 세상은 그 안에서 가능하면 최대한 웅크리고 스스로 가두어 더 좁은 반경을 움직이다 이내 곪아가는 중이다. 고인다는 게 이런 걸까.

나의 세상은 단순해지다 못해 평면에 가까운 하루를 흘려보낸다. 무의미한 긴 수면과 무질서한 생활 패턴 속에서 나는 유튜브를 보거나 핸드폰 게임을 하거나 배고프면 밥을 먹고 또다시 유튜브나 게임을 하거나 혹은 먹고 잔다. 유튜브도 다양한 영상들이 매일 쏟아질 텐데, 나의 유튜브는 늘 보던 것만 봐서 단조롭기 짝이 없다. 나의 알고리즘도 좁고 좁다. 나의 세상은 이렇게 비좁다. 이 형편없는 하루 일과에도 나의 입에선 ‘힘들다’라는 말이 이따금 흘러 나온다. 사는 게 힘든 것일까.

몸이 망가져 가는 것을 인지하고 느끼면서도 애써 외면하며 다 늙은 노인처럼 살아낸다. 느리게 걷고 때로는 허리가 구부정해진 것을 뒤늦게 알고 겨우 편다. 나열하는 하루가 흔한 독거노인과 큰 차이가 없을 만큼 무료하게 때로는 허무하게 창창한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나는 고작 서른 중반임에도 말이다. 누군가는 충분히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지금 공부해서 대학을 가도 40대 전에 졸업할 수 있는 창창한 나이. 그러나 나는 내가 달려온 업계에선 노인과 다름없이 너무나 늙고 많은 경력을 가져 버렸다. ‘3-4년 차의 어느 정도 일은 할 줄 아는’ 경력이 인기 많은 시장에서 나는 그 배의 경력을 가지고 있음에, 더는 나를 찾지 않고 뽑아주지 않는다. 갑작스러운 퇴사 역시도 사실은 높아진 경력에 따른 (사실은 쥐꼬리만 한데도 팀 내) 고연봉이 화근이었다. 명예퇴직도 아닌 이 애매한 퇴사가 나의 모든 것을 숨죽이게 했다.

원체 집순이었고 이유가 없으면 나가지 않고 집에서 뒹구는 게 당연한 나에게 출퇴근은 그나마 세상 밖으로 다녀오는 순간이었다. 그 찰나가 고여가는 나에게 자그마한 강줄기의 물처럼 들어오고 나가는 숨구멍이었으리라. 나를 움직이던 순간은 일하는 순간뿐이었다. 어느새, 세월이 지나 보니, 그렇게 변해있었다. 열정 넘치던 나는 사라지고 회사의 부품 중 작은 톱니바퀴인 내가 자리한 순간, 삶은 색을 잃고 소리를 잃은 흑백의 무성영화가 되었다. 웃는다는 건 가볍디가벼운 찰나가 되었고, 그 찰나도 하루가 다르게 일분일초 줄어만 갔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나를 잃어감과 동시에 일은 나를 집어삼켰고 하루의 대부분을 컴퓨터 앞에서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 줄 영상을 편집하고 포장하듯 보정하며 그렇게 하루를 넘길 만큼 일만 해왔다. 새벽과 아침에 퇴근하는 게 당연해지고 집에 가서 겨우 쪽잠을 자고 나와 점심시간을 걸쳐 부랴부랴 출근했다. 자는 시간이 부족해서 나를 돌보는 시간을 줄여나갔다. 씻는 시간, 겨우 그 기본 중의 기본도 지키기 위태로울 만큼 나를 몰아세웠다. 그러나 나는 몰랐다. 그 당시, 그 시간대의 나는 마감에 시달렸고, 업무에 시달렸고 끝없는 갖은 자격지심에 나를 또 몰아세워 채찍질을 해가며 일을 했다. 무식하게 그리고 무모하게. 정말 나를 갈아 남을 빛내주다 소모되어 버린 것을 이제야 안 것이다.

특히 올해 나는 내 안에 남아있던 일에 대한 열정이 완전히 전소되었음을 깨달았다. 프리미어를 켜기도 싫고 프로그램 모니터를 쳐다보기도 싫고, 하기 싫어 손을 놓고 이따금 다른 데로 눈을 돌리기 일쑤였다. 5분도 집중을 할 수 없었다. 어딘가 망가진 것처럼 일을 미루고 코앞의 재미를 쫓아갔다. 그러다 마감 직전에 겨우겨우 일을 해서 마무리를 지었다. 그러나 그것도 점차 더 느려지고 마감에 대한 비상등이 켜지는 시간이 늦어져 갔다. 고장 난 것이다. 어딘가 단단히 고장 나버렸다. 이 사실을 인지하게 되었을 때도 나는 무엇을 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더라. 그저 나를 방치하며 그렇게 허송세월 나태한 하루를 보낼 뿐. 일은 하긴 해서 월급을 받을만하고, 야근은 또 계속해서 월급을 축내진 않더라도, 열정이 불씨라도 남아있던 때와 완전히 재가 된 순간은 큰 차이가 있었으리라. 나의 경력과 그간 쌓아온 솜씨에 내 작업물에 열정이 식은 탄내가 묻어나진 않더라도, 결국 끝이 보였던 시간이었다. 다만 그게 내가 생각했던 때가 아닌 게 문제였지만.

하루 24시간에 거진 20시간을 일하던 내게 남은 건 아무것도 없었다. 한때 찬란히 빛났던 나의 모습은 그 어디에도 흔적조차 찾을 수 없게 되었고, 내게 켜켜이 쌓여있던 취향도, 취미도, 나라는 사람의 다채로움도, 모두 ‘일’, ‘경력’과 함께 등가교환이 되어 사라졌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나에게 출근할 회사도 없으니, 나의 하루는 24시간 그대로 텅 비었고, 늙은 노인네처럼 집안에서 고립되어 밥만 축내게 되었다.


일만 해서 이걸 어떻게 내세울지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모르겠다. 이제는 이 연차의 경력을 뽑아주는 회사도 없고 꽤나 자주 왔던 헤드헌터들의 연락도 지금은 감감무소식이다.

어린아이가 된 것 같다. 어쩔 줄을 몰라 발을 동동거렸다. 큰소리로 도와달라 소리쳐야 하지만 지레 겁이 많아 소리치지 못한다. 예나 지금이나 참 몹쓸 소심함. 위급한 순간에도 나는 언제나… 타인에게 손을 뻗어 도움을 요청하지 못한다. 그게 제일 가까운 가족이라 할지라도.


예전엔 글을 참, 쉽게 썼었다. 한때는 만화가를, 또 다른 때엔 작가를 꿈꿨던 시기를 지나서도 나는 큰 설정을 정해두지 않아도 키보드를 두드리며 손이 저절로 글을 짓는 느낌이 들 정도로 글을 썼었다. 머릿속의 분위기와 그림이 꽤나 있어 보이게 나열하던 손이었다. 과거형이다. 그래, 이젠 글도 예전처럼 써지지 않고 옛날을 그리워하며 지난 글들을 되짚어볼 뿐이다.


나는 얼마나 더 이렇게 정차해 있을까. 지금 이 시간이 의미가 있을까. 빈털터리인 나를 다시 채우는 시간일까. 1퍼센트의 에너지도 없어서 이렇게 무력한 걸까. 나는 지금 충전 중인 걸까. 아니면 어떻게 해야 할까.


조금이라도 뭐라도 해보려 의욕을 내보면, 나는 금세 시들어 잠이 든다. 이 시간에 영어라도 공부해 볼까 해봐도 그게 오래가지 못하고, 영상 관련 공부를 해보려 해도 역시나 오래가지 못하고, 강의도 오래 보지 못한다.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로봇이 된 것 같다. 영화를 봐도, 무엇을 봐도 내게 닿는 자극이 없다. 나는 얼마나 고갈된 걸까. 허탈하다. 그리고 이 공허의 시간이 끝이 없을까, 무섭고 두렵다.



무섭고 두렵다.

아니, 잘 모르겠다.

내게 와닿지 않는다.

그저 존재만 하는 인형처럼 있을 뿐이다.


축 늘어진 채로 나는 내 작은 세상에서 둥둥 떠다닐 뿐이다.





2026.01.02 새벽을 지나.